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스텔라 Aug 09. 2024

댕글리쉬(Deutsch-English)

자, 독일어는 만족스러울 정도로 습득했다고 치자.


그런데 독일어를 하면 할수록 영어를 해야 할 순간에 ‘댕글리쉬 (Deutsch-English)’ 를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특히 S, Sch, J, R을 발음할 때면 우스꽝스러운 영어가 돼버린다.

 

사실 나는 영어를 하는 것보다 독일어를 하는 게 훨씬 더 편하다. 

원래도 영어를 잘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정말 영어 바보가 된 것이다.


남자친구는 영어로 일을 하기 때문에 영어권 친구들이 많고, 독일인들과도 서로 영어로 대화한다. 

가끔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계획하지 않았던 경청모드로 들어간다. 

독일어로 할 때면 내가 대화를 리드해서 얘기를 하는 반면, 영어로 이야기할 상황에는 생각이 많아지며 말이 느려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마 내가 소극적이고 말수가 없는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벙어리 상황이 계속되니 나 자신이 초라해진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영어 책을 꺼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에 10분씩, 20분씩 영어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원래 독일어로 기본 설정되어 있는 나의 모든 기계들 (핸드폰, 노트북, 태블릿 등)을 영어로 바꿨다. 


영어로 생각하고 글을 쓰다 보니 웃긴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 모국어는 분명 한국어인데, 왜 나는 독일어로 생각하고 독일어를 영어로 번역하며, 영어를 독일어로 번역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남자친구가 영어를 잘하는 덕분에 일상생활에서도 교정을 꽤 받는다.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해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고 말하지 않고 몰래 공부했었는데, '몰래' 화상 수업을 하던 중 영어 하는 모습을 들킨 이후로는 그냥 내려놓고 내 멍청한 영어를 그 앞에서 내뱉고 있다.


나는 영어권을 살고 있지 않는 데다가 영어를 할 이유가 전혀 없는지라 배움이 느리다. 

혹은 내가 언어 능력이 부족한 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더 이상 꿀 먹은 벙어리만 할 수는 없으니 창피함을 무릅쓰고 더욱더 노력하기로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