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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도시, 조용한 죽음

그리스 아테네

by 하스텔라

조용한 도시에 익숙해진 내가 대도시에 들어설 때마다 느끼는 첫인상은 언제나 비슷하다.


소란스럽고, 붐비고, 쉼 없이 돌아가는 사람들과 교통.

낮보다 밤이 더 분주한 거리들.


사람들 틈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길거리에 진을 친 술자리들. 도시에는 쉼표가 없어 보인다. 숨 고를 틈 없이 흘러간다.

어디든 사람이 정말 많다.

아테네 역시 마찬가지.

유럽 기준으로는 제법 높은 5층, 7층짜리 건물들이 줄지어 있고, 그 사이를 수없이 많은 차들과 오토바이들이 바쁘게 오갔다.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소음을 듣고 있었다.

‘우리 집 테라스에선 새소리가 들리는데, 여긴 온통 자동차와 사람, 그리고 음악 소리뿐이네.’ 그렇게 생각하던 중, 건물 사이를 맴도는 새 무리를 보게 되었다. 방향을 잡지 못하고 고층 건물들 사이를 빙빙 돌던 새들. 어디로 가든 벽에 가로막혀 당황한 듯 보였다. 도시는 새에게조차 쉬운 공간이 아니었다.


아테네는 철저히 차 위주의 도시였다. 차량은 쉴 새 없이 쌩쌩 달렸고, 오토바이들은 번개처럼 차 사이를 지나쳤다. 몇 번이나 놀라고 멈춰 서야 했을 만큼, 보행자에게는 꽤 위협적인 환경이었다. ‘자전거라도 탔다간 큰일 나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생각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짓이겨진 새 한 마리.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옆엔 도로 한가운데서 죽어 있는 고슴도치. 도시의 속도는 가장 약한 생명부터 삼켜버리고 있었다.


아테네는 '고양이의 천국'이라고 불린다. 실제로 거리 곳곳에서 고양이를 만날 수 있었다. 골목길, 가게 앞, 심지어 유적지 안팎에도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오갔다.


고양이 급식소처럼 보이는 곳들이 많았지만, 관리가 안 된 그릇도 적지 않았다. 말라붙은 사료, 이끼 낀 물그릇, 먼지만 가득한 빈 밥그릇들. 아픈 듯 보이지만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는 고양이들도 있었고, 고양이 집사로서, 그 모습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이건 고양이의 천국이라기보다는 방치 아닐까…’ 괜한 오지랖일지도 모르지만,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유적지 터에서 해맑게 뛰어노는 고양이들을 보며, ‘이곳이 삶의 터전이라니, 멋지다’ 싶어 미소가 나기도 했다.


한 가게에서는 아예 고양이가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 있었다. 고양이에 홀린 나는 자연스럽게 가게 안으로 들어가 이것저것 샀다.

“고양이가 저를 불렀어요.” 직원에게 그렇게 말하며 많은 돈을 지불했다. 하하


사람들이 고양이를 예뻐해주고, 고양이들 털도 반질반질한 걸 보며 이 도시에도 따뜻한 시선이 남아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런데, 그런 따뜻한 인상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정말이지 눈을 의심할 만큼 끔찍한 장면을 마주했다. 도로 위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검은 고양이..

얼마나 빠르게 달려야 그렇게까지 치일 수 있는지, 작은 몸은 이미 터져 있었고, 바닥은 피로 흥건했다. 말로만 듣던 ‘고양이 로드킬’. 새나 고슴도치가 죽어 있던 장면과는 또 다른, 깊고 무거운 충격이 나를 집어삼켰다.


그 순간, 내 고양이가 떠올랐다. 늘 창밖을 보며 햇살을 쬐고,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내 품을 파고드는 그 아이. ‘만약 그 아이가 이런 위험한 세상에 놓인다면?‘, ’산책중에 혹시 무슨일이라도 생기면..?’ 그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조여왔다.


도시는 언제나 화려하다. 그만큼 치열하고, 때로는 잔인하다.

그 아래에서 말도 없이 사라져가는 작은 생명들. 그들의 흔적 앞에서, 나는 괜히 더 작아진다.


다들 아무일 없이 주어진 삶을 평온히 살다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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