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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청소로 시작된 마음 정리

물건의 자리를 찾으며, 나도 제자리로.

by 하스텔라

집의 상태를 보면, 내 마음이 어떤지를 알 수 있다. 정신이 맑고 안정된 시기에는 집도 그만큼 단정하다. 반대로 마음이 흐트러지면, 집 역시 제자리를 잃는다.

최근 몇 주간, 내 집은 정돈되지 않은 채 물건들이 쌓여만 갔다. 그건 마치 내 머릿속이기도 했다.


결혼식 후 받은 선물들이 집 곳곳을 차지하고 있었고, 가족과 친구들의 방문으로 정신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감사한 일이지만, 덕분에 집을 제대로 정리할 틈이 없었다.


풀지 않은 박스들,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물건들을 볼 때마다 머리가 지끈지끈했고, 복잡한 생각들이 뒤엉킨 내 마음처럼, 집도 엉망이었다. 신경이 곤두섰다.


하지만 그런 상자들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그 위에서 낮잠까지 자는 고양이의 모습을 보며 잠시 웃음이 났다. 내 혼란스러운 일상 속에서도 평온함을 찾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묘한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며칠은 일부러 눈을 감고 지냈다.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미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건을 제자리에 놓고, 공간을 다시 숨 쉬게 했다.

조금씩, 천천히. 그렇게 내 마음도 함께 정돈되어 갔다.



며칠 전, 집 한 켠에 놓여 있던 꽃 레고를 바라보다가 아버지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조화는 죽은 거나 다름없어. 집에는 생기가 있어야지.”
그리고 이어진 농담 반, 진담 반의 말.

조화 사건, 꼭 해결해 줘!

(‘조화 사건’이라니, 무슨 대형 사건 터진 줄 알겠네. 하하.)


짧은 그 한마디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선물이기에 한동안 인테리어 소품처럼 두었지만, 그 말은 생각보다 깊게 와닿았다. 무심코 지나쳤던 말이 이번에는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에라이, 오늘이다!'


나는 오랜만에 식물 가게에 들렀다.

늘 사고 싶었지만 크기가 부담스러워 망설이던 야자수 나무도 정말 과!감!히! 골랐다.

공기 정화에도 좋고, 고양이에게도 무해한 식물들로 하나하나 선택하며 사다 보니 허허. 또 생각지도 않은 지출을 하게 되었다.

녹색 잎사귀들이 햇살을 받으며 고개를 드는 모습은 생각보다 더 큰 기쁨을 주고, 조용했던 공간이 한순간에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정말, 마음에 쏙 든다!


집이 이렇게까지 고급스러워질 줄은 몰랐다. 가구의 위치도 조금씩 바꾸어보니, 공간이 훨씬 넓어지고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집이 달라지니,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졌다.



물건을 치우는 일로 시작된 이 변화는 단순히 공간을 정돈한 것이 아니다. 어지러웠던 마음을 다독이고, 멈춰 있던 삶에 다시 온기를 불어넣는 과정이랄까.


푸르른 식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참 기분이 좋다. 생기가 있는 것들을 곁에 두는 일이 이렇게까지 나를 위로할 줄은 몰랐다.


삭막했던 집에 자연이 들어오니, 놀랍게도 슈무지에게도 변화가 생긴 것 같다.
늘 바깥공기를 쐬겠다며 문 앞에 앉아 있던 슈무지가 요즘은 좀처럼 나가려 하지 않는다.

집 안을 이리저리 돌며 화분 옆에 앉아 있거나, 야자수 옆에서 낮잠을 청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기분 탓일까? 아니면, 이 작은 생명도 집 안의 공기 변화를 느끼는 걸까.

물론 언젠가는 다시 창밖의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가자고 재촉하겠지만, 요즘 같은 나른한 오후엔 이렇게 집 안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참 좋다.


나 혼자 바뀐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따뜻해진다.


초록이 물든 집에서, 우리 조금씩 더 평화로워지고 있지만.. 벌레가 많~이는.. 안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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