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전공자의 설득
'코딩 배워봐'하고 가볍게 추천해 준건 나와 아주 가까운 사이의 전공자이다. 그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박사과정도 지르밟았다가 탈출한 사람. 학교를 나와선 몇몇 회사를 거쳐 일명 남들이 알아주는 대기업에서도 근무했다. 퇴사 후 스타트업도 차려봤고, 또 망해보는 등 이 바닥(?)에서 굵직굵직한 커리어를 쌓으면서 지금은 한 회사의 CTO이자 tech d/d 업무를 맡아보고 있다. 아무튼 그가 일 이야기며 코딩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실 나는 심드렁했다. 딴 세상 이야기를 하는군. 했던 거다.
그가 더욱더 '코딩을 배워봐'에 대한 이야기에 열을 올리던 때는 내가 독일어 공부, 독일어 공부하고 노래를 부르던 때였다. 독일에서 살려면 독일어를 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것보다도 간호사 등록을 하려면 원어민에 가까운 수준의 독일어 성적을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난 시험용 성적 만들기에 급급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갖고 입국한 내게 독일에 머물 시간이라곤 단 1년, 1년이란 제한된 시간밖에 없었다. 그 안에 얼른 시험에 통과하고 직장을 갖고 정식 취업비자를 발급받아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지배적인데 딴짓을 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데 말이다, 인생은 절대 내가 계획한 순서에 맞게 되는 법이 없다.
몇 달한 공부로는 그들이 요구하는 언어 수준은 고사하고 유치원생도 나와는 레벨이 안 맞다고 답답해할 지경이었다. 그런 나의 수준을 한탄하면서 언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날로 높아지던 중에 그 전공자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다.
"만약에 코딩을 잘 배워서 누가 널 채용해 주잖아? 독일어 안 해도 돼, 영어로 다 하니까"
"그리고 코딩 배우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고 어쩌고 저쩌고~"
무수한 코딩의 장점과 강점들 중에 나를 사로잡은 건, '채용' 그리고 '영어로 다 하 하니까.'
내가 공부한 전공의 특성상 살면서 취업준비 기간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물론, 보고 들은 적이야 있지만 겪어 본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은 그 무게가 다르지 않겠는가? 겪어 본 적 없던 취준, 서른이 넘어 경험했다.
처음 1-2개월은 괜찮았다. 그러나 6개월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무직의 기간을 셈하고 하루씩 더해갈 때마다 마음속 불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어디에 터 놓을 곳도 제대로 없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에게 말하면 그냥 돌아와도 괜찮다는 위로의 말들을 건네주지만 하지만 돌아가는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으니 통화할 때마다 힘든 이야기는 쏙 빼게 되었다. 결국 날로 커지던 불안이 나를 잠식하고, 자존감마저 바닥을 뚫고 지하 어디까지 낮아지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밤마다 뚝뚝 흘리게 되었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더니 이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갈피를 못 잡던 절망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런 고통 속에서 그나마 영어를 쓸 수 있다?
영어는 자신 있었다. 한국에서도 꾸준히 공부했고, 또 영국에서 2년 동안 공부와 직장생활을 하면서 본 투 비 브리티쉬처럼 원어민 수준은 아니더라도 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때 들리는 그의 달콤한 속삭임이란, 안 넘어가고 배길 수가 없었다.
정말 이걸 배우면 독일어 안 해도 취업이 되는 거야? 하는 희망이 단숨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요즘은 초등학교에서도 코딩을 배운다는데 나중에 배워놓으면 이것도 써먹을 데가 있겠지 하면서 코딩을 배워보자 결심했다.
솔직히 진짜 누가 날 채용해줄까? 하는 설렘 가득한 마음도 있었지만 나는 꽤나 현실적인 사람이기에 그런 확률은 아주 희박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비전공자, 외국인, 비자 발급해줘야 돼, 독일어도 못해, 게다가 코딩 입문자.
누가 뭘 보고, 뭘 믿고 채용해줄까?
그래서 가볍게 시작하자, 욕심내지 말고 가볍게. 가볍게.라고 다짐 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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