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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물고기 Sep 18. 2022

타인의 뒷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껏 사랑할 결심

《환상의 빛(Maborosi)(1995)》, 고레에다 히로카즈



1995년에 개봉한 <환상의 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이다. 한국에서는 감독의 이름이 꽤 알려지고 난 2016년에 개봉했다. 개봉 당시에 이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관람했는데, 학교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할 때 누군가 반납한 미야모토 테루의 원작 소설까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고레에다 감독의 이후 작품들도 좋아하지만, 보고 나서도 몇 년을 자꾸만 곱씹게 되는 <환상에 빛>에 대한 애정에는 미치지 못한다.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과 비슷한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감독은 초기에 대만 뉴웨이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유미코와 이쿠오는 같은 동네에서 자라서 결혼한 부부이고, 3개월된 젖먹이 아들 유이치를 기르고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어느날에 이쿠오는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고, 저녁에 비가 온다고 했다며 일터로 가기 전에 우산을 가지러 집에 들렀다가 그 길로 돌아오지 않는다. 집으로 찾아온 경찰의 말에 의하면 이쿠오는 기차가 오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철로 한가운데를 걷고 있었다.


영화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이 별안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쿠오의 내면을 파헤치지 않고, 남겨진 유미코의 삶을 천천히 따라간다. 아마도 어떤 설명을 덧붙여서 '그럴만했겠다'고 독자와 관객을 이해시키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떠난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데다가, 그것을 납득할 수 있게 되더라도 남은 사람은 그저 인생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거대한 싱크홀을 어떻게든 메꿔내고 살아가야 한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가혹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에 떠난 사람이 원망스러울 수 있지만, 아무리 가까이 지내더라도 타인의 내면은 불가해한 것이다. 언제 어떻게 왜 자기 삶의 모든 것과 헤어질 결심을 했는지는 떠난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애초에 이유라는 것이 없었을 수도 있다. 예측하고 방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는 유난히 인물들의 뒷모습이 많이 나오는데, 영화 초반에 유미코의 할머니(노인), 이쿠오(청년), 토모코와 유이치 남매(어린이)의 뒷모습이 터널 끝의 빛을 향해서 걸어가는듯한 구도로 등장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러니 가는 사람을 쫓아가서 말려도(할머니), 그 길로 돌아오지 않을 줄은 상상도 못해서 선선히 보내도(이쿠오)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 그러나 뛰노는 남매의 뒷모습에는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다. 죽음을 향해 가는 것과 살아가는 것 자체는 이토록 구분하기 어렵다.





다른 존재에게 마음을 올려놓으면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을 때보다 약해지고, 실망하고, 고통의 범위는 자신의 육체 너머로 확장된다. 그래서 유한한 존재를 힘껏 사랑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은 곧 삶의 여정과 같이 있으므로 우리는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못한다.




- 난 정말 모르겠어, 그 사람이 왜 자살했는지. 왜 기찻길을 따라 걸었는지. 한번 생각하면 멈출수가 없어요. 그사람이 왜 그랬을까요? 

- 바다가 부른다고 그랬어. 아버지가 전에 배를 탔는데, 홀로 바다 위에 있으면, 저 편에 예쁜 빛이 보인댔어. 빛이 깜빡 거리면서 당신을 끌어 당겼다는 거야. 누구나 그런게 있지 않을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환상의 빛>




사람들 잘 만나고 잘 놀고 들어왔으면서 밤마다 한 알씩 약을 모으던 때가 있었다. 그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랐으나 세상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있었고, 그래서 더없이 맑은 정신으로 삶을 끝낼 수 있는 버튼을 손에 쥐고 싶었다. 누구나 이 정도의 어둠은 품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누구나 습관적으로 죽을 궁리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치료를 시작하기로 결심했었다.


이번 연휴에 갑작스러운 부음을 듣고, 2년쯤 전에 함께 적당히 취했을 때 그가 슬며시 꺼내놓았던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을 모르지 않았으므로 이런 사람도 그런 생각을 했구나, 다들 남모르는 괴로움을 품고 사는구나 생각했으나 그는 누구보다도 생의 에너지가 충만해보이는 사람이었으므로 잠깐 앓았던 감기였겠거니 하고 머지않아 그 이야기는 잊었다. 



<성공회 기도서>



갑자기 헤어져 많이 서운하지만 사는 중에 만나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제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고 그렇다고 표현해주어서 고마웠고요. 아픔도 고역도 위험도 혐오도 배제도 없는 밝은 곳으로 잘 가있기를 바라고, 또 만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LJA0JSH7wgY 

I am a poor wayfaring stranger
저는 방황하는 나그네입니다
I'm travellin' through this world of woe
비탄스런 이 세계를 떠돌고 있죠
Yet there's no sickness, toil, nor danger in that bright land to which I go
그러나 제가 가는 밝은 곳에는 아픔도 고역도 위험도 없습니다
I'm going there to see my father
저는 아버지를 보기 위해 그곳으로 갑니다
I'm going there no more to roam
더 이상 방황하지 않도록 그곳으로 갑니다
I'm only going over Jordan
저는 그저 요단강을 넘어
I'm only going over home
저의 안식처로 떠납니다

I know dark clouds will gather 'round me
먹구름이 감싸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I know my way is rough and steep
갈 길이 험하고 가파르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But golden fields lie just before me
하지만 주님께 구원받은 자들의 안식처가
Where God's redeemed shall ever sleep
곧 앞에 금물결로 펼쳐 나올 것입니다
I'm going there to see my mother
저는 어머니를 보기 위해
And all my loved ones who've gone on
또 먼저 떠난 사랑하는 이들을 보기 위해 그곳으로 갑니다
I'm only going over Jordan
저는 그저 요단강을 넘어
I'm only going over home
저의 안식처로 떠납니다

I'll soon be free from every trial
저는 곧 모든 시련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My body sleep in the churchyard
제 시신은 교회 묘지에 안치될 것입니다
I'll drop the cross of self-denial
저는 금욕의 십자가를 내려놓고
And enter on my great reward
이제 영면에 들어갈 것입니다
I'm going there to see my Savior
저는 제 구세주를 보기 위해 그곳으로 갑니다
To sing his praise forevermore
또 그를 영원토록 찬미하기 위해
I'm only going over Jordan
저는 그저 요단강을 넘어
I'm only going over home
저의 안식처로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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