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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물고기 Jan 24. 2023

사실의 저편

《유랑의 달(Wandering/流浪の月),(2022)》, 이상일



스포일러 존재

설 연휴에 명동CGV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유랑의 달>을 보고 왔다. 원작은 소설이라고 한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괴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로 낙인찍힌 두 인물이 15년만에 재회한다는 자극적인 설정에 비해서 과히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들이 자칫 지루할만큼 잔잔히 흘러가는데도 러닝타임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안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다가 서서히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긴장감은 아마도 첫째는 영화 안에서의 평화로운 시간은 머지않아 반드시 박살나고 말 것임을 예감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소재부터가 전인류적인 금기를 건드리는 것이라 150분동안 삐끗하지 않고 끝까지 줄타기를 잘해주었을 것인지에 대한 기대와 걱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아홉살 사라사는 아빠가 죽고 엄마는 애인과 살고 있어서 고모 집에서 살고 있는데, 밤이면 중학생 사촌오빠가 방에 들어와 몸을 만진다. 그런 집이 끔찍하만 도망칠 곳이 없었고, 비오는 날 공원에 있다가 대학생이던 후미를 따라갔다. 처음으로 유년시절에 걸맞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후미가 유괴범으로 체포되면서 둘은 헤어져 소식을 모르고 살게 된다.


사라사는 사라사 자신만의 것이야. 누구도 너를 자기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지마.



그리고 15년이 지나서 둘이 다시 마주치게 되면서 생기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우려했던 소아성애라는 소재를 다루는 연출보다는 사라사의 애인인 료가 사라사를 개패듯이 패고 강간을 시도하는 장면, 보란듯이 자해를 하고 쓰러지는 장면, 그리고 사라사가 그를 보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모습이 훨씬 보기 힘들었다.

어떠한 폭력도 없으나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관계와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으나 사회적으로 정상의 범주로 승인된 관계의 대비가 선명했다. 전자는 모두가 경멸했고 징벌했으나, 후자는 모두의 관심 밖이었다. 가정과 연애관계 내부에서의 (성)폭력으로부터 사라사를 그토록 적극적으로 지켜주는 이는 없었다.

각자 인생의 어느 시점에 우연히 마주치게 된 사람들이 가족도 애인도 아닌데도 서로를 아끼게 되고, 그 마음 때문에 어렵고 귀찮은 일들을, 때로는 상당한 고난과 죽음까지도 수반할 수 있는 일들을 감당하는 서사에 나는 정말로 약하다.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존재가 생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몹시 귀한 일이고, 으레 '이런 관계에서는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이 적게 개입된 비교적 투명한 개인적 결단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갈 곳 없는 어린 사라사를 후미가 돌보았다. 그리고 자라서 어른이 된 사라사는 여전히 자라지 못했고 갈 곳이 없어진 후미를 돌보기로 하고, 그래서 함께 흐르고 떠도는 생활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안나 카레니나와 헤어질 결심을 단순히 불륜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없듯이, 유랑의 달을 단순히 어떤 소아성애자 유괴범의 이야기라고 요약하는 것은 부당한듯해서 몇 자 정리해보았다.

+이번 연휴에 끝낸 드라마 <나기의 휴식(2019)>에 나온 아역배우가 조금 자란 모습으로 나와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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