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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물고기 Mar 13. 2023

당신의 조각들

《애프터썬(Aftersun),(2022)》, 샬롯 웰스

 
필름클럽 에피소드로 <애프터 썬>을 알게 되었다. 2월에 에무시네마에서 관람하고 나서 후기를 쓰려고 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제야 정리한다.
 

사진 출처 : 다음영화


 
영화는 서른한 살 아빠 캘럼(폴 메스칼)과 열한 살 딸 소피(프랭키 코리오)가 튀르키예 토레몰리노스에서 보낸 여름휴가를 담은 오래된 캠코더 화면으로 시작된다. 캘럼은 소피의 엄마와는 이혼해 고향인 스코틀랜드를 떠나 런던에 혼자 지내고 있고, 소피의 방학마다 부녀가 함께 휴가를 보내온듯하다. 
 


사진 출처 : 다음영화


여러 장면에서 캘럼이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카펫 가게에서 우두커니 기대어 있는 얼굴이, 어느 날 혼자 어두운 밤거리를 헤매다가 밤바다로 무작정 걸어 들어가는 뒷모습이, 한밤중에 침대에 맨몸으로 앉아 오열할 때 들썩이는 등뼈가, 딸에게 강박적으로 호신술을 가르치는 모습과 화장실에서 팔 깁스를 잘라내려 애쓰다가 절망하는 표정이 위태롭다. 자신이 마흔 살 전에 아빠가 될 줄 몰랐다는 스킨스쿠버 강사의 말에 캘럼은 "나는 내가 서른 살까지 살아 있어서 놀랐어요."라고 대답한다.
 
캠코더 화면에는 캘럼이 사둔 명상과 태극권에 관한 책이 몇 권 쌓여 있는 것이 잡힌다. 그가 어떻게든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회복하려고 애쓰고 있고, 딸 앞에서는 자기 마음의 어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웃는 모습조차 버거워하는 것처럼 보이고, 사소한 일에도 트리거가 걸려 와장창 무너져버릴 것만 같다. 휴가지의 풍경은 멋지고 날씨는 완벽한데도 관객은 서서히 뭔가 슬픈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을 갖게 된다.
 

사진 출처 : 다음영화


휴가 막바지의 하루는 캘럼의 서른한 번째 생일이었다. 소피는 같이 관광을 온 사람들에게 우리 아빠 생일이니 다 같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하는데, 천진난만하고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아빠를 올려다보는 소피와 달리 햇볕을 가리며 딸과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캘럼의 표정은 어쩐지 조금 난처하고 복잡해 보인다. '내게 이런 축하를 받을 자격이 있나?'
 

사진 출처 : 다음영화


아마 휴가가 끝나고 소피를 영국으로 보내고 나서 캘럼은 튀르키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이는데, 아빠가 정말 사랑한다는 것은 기억하라는 엽서를 소피에게 남긴다. 실로 캘럼이 삶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기쁜 순간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 아니고, 딸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거나 책임감이 없어서도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을 해주고 싶은 딸에게도 물질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충분히 다 해줄 수 없어 사랑하는 마음조차 그 크기만큼 자기 삶의 무게로 더해지고, 기쁜 날들조차 온전히 자기 것으로 누리지 못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망가진 마음을 도무지 이전으로 되돌릴 방법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했다.

그런데 나는 그가 죽고 싶어 하는 만큼 절실하게 살고 싶어 한다고 느꼈다. 캘럼은 소피에게 런던에 네가 지낼 수 있는 방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등 미래를 기약하는 말을 하고, 그것은 그냥 하는 거짓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노래 가사처럼 사는 것에 너무 진지한 사람일수록 죽을 궁리를 자주 하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그저 가벼우면 괴리감이나 환멸을 느낄 일이 적기 때문이다. 캘럼이 양치질을 하다가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향해서 거칠게 양칫물을 뱉어버리는 장면이 잠깐 나오는데, 모든 흔적을 세상에서 싹 지워버리고 사라져 버리고 싶은 자기 환멸이 단적으로 느껴졌다.

사진 출처 : 다음영화



아마도 많은 관객들이 먹먹하게 기억할 마지막 장면은 캘럼이 먼저 영국으로 돌아가는 소피를 공항에서 배웅하는 캠코더 화면이다. 소피가 출국게이트를 통과하자 캘럼은 그대로 어떤 문 너머로 들어가는데, 흔들리는 문 틈으로 번쩍거리는 조명이 엿보이고 이내 닫힌다. 서른한 살이 된 소피의 꿈속에서는 아빠가 어두운 공간의 번쩍이는 조명 속에서 마치 몸부림치는 것 같은 모습으로 춤을 추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아마 문 너머에는 그 장소가 있는 것 같다.
 
그 어두운 공간이 상징하는 바는 뭘까 생각하다가 떠올린 것은 '타인의 불가사의한 내면'이다. 부모 자식 간이라 하더라도 타인의 내면은 예외 없이 미지의 것이다. 그리고 찾을 수 있는 단서는 어두운 공간에서 잠깐의 조명을 받아 비치는 얼굴처럼 단편적이다. 춤을 추고 있는 것인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결말부에 이르러 다시 생각해 보면 영화에는 소피가 실제로 목격했을 리가 없는 장면들이 여럿 등장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제야 이 이야기의 정체를 이해하게 된다. 영화는 이십 년이 지나 그때 아빠의 나이가 된 딸이 어렴풋한 기억의 조각과 흩어진 단서를 끌어모아 아빠와의 마지막 추억을 재구성하고, 영원히 알 수 없게 된 그의 내면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고자 애쓰는 애도 그 자체라는 것을.



Can't we give ourselves one more chance?
우리는 우리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줄 수 없는 걸까?
Why can't we give love that one more chance?
왜 우리는 사랑에게 기회를 더 주지 못하는 걸까?
Why can't we give love, give love, give love, give love,
왜 우리는 사랑에게, 사랑을, 사랑에게, 사랑을,
Give love, give love, give love, give love, give love?
사랑에게, 사랑을, 사랑에게, 사랑을, 사랑을 주지 못할까?

Because love's such an old-fashioned word
왜냐하면 사랑은 너무나도 진부한 단어니까
And love dares you to care for
그리고 사랑은 네가
The people on the (People on streets) edge of the night
밤의 끝자락에 있는 (길을 걷는 사람들) 사람들을 어루만질 수 있게 하니까
And love (People on streets) dares you to change our way of
그리고 사랑은 (길을 걷는 사람들) 네게 우리가
Caring about ourselves
우리를 돌보는 방법을 바꿀 수 있게 하니까
This is our last dance
이게 우리의 마지막 몸부림이야
This is our last dance
이게 우리의 마지막 몸부림이야
This is ourselves under pressure
이게 우리들이야, 압박감 속에서
Under pressure
압박감 속에서
Under pressure
압박감 속에서
Pressure
압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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