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을 뻔했니, 네가 죽을 뻔했니...
한 달여 전 이야기입니다.
이상하리만큼 응급실에 환자가 안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화이트베드라고 칭하는 보통 이런 날의 경우 둘 중 하나의 경우로 압축됩니다. 몸의 모든 털이 곧추세워질 만큼 긴장되는 중환자가 오는 경우, 혹은 갑자기 밀려드는 경환 릴레이... 네 그렇습니다. 결국 응급실은 어찌 됐든 환자가 밀려온다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날도 이 평온이 오래가진 않았습니다.
응급실 환자가 내원했을 때 환자의 개략적인 정보를 확인하고 중증도를 분류하던 간호사의 목소리가 다급합니다.
"과장님 CPR(심폐소생술) 방으로 환자 갈게요!"
남성, 60대 추정, 걸어 들어오는데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얼굴이 까맣게 변해 있는데, 두 손으로 목을 움켜쥐고 들어옵니다. 어딘가가 막혀 숨을 못 쉬는 상황임을 직감하고 간호사에게 빠르게 지시하고 감별을 위해 환자에게 다급히 외쳤습니다.
"모니터 달고 앰부 짤게요! 바로 Intubation(기관삽관) 준비해 주세요!, 환자분 뭐 드시다가 그런 거예요?"
환자는 말하지 않고 눈과 몸짓으로만 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안 먹었어.!! 안 먹었어.!! 숨을 못 쉬겠어!!!!!)"
이 행동을 보고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이물로 인한 기도가 막힌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Acute epiglottitis (급성 후두염) 혹은 Ludwig's angina(턱아래 부위의 봉와직염의 일종) 둘 중 하나입니다.
본인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환자의 손을 치우자, 외관상 목이 부어있진 않습니다. 그러면 급성 후두염의 가능성이 99%입니다. 짧은 찰나에 온갖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 Airway 확보 못하면 이 환자 죽는다. 바로 소송 걸린다. 나 면허 뺏긴다. 무조건 넣는다. 난 할 수 있다. 기관삽관 시도 해보고 안되면 목 바로 뚫는다.'
"Intubation 준비부터요! Cricothyrotomy(윤상갑상연골절개술) 세트도 까주세요!"
모니터링을 달자마자 산소포화도가 33%로 깜박거리다 수 초 만에 --%로 확인됩니다. 산소포화도가 측정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순간 오랫동안 숨을 못 쉬는 환자에게 발생하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부르르 떨며 모든 근육이 뻣뻣해지며 눈이 뒤집히는 경련이었습니다. 응급실에서 진상 환자 상대할 때 말고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데,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급히 간호사에게 외쳤습니다.
"Impending arrest(심정지가 임박한 상황) 요! 빨리 intubation이요!!!!"
그 말을 함과 동시에 모니터를 보는데 HR(분당 심박수)가 80에서 27로 급격히 떨어집니다. 앰부를 짜고 있던 내 한 손을 떼고 경동맥을 만져보는데 맥박이 없습니다.
"CPR(심폐소생술, 심정지 환자 올 때 우리는 이렇게 외친다.)이요!!
응급실에서 일하시는 선생님들은 본능적으로 머릿속에서 튀어나올 'CAB!' Compression(가슴압박)-Airway(기도개방)- Breathing(인공호흡)... 급한 대로 환자 가슴압박을 하며 외쳤습니다.
"LUCAS(자동 가슴압박 기계) 주세요!"
심정지가 된 환자의 가슴압박을 하면서 갈비뼈가 4~5개가 동시에 부러지는 게 우두둑 느껴졌습니다. 오돌뼈를 씹는 그 느낌.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은 갈비뼈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심장이 가장 중요합니다.
LUCAS 기계를 연결한 뒤 intubation을 위해 다시 환자의 머리 위로 위치를 옮겼습니다.
자리를 옮기는 순간 0.5~1초의 찰나에 오만 생각이 들었는데 저도 모르게 이 기도가 나왔습니다.
'하나님, 진짜 제발 성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환자의 입을 벌리고 후두경을 통해 튜브를 넣을 공간을 찾는 데 역시나 최악이었습니다.
이미 부을 대로 부어있는 후두 때문에 ET Tube(기관내관)를 넣을 구멍은 1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
이러면 응급의학과 의사마다 다들 각자의 노하우가 있을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ET Tube를 구멍으로 넣으려고 하지 말고(애초에 구멍이 안 보이는 상황이다.) 후두를 미끄럼틀처럼 타고 가면 어차피 해부학적으로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구멍이 나올 테니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말로는 참 쉽지만, 이 시도가 실패했을 때는 부을 대로 부은 후두를 자극하게 되고 더 부어오르기 때문에 바로 목에 구멍을 뚫어야 합니다. 이 술기만큼은 모든 의사가 항상 피하고 싶어 합니다. 몇 번 해보긴 했지만, 혹여나 실패했을 때의 지옥 같은 악몽이 떠오릅니다. 기관삽관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기 때문에 후두덮개를 타고 들어가기 직전에 다시 간호사에게 말하였습니다.
"안되면 Cricothyrotomy 할게요. 바로!"
ET Tube 팁을 제 시야에서 끝까지 놓치지 않으며 4살짜리 조카가 미끄럼틀 유연하게 타고 내려오듯 후두덮개를 미끄러지듯 스치는 순간 tube를 4cm 더 훅 밀어 넣었습니다. 튜브가 식도가 아닌 숨구멍으로 들어갔을 때의 그 순간은 해본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그 촉이 있습니다.
"아 됐다!"
넣었던 튜브가 절대 빠지지 않도록 간호사에게 신신당부하였습니다.
"이거 빠지면 다시는 저는 못 넣습니다. 절대로 안 빠지게 고정 부탁드립니다!"
인공호흡기계를 연결하니 한 사이클 만에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합니다. 심정지의 원인은 전형적인 기도 막힘으로 인한 hypoxia(저산소증)였습니다.
기관 삽관한 뒤의 X-ray에서는 진짜.. 다행히 잘 들어간 것을 확인했습니다. 환자의 의식도 곧바로 깬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말 그대로 요단강을 건넜다 다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의식 수준 명료함을 확인 후에 환자를 다시 재워야 했습니다.
"환자분 죽다 살아났어요, 심장이 멈췄다 다시 뛰는데 목에 큰 관을 넣고 있으니 불편할 테니 약을 써서 진정 수면 시킬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적극적인 케어가 어려울 수 있으니 더 큰 병원으로 전원 가서 치료받으실 겁니다. 동의하시나요?"
환자는 당연히 인공호흡기를 넣고 있기에 말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 끄덕입니다.
"진짜 죽을 뻔했어요. 환자분 살아서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미리 구두로 처방한 스테로이드와 항생제, CT 오더를 전산에 넣으며 보호자에게 여차 진행된 상황과 빨리 응급실로 올 것을 설명한 뒤 전화를 끊었습니다. CT를 찍으러 가기 위해 준비 중 잠깐 정수기에서 나오는 찬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그래, 아저씨도 죽을 뻔했지만, 나도 같이 죽을 뻔했지....'
1시간 정도 지나 딸인 보호자가 새벽에 택시를 타고 내원하였고 환자의 동맥혈 검사가 극적으로 좋아진 것을 확인 후, 근교에 있는 상급종합병원으로 전원 보냈습니다.
환자가 떠나간 뒤에 스테이션 의자에 앉아 실수한 것은 없는지, 빼먹은 것은 없는지 시간을 돌려 고민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지독히 운이 좋았기에 이 환자도 살았고 저도 살았지만, 만일입니다. 아주 만약에 기관삽관을 실패하고 Cricothyrotomy를 하는 동안 뇌에 산소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지속되어 환자에게 신경학적 장애가 생겼거나 아주 심하여 사망한 경우, 보호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을지 상상해 보았습니다.
'아휴, 그래도 고생하셨겠네요, 아버지의 장애(혹은 사망)는 불가피한 것이지요. 그래도 대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할지, '네가 능력이 부족해서 우리 아버지가 장애(혹은 사망)가 생겼는데, 평생 책임져야지, 진료비는 물론 손해배상 청구도 당연히 할 것이고, 형사소송도 제기할 거야.'라고 할지..
요즘 의료계를 둘러싼 분위기를 봐서는 후자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지 않을까요.
언제까지 바이탈과의 의료진들이 부채를 흔들며 외줄 타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굳이 이렇게 살지 않아도'이 과들을 피해 편하게 살려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텐데 말이죠...
글을 쓰는 내내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니 겨드랑이에 땀줄기가 흘러내릴 정도입니다.
어쨌든 환자는 살았습니다. 말 그대로 '지독한 행운'을 다 쓴 하루였습니다.
...
추신,
환자가 살아서, 숨을 다시 쉴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저 무사히 잘 치료받고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