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 본 심정지 환자가 우선일까, 내 오빠가 우선일까.
(해당 글은 10월 2일 오후에 벌어졌던 제 실화를 당일 작성한 글입니다. 현재 해당 사건의 사우나 보호자는 응급의료법 위반으로 검찰 송치 되었습니다. )
관련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zvusNdMDic&t=10s )
관련뉴스: https://www.ichannela.com/news/main/news_detailPage.do?publishId=000000377020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가능한 모든 언론사에 이 사실을 제보하고 공론화하려고 합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다시는 이런 악행이 응급실 내에서 벌어지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글을 작성합니다. CCTV도 필요시 확보하려고 하고, 보호자 동의 후 시작한 녹취파일도 갖고 있습니다. 밤을 꼬박 새운 뒤 피곤한 상태로 글을 제멋대로 쓰는지라 다소 격한 표현, 두서가 맞지 않는 표현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오후 10시 41분
추석연휴로 밀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몸이 만신창이 상태 중
60대 남성, 사우나 온탕에서 얼굴은 다행히 내민 채로 실신 혹은 경련으로 추정, 의식 혼미하다며 보호자가 가슴압박을 했고 환자가 아파하니 가슴압박을 중단하고 119를 통해 이송되었다.
보호자는 남성(친척, 매제라고 했던 것 같다) 이 같이 왔고, 환자 상태를 확인해 보니 '축구경기 어떻게 돼가고 있냐?'라며 지리멸렬한 상태로 되묻는 중이다. (젠장 나도 보고 싶은 경기인지라 궁금해서 찾아볼뻔했다. 이날 아시안게임 한국 경기가 있었다.) 남성보호자에게 병력 청취 및 당시 상황설명을 들은 뒤 머리 ct와 심전도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간호사는 재빨리 IV line을 잡고 CT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여기까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냥 한 명의 환자일 뿐이다.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후 10시 51분
119도 아니다. 경찰복을 입긴 했는데 경찰도 아니다. 정복을 입은 3명의 남성이 스트레치카로 환자를 데려오는데 '자살 시도 환자입니다!'란다. 들어오는데 얼굴을 보니 청색증이 이미 심하고 당연히 환자 보자마자 경동맥을 만졌다. 역시나 안 뛴다. 심정지 환자다.
(이어서 소개할 환자 약칭을 '사우나 환자' '심정지 환자'로 하겠다) 아무것도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들어온 심정지 환자였다. 부랴부랴 소생실로 옮겨서 기관삽관 후에 2분에 한 번씩 리듬을 체크했다.
그 와중에 밖에서 뭐가 소란스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누군지도 모르겠고 중요한 문제도 아닐 거라서 심정지 환자만 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정복을 입은 사람들은 모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교도관이었고 환자가 본인 옷가지를 창살에 묶어 목을 매달았던 재소자였다. 정신이 없어서 못 봤는데 그제야 확인해 보니 번호가 적혀있는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다행히 기관삽관을 통해 충분한 산소를 주고 가슴압박 5사이클 후에 심장이 다시 뛰는 것을 확인했다. 일단 살았다!
하지만 모든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아는 것처럼 진짜 골치 아픈 건 이때부터 시작이다.
다시 심장이 안 뛸 수도 있고, 심정지 시간이 20분 넘어 있었으니 뇌세포, 심근 손상은 당연하다, 살아생전의 때처럼 심근수축이 안되니 당연히 혈압도 낮을 테다. 수액을 정주하면서 간호사에게 C line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근데 밖에서 어떤 여자의 "꽥~~~?#^@^"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가보니 아까 왔던 사우나 온탕에 있었던 환자의 배우자이다. 본인 환자를 진료 안 봐준다고 아무도 환자에게 관심을 안 기울인다며 소리 지르며 난동을 피우고 있던 것이다.
"심정지 환자가 갑자기 온 거라 이분 먼저 응급처치를 하고 있어요, 피검사는 이미 들어갔고 머리 CT 찍으러 갈 거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간호사가 앞서 말했다고 한다.
"여기 이렇게 사람을 15분째 방치하는 게 어딨어? 여기가 병원이야? 거지 같은 병원이 다 있나? 아니 의사는 사람을 안 봐? 그리고 심정지가 뭐 어쩌라고! 우리 오빠를 먼저 봐줘야 할 거 아니야!"라며 막무가내로 환자를 봐달라고 한다.
가만히 10초 정도 나도 지켜보고 있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기에였다. 가슴이 막 답답하기 시작했다.
"심정지 환자가 와 있어서 이분 CT 오더까지 나 있으니 찍고 오면 설명해 드릴게요 그리고 응급실은 응급환자가 우선입니다!"라고 보호자에게 말했으나 돌아오는 건 매몰찬 반말과 조롱이다.
"아니 의사는 사람을 안 봐? 이런 거지 같은 병원!"을 계속 되뇐다.
'이미 나는 친척이라고 온 보호자에게 먼저 설명했고 오더는 나 있었고 이제 CT 찍으러 가면 되는데...'
보호자가 난리를 치느라 영상기사님도 오셔서 환자를 옮기지도 못한 채 이 광경을 넋이 나간 채 쳐다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심장이 뛰기 시작한 심정지 환자 때문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데, 이건 도저히 그냥 참고 모른척하며 지켜볼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이때부터 나의 펜 녹음기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녹음을 시작했다)"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심정지 환자 있어서 거기부터 봐야 한다고 말했잖아요!!"
"어디 보호자한테 소리를 질러요! 이런 거지 같은 병원이 다 있어? 씨발, 야 여기 의료진들 다 미친놈 미친놈이야! 됐어! 나 여기서 나갈 거니까 119 불러줘요! 119 구급대 불러!!"
119는 언제부터 이렇게 동네북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뭐만 하면 무조건 119 부르란다. 물론 이 119 메아리에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부를 거면 본인이 불러야지, 왜 시키나.
물론 이 진귀한 광경은 여기 의료진만 본 것은 아니었다.
CT 찍으려고 환자 데리고 가려고 했던 이송 기사님, 독감으로 확진되어서 약만 받아서 가면 되는데 지금 이 환자에 모두가 달라붙어 있어 퇴실을 할 수 없는 두 모녀. 술 먹다가 넘어져 f/u ct를 기다리고 있던 군인, 소변이 마려운데 나오지 않는다던 여성, 그리고 심정지 환자를 데려왔던 교도관까지. (이들은 이 전쟁의 말미에 경찰에게 '이건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옆에서 다 들었는데 나도 저 보호자 때문에 지금 퇴원 못 하고 있어 나도 피해자예요!'라고 경찰에게 말한다. 경찰은 그저 듣고만 있다.)
근무 중이던 간호사들 모두가 이 괴성을 지르는 여자 보호자에게 다른 환자 보호자가 있으니 제발 소리 지르지 말 것을 요청하였으나 이제 불같은 전쟁은 걷잡을 수 없다.
결국 책임자인 나와 이 괴한(?)과의 대결로 좁혀졌다.
"이렇게 환자를 방치하는 게 어딨어? 의사가 환자를 봐야지 거지 같은 병원 썅!"
이미 보았는데... 무슨 소리야..
그건 그렇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방치'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아무리 내 몸이 피곤해도 환자를 방치하진 않는다. 방치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내가 거들떠보지 않는다면 지금 진료 보지 않고 이틀간 놔둬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만큼 경환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적어도 사우나 환자는 그런 환자는 아니었다.
결국 내가 싸워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깨닫고 ' 보호자 때문에 심정지 환자는 물론 다른 환자도 진료 못 보고 있어요. 진료방해죄로 경찰에 신고할게요!!' 하니
"야 신고해! 112 불러!! 경찰 부르라고! 누가 잘못했는지 CCTV 다 까봐! 너희가 환자를 15분 동안 방치했잖아!"란다. 아 방치 마렵네.
"아휴 저 보호자 밖으로 나가라고 할게요! 못 들어오게 해 주세요!!" 라 하니... 귀도 안 좋으신가 보다. 처음부터 내 말을 제대로 들은 게 없다.
"환자를 나가라고? 나가라는 게 말이야? 환자를 보지도 않고 나가라는 게 의사야?"
내가 도대체 왜 환자를 나가라고 하느냐, 환자 검사하려고 오더까지 다 내놨는데... 본인 나가라고 하는 소리를 어찌 저렇게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지...
'보호자 나가라고 했지 언제 환자 나가라고 했어요, 있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고 계시네!' 라 하니 본인이 똑똑히 환자 나가라고 했다고 빼 애 애액~~!!! 한다.
내가 근래에 봤던 가장 정신 나간 여자다. 도저히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소리 지르는 여자 보호자를 응급실 밖으로 일단 나가라고 간호사들이 이야기 하나 듣기를 거부하고 본인 할 말만 한다. 무슨 진단명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전형적인 정신과 환자이다. 아니 그냥 미쳤다. 미쳤다는 것으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에게 더 중요한 환자는 일단 사경을 벗어난 심정지 환자였다. 미친 보호자로부터 벗어나 다시 심정지 환자 옆에 왔다. 한숨을 크게 두어 번 쉰 뒤 쇄골 아래를 소독하며 '저건 하나의 동물이다. 사람이 아니다 동물이다. 그래 나는 지금 동물을 마주하는 것이다. 침착하자 일단 이 환자부터 살리자.'를 속으로 되뇌었다. 소독하는 내내 진짜 기분이 더럽고 치욕적이고 뭣 같았지만, 감정적으로 휘둘리면 오히려 이 심정지 환자에게 해가 될 것 같다. 다행히 C line은 한방에 잡혔고 X-ray를 확인하는 중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응급의료 방해 행위로 고발할 것임을 주지 시킨 뒤 보디캠을 통해 녹화를 부탁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이 여자는 난리를 치고 있었다. 아주 액티브하게.
혹여나 뇌출혈이나 다른 문제 있는 건 아닐까 조바심에 심정지 환자의 떨어져 가는 혈압을 보며 승압제 오더를 내면서 옆 컴퓨터로 사우나 환자의 머리 사진을 확인하였다. 다행히 꽝이었다. 그렇다면 MRI를 찍어 확인을 해봐야겠지. 사우나 환자도 무언가 급성 기적 질병이 있다면 해결해 줘야 하는 것도 맞으니 빨리 MRI를 찍자 했다.
그동안 다행히 심정지 환자의 바이털은 잘 잡혀갔고 MRI 검사 또한 꽝임을 확인했다.
감정을 추스른 뒤라 보호자에게 환자 상태에 대한 설명을 해야 했기에 "CT상에서 뇌출혈도 보이지 않고 MRI 상에서도 저명한 뇌경색은 보이지 않습니다. 의식이 명료해지는지 이따 확인해보겠습니다. 만약 의식이 명료하지 않으면 실신보다는 발작에 포커스를 두고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라고 차분히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보호자는 또 미친 소리를 한다. "그럼 지금까지 한 게 뭐가 있는 거냐? 도대체 왜 이랬던 거냐?" 란다. 분명히 내가 3초 전에 설명했는데,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은 건가?
"그걸 검사해 보기 위해서 여기서는 처치가 안 되니 상급병원으로 전원 하겠다고 말씀드렸지 않았습니까. " 하니 "지금 여기 와서 한 시간 반 동안 도대체 한 게 아무것도 없는 거네! 진짜 미친 병 원이네!"라는 거다.
음..
"1시간 반 동안 머리 CT 찍고 MRI 찍고 피검사 문제없는 것 확인했는데 뭘 아무것도 안 했다는 거예요?!!"
"너 의사면 말조심해라. 어!!!! 미친 병원이네. 보호자한테 저렇게 꼬박꼬박 지지도 않고 "
이때부터의 처신은 나도 좋지 못했다. 오기가 생겨버렸다. 일단 '방치' , '아무것도 안 했음'이라는 표현, 그리고 '환자 잘못되면 너희가 책임질 거야!?'라는 발언은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보호자가 아무리 미워도 환자는 환자일 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사람이 아닌 동물과의 싸움은 이길 자신이 있었다.
"보호자가 무슨 왕이에요? 내가 왜 져야 하는데요?"
"저것 봐 한번을 안 져! 저렇게 꼬박꼬박 대꾸하는 거 봐! 이런 거지 같은 미친 병원이 어디 있어!!"
"저도 이렇게 미친 보호자는 태어나서 처음 봅니다!!"
라면서 역시나 심정지 환자 바이털을 보면서 항생제와 다른 약들을 내고 있었다.
음...
무려 한 시간 동안 이어진 썰전을 모두 글에 담을 수는 없지만, 이미 녹음도 다 되었고 경찰 통해 보디캠에 녹화도 다 되었다. 아무리 봐도 상식적으로 이 보호자가 제정신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경찰이 이를 부드럽게 말리려고 하니 경찰에게 소리 지르며 난리 치는 모습까지도 적나라하게 담겼을 것이다.
타원으로 전원을 계속 요구하여 타원에 전원문의 했다.
'환자 상태 설명 후 특별히 해줄 것 없이 의식만 또렷해지면 입원하지 않고 퇴원할 수 있다., 그리고 연고지 병원으로 전원 갈 수 있다.'라는 답변을 그대로 보호자에게 전달했다.
"아니 입원이 안 된다고?! 환자가 이러는데 입원이 안 돼?!"
더 이상 대화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답변하지 않았다. 나는 내 할 일을 했고 보호자가 두 명이나 있으니 충분히 이해했으리라.
심정지 환자 전원 문의를 하는데 강원 지역에서 전원이 안 되어 119 중앙전원조정센터까지 연락했다. 나에게 급한 환자는 MR 꽝이 나온 사우나 환자가 아니라 심정지 환자이다.
사우나 환자를 데려가기 위한 사설 구급차가 오고 가기 전 한 번 더 GCS를 체크했다. "환자분 여기 어딘지 알겠어요?" "어 여기 응급실" "옆에 보호자 이름이 뭐예요?" (아까는 보호자 이름도 이야기 못 했다.) "xxx이지, 내가 미안해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아까는~"이라며 앞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듯 허허 웃고 계신다. 15점 만점에 15점..
'음 OK 일단 환자는 큰 문제없을 것 같고, 보호자 너는 딱 잘못 걸렸다. 넌 내 앞에서 빌게 해 주마 그래도 선처는 없다.
''곧 고발장 날아갈 테니 준비하세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끝까지 참았다. 나도 감정적으로 똑같은 동물이 되긴 싫었기 때문이다.
왜 환자가 그렇게 지남력이 떨어지게 이야기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다. 아마도 seizure이후 post ictal state일 가능성이 높지만 함부로 보호자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최종진단명이 그게 아니면 어떤 식으로 꼬리를 물고 늘어질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의식이 완전히 돌아온 거로 봐선 큰 문제는 없음을 직감한다. 그들은 그렇게 조용히 응급실을 떠나갔다.
심정지 환자가 와 있어서 모든 의료인력이 이 환자를 살리는 데에 집중하고 있을 때 '나 언제 빨리 봐주냐?' 하던 보호자들은 자주 만났었지만, 이 정도로 정신 못 차리는 수준은 처음 접했다. 그것도 무려 한 시간 동안씩이나.
세상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늘 있었던 일은 평생의 술안주 및 추억으로 갖고 갈 계획이다. 응급실을 내원한 분 중 누군가를 고소하여 유죄 판정을 받기까지 끝까지 해보겠다고 생각한 하루였다.
그렇게 좋아하는 응급실 내 CCTV도 명확하게 찍혔을 테고, 혹시나 몰라 내 펜 녹음기도 잘 녹음되었는지 조금 있다 확인해 보려고 한다.
하. 세상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yKRWUGOF9ZM
추석도 싫고 사람도 싫고 그냥 모든 게 다 싫은 하루이다.
지옥이 이런 곳일까.
나야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이다 생각하고 응급실에서 살아가겠지만.. 이런 글을 보고도 응급의학과를 지원하면 그냥... 병 아 아니다.
그래 내가 병신이다. 내가 병신이야.
이러면서 응급실을 의사들 보고 지키라고 한단 말인가? 정원을 늘리면 해결이 된다고?
'까는 소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