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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한솔 Dec 11. 2023

이러다 내가 죽겠네.

어찌 이런 일이...

며칠 전 이야기입니다.

70세 남환, 3일 전부터 지속되는 호흡곤란으로 내원한 분입니다.


의식은 기면상태, 119 접촉당시 산소포화도 85% 그 외 바이탈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분이라고 합니다.


환자가 도착했을 때 전형적인 폐부종 환자처럼 식은땀을 흘리고 있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굉장히 얼굴을 찡그린 채로 호흡을 하는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청진상 약간의 수포음이 있었지만 크게 문제 될 만한 수준은 아니었고 체액 저류의 간접적 지표인 pitting edema (오목부종)은 관찰되지 않습니다. 

 

portable X-ray(X-ray실 오갈 수 없는 안 좋은 중환자는 이동식 x-ray로 촬영합니다.)에서도 딱히  폐부종 강력히 의심할만한 소견 보이지 않으며 폐렴소견도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심전도 검사상에서도 큰 문제없었습니다. 

가장 먼저 나간 동맥혈 검사상 pH 7.21 PCO2 78 PO2 150 HCO3- 24 전형적인 호흡성 산증, 숨을 들이마시는 건 잘 마시나  CO2 retention(어떠한 이유로 몸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내뱉지 못하고 있는) 수치입니다. 

CO2 retention이 생기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체내 이산화탄소 축적으로 인한 기면상태. 기계환기가 필요한 환자입니다.  보호자(할머니)에게  상기 증상에 대해 설명하였으나, 고령의 할머니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것 같습니다. 간호사에게 기관 삽관 준비를 해달라고 말한 뒤  딸에게 전화를 걸어 상태를 설명하였습니다.

기관삽관을 하기 전 환자의 체형을 보는데 예사롭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환자의 목은 굉장히 짧고  비만인 환자.  역시나  입을 벌려 보았는데 목젖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마취 전 기도평가를 할 때 가장 흔하게 쓰는 Mallampati score가 있습니다. 이미 이 환자는  3~4 grade에 해당합니다. 


2년 차 4월을 이후로 산전수전 겪었던 어려운 케이스들의 기관삽관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어서 자신하고 있었던 저였습니다.   어려운 환자는 볼만큼 봐 왔다 생각했는데 시작할 때부터 왜인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전신마취유도제인 Etomidate를 하나 쓰고 laryngoscope(후두경)를 통해 들어가는데, 원래라면 정상적으로 보여야 할 후두덮개가 애초에 보이질 않습니다.  뒤지고 뒤져봐도 도저히 보이지 않습니다.  Etomidate는 반감기가 짧은 마취유도제라 금방 환자가 깨버립니다. 환자가 힘든지 laryngoscope를 꽉 깨물어버리기에 조심히 뺐습니다. 


1차 시도 실패.


이때부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무리하게 시도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교과서상으로도  기관삽관 유지가 필요한 환자였습니다. 갈수록 CO2 retention은 심해질 것이 분명하기에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이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넣어야 할 것입니다. 


Etomidate를 하나 더 쓰고 비디오스코프를 통해 들어 올리는데 겨우 vocal cord(성대)가 보일 듯 말 듯합니다.  ET Tube(기관 내 튜브) 7.5Fr(size)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원체 확보된 시야가 좁은지라  ET Tube의 고정에 필요한 풍선역할을 하는 비닐 때문에 전혀 들어가질 않습니다. 


2차 시도 실패.


자신감이 확 떨어지다 못해 바닥을 기어갑니다. 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비디오스코프로는 그래도 어느 정도 보일 듯 말 듯하는데.. 다시 ballooning site를 만져 시도. 환자가 또 금방 깨어버린다. 


3차 시도 실패.

술기가 잘 되지 않을 때 의료진을 교체하여 시도하는 것을 손을 바꾼다고 합니다. 오금이 저릴 정도로 손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 뒤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같이  일하는 응급의학과 과장님을 집에서 부를 수도 없었습니다.


보통 이렇게 여러 번 실패하면 교과서상으로 Cricoidothyrotomy(윤상갑상막절개술)를 시도하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목에 구멍을 만들어 기도확보를 하라는 건데,  비디오로 보이는 상황에서 아무리  해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보이는데 못 하는 것도 너무 바보 같은데.


7.0Fr로 Tube size를 조금 줄여서 재 시도하였습니다. ET tube가 들어가야 할 부위가 다른 일반 환자들보다 훨씬 더 좁은 상태입니다. 환자의 호흡 타이밍에 맞추어 성대가 열릴 때 들어가야 하는데 시야확보도 안 되는 상황에서 왼손힘이 빠지기 시작하니 후두덮개가 들어 올려지지 않습니다. 


4차 시도 실패.



환자의 근육을 완전히 이완시키는 Succinylcholine이라는 약물이 있습니다.  이걸 쓰게 되면 비만인 환자의 근육긴장도는 떨어지겠지만, 단 한 번만에 성공해야 합니다.  만약에 이 약을 쓰고도 기관삽관을 실패하면 진짜 Cricothyrotomy 밖에 답이 없습니다. 


'진짜 마지막 시도다. 이번에도 안되면 그냥 Crico 해야겠다. 하.. 하나님'


6.5Fr로 겨우 환자가 호흡하는 타이밍, 성대가 열리는 순간에 맞추어 쑤욱 집어넣었습니다. 


성공했습니다!! ㅠ 


기관삽관 후   ETCO2(End-tidal CO2를 줄인 용어로써 호흡 시 발생하는 호기말 이산화탄소 분압 즉,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CO2)를 배출하는데 이때 발생하는 CO2 분압을 의미합니다. E-T tube가 기도 안으로 잘 들어갔을 때 아래와 같은 파형이 나옵니다.)를 확인하니 보이는 파형. 내 평생 이 파형이 이렇게 반가운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앰부를 짜고 기관삽관을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앰부를 짜고.. 5번을 반복했었던 아찔한 순간이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내려 흥건히 젖어버렸습니다. 힘으로 후두덮개를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고 또 그래왔지만 왼팔은 부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이 케이스는 제가 접한  케이스 중 가장 힘들었던 경우였습니다. 


CT를 찍고 온 뒤 재확인한 동맥혈 검사는 역시나 심각합니다.

pH 7.0 PCO2 117,  제일 처음의 검사결과보다 더 악화되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어찌 됐든 저찌됐든 무조건 인공호흡기를 넣었어야 하는 환자였던 것은 사실이고, 안도감과 함께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자가 죽을 수 있고, 나도 죽을 수 있는 상황.'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갔다 생각하는 중 배우자인 할머니가 딸과 전화를 하는데 스피커폰으로 딸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스테이션 한복판에 들려오는 뚜렷한 목소리.


"시골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별거 아닌데 환자 상태 위험하다고 오버하는 경우가 있어, 그러니 별일 없을 거야."...



식은땀 흘린 본인, 돕고 싶으나 도울 수 없었던 인턴선생님, 환자의 포지션을 위해모두 달라붙어있었던 3명의 간호사가 이 내용을 모두 정확히  들었습니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모두가 이 할아버지가 기관삽관이 실패하면 사망할 수 있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기에 아무도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저를 쳐다봅니다.  아마 저의 반응이 궁금했을 겁니다.


"괜찮아요... 이런 소리 듣는 거  여기 와서  한두 번도 아닌데"


이야기는 이렇게 했지만, 멘탈이 부서질 뻔했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씨익 웃어버렸습니다. 보호자에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기엔 워낙 급박한 지라 싸울 힘도 없었습니다. 또 그렇게 이야기해 봤자 다른 환자 진료 볼 때도 영향 미치고... 그냥 대꾸를 안 하고 못 들은 척하면 되었습니다.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갔고 환자는 그 지옥을 건너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걸로 된 겁니다. 


세부적인 검사와 치료를 위해 우리 병원과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하려고 했으나 서울에 딸들이 거주하고 있어 서울 모 병원으로 이송을 원하였습니다. 해당병원에 유선연락을 하고 컨펌되어 전원을 가고 사태는 그렇게 일단락되었습니다.


기관삽관이 되지 않아 연달아 실패하던, 손 바꿀 수 없는 순간, 그 찰나의 순간 환자 걱정을 한 제 스스로가 자랑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또 팽개치고 도망가버리고 싶은 생각 했던 제 스스로가 그렇게 부끄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디 환자분이 더 큰 병원에서 치료 잘 받으시길 기도합니다.


오늘도 하루가 지나갑니다.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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