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즈 Dec 10. 2021

시대의 눈빛

[바다의 침묵(Le Silence de la Mer)]

  영화는 베르코르(Vercors)의 소설 『바다의 침묵(Le Silence de la Mer)』을 영화로 재현한 작품이다. 베르코르의 본명은 장 브륄레(Jean Bruller)로, 레지스탕스 정신을 기반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감독 피에르 부트론의 작품이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있던 시기가 시대적 배경이다. 독일군들이 지방 도시에 주둔하면서 독일군 장교인 베르너[Werner, 토마 주아네(Thomas Jouannet)]가 할아버지, 앙드레와 손녀, 잔느[Jeanne, 줄리 델로메(Julie Delarme)가 살고 있는 집에 머물면서 펼쳐지는 일화가 때로는 잔잔한 파도처럼 때로는 폭풍전야의 분위기속에서 전해진다.

      

  영화의 첫 장면은 1941년 11월을 명시하면서 잔느가 피아노를 가르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있는 난국의 시대이지만, 일상에서 예술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앙드레와 잔느가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한 독일군은 독일군 장교가 그들의 집에서 머물게 될 거라고 통보한다. 이 공간을 중심으로 앙드레와 잔느는 베르너 장교를 적국의 사람으로서 대하며 평화로운 일상인 듯이 삶을 영위해야할 것 같다.

     

  잔느는 바흐의 전주곡을 연주한다. 할아버지 앙드레와 저녁식사를 마치고 난 후,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음악이 연주되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전쟁이라는 시대의 아픔도, 적국의 장교가 머물게 되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잊게 된다. 잔느의 연주가 집안 거실에서 밖으로 울려펴지며 베르너가 차에서 내려 서서히 집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교차되는 장면은 전쟁이라는 시대의 딜레마가 인간의 감미로운 감정을 발현시키는 과정과 어떻게 그려질지를 긴장감있게 보여준다. 동시에 시대적 딜레마의 거부할 수 없는 환경을 체험하지 않는 인간의 삶이야말로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에 대한 깊은 의미도 전해주고 있다.

      

  단지 타인이 아니라 적국의 장교가 머물게 될거라는 생각으로 잔느와 앙드레는 편안한 일상을 딱딱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말하게 된다. 그런데, 베르너가 집에 도착하여 처음 한 말은 “미안합니다. 어쩔 수 없이 여기 있게 된 겁니다.”이다. 잔느와 앙드레가 짓는 굳은 표정과 적대시하는 태도를 마주한 채, 베르너는 아주 예의바르게 말하고 행동한다. 잔느와 앙드레는 일관적으로 침묵을 유지하면서 베르너를 경계하고, 거리를 둔다. 적국의 국민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베르너와 의사소통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는 것뿐이다.

      

  베르너의 등장은 잔느와 앙드레의 일상에 서서히 변화를 몰고 오기 시작한다. 앙드레와 잔느가 자신의 말에 대응해주지 않아도 베르너는 매일 저녁에 응접실에 있는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방으로 향한다. 베르너는 자신으로 인해 앙드레와 잔느가 불편한 생활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한다. 그는 자신의 인사에 대해 앙드레와 잔느가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답변을 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도, 자신이 표현하는 인간적인 호의에 대해서도 침묵만을 지키며 반응하지 않는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한다.

     

  어느 날, 베르너는 군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응접실로 내려와 벽난로앞에 앉아 손을 녹이며 소중한 이순간,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프랑스의 문호들, 음악가들과 바흐의 위대함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자신도 또한 음악가이자 작곡가이며 집안에서 전해오는 전통대로 군인이 된 것이라는 것을. 침묵을 일관해오던 앙드레와 잔느는 비로소 베르너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베르너의 말과 앙드레와 잔느의 침묵은 서로의 시선을 교차하면서 그들만의 대화를 시작하고 있다.

     

  잔느는 이제 온전한 침묵을 지킬 수 없다. 세찬 바람이 몰아치고, 바다가 격랑을 치던 날, 베르너는 벽난로앞에서 몸을 녹이며 자신은 바다의 침묵을 좋아한다고, 믿음직한 앙드레와 침묵을 지키는 잔느가 있는 이곳에 있게 되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베르너는 참혹한 전쟁상황속에서 본연의 인간적인 매너와 정을 공유하려고 노력하며 독일과 프랑스로 분리되야 하는 공간에 인간적인 온정이 피울 불씨를 피운다.

    

  영화 속 등장하는 바흐의 서곡은 총체적 난국인 전쟁의 차디찬 현실속에서도 인간 본연의 온정과 감미로운 감정을 아우르는 가치를 발현시키며, 제한된 벽과 환경을 무너뜨릴 수 밖에 없는 가치의 상징이다. 크리스마스에, 잔느는 벽난로를 바라보고 있고, 베르너는 벽난로를 등뒤로 한 채 바흐의 서곡을 연주한다. 베르너가 도착하던 날, 잔느가 연주하던 바흐의 서곡을 통해 잔느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표현하듯이, 군복을 입은채 베르너가 바흐의 서곡을 연주하는 장면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아내고 있다. 바흐의 서곡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음악이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말한 베르너가 침묵 속 저항정신과 인간의 섬세한 감성을 있는 그대로 감지할 수 있기 떄문이다.

    

  잔느는 자신의 방식대로 침묵을 지킨다. 그녀의 격정적인 피아노 연주로 다른 곳으로 떠나던 베르너를 구하게 됨으로써 베르너의 시선과 잔느의 시선은 세상 속에서 만나게 된다. 베르너에게 건넨 짧은 인사는 그녀가 지키려고 애쓴 침묵만큼이나 소중하다. 시대의 정신을 이해하는 저항이었고, 편견을 너머 인간을 이해하려는 따스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표현이기에 고난속에서도 빛나는 아름다운 감정을 구현한 것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유의 무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