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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즈 Jan 08. 2022

출발하면서

[파리로 가는 길(Paris can wait)]


  영화는 엘레노어 코폴라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작품이다. 현대 프랑스가 시대적 배경이다. 앤[Anne, 다이안 레인(Diane Lane)]과 남편 마이클은 파리로 가야 한다. 그런데 앤은 귀가 아파서 마이클과 함께 비행기를 함께 타지 못하고, 마이클의 사업 파트너인 자끄[Jacques, 아르노 비야르(Arnaud Viard)가 앤과 동행해 파리로 안내하기로 한다.

     

  파리로 가는 여정은 앤이 생각하는 것처럼 논스톱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자끄는 파리로 가는 모든 순간을 만끽한다. 심지어 차가 고장났을때도 자끄 덕분에 앤은 음식과 와인과 함께 그 시간을 여유롭게 즐길 줄 알게 된다. 자끄가 건네는 말과 행동은 주위를 둘러보게 하고, 무언가 의미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앤과 자끄가 영화의 도시 칸에서 파리로 가며 만들어가는 풍경은 탄성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앤에게 일상과 여행은 별개인 것 같지만, “파리는 도망가지 않으니 구경하면서 가자”고 말하는 자끄에게는 일상도 여행이 된다.

     

자끄는 앤에게 묻는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 당신이 가장 행복했었던 시기는 언제였죠?” 

     

  영화는 행복에 대한 카드를 펼쳐보게 한다. 앤은 행복의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인간으로서 모두 바라는 단어인데도 행복의 기준은 모두 다르다.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형태를 객관적인 행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너무 소중해서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타인의 기준에서는 행복이라고 생각되지 않을까봐 표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앤이 카메라안에 담아 내는 장면들은 행복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행복이야기 이면에서 앤의 외로움이 보인다. 성공적으로 사회적 입지를 굳혀 바쁜 일정에 파묻힌 남편과 성장한 딸과 삶의 발자취를 만든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에는 거리감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거리감은 아니지만 그녀가 만들어놓은 순간포착의 행복이 마냥 행복하게만 보이지 않는다.

     

  앤과 자끄는 어린시절 어른 흉내를 내며 소꿉놀이를 하는 소꿉친구 같다. 서로가 가진 관점의 차이를 문제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듯하다. 길들여졌던, 길들여지거나 길들이고 있는 삶의 시간을 객관적으로 마주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앤과 자끄가 함께 서로의 아픈 이야기를 공유하는 시간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생 빅투아르산, 프로방스 알프 코트 다쥐르, 프로방스 라벤더로드, 퐁뒤가르, 가르동 강변, 베즐레 성 막달레나 대성당, 리옹 뤼미에르 박물관, 리옹 직물 박물관, 폴보퀴즈 시장, 파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아름다우며 평화롭다. 앤과 자끄가 여정을 함께 하는 시간은 그들이 대변하는 삶의 연륜과 그 의미와 그 책임과 비전까지 전해주며 고갈될뻔한 에너지를 충만하게 채워준다.

     

  현재시점에서 우리는 디지털정보사회로 명명된 시대에 살고 있다. 디지털사회가 주도적으로 가져올 변화를 앞두고 인간의 가치에 대한 의미와 삶의 양식을 재조명하는 분위기속에서 메타버스가 등장하여 가상현실을 체험하게 하는 새로운 물결이 일렁인다. 디지털사회에서 살며 아날로그 사회에서 이루어진 레트로 문화에 열광하기도, 즐기고 있기도 하다. 인간적인 가치가 무의식적으로도 살아있었던 시대의 문화가 디지털 문화와 교묘히 어울려 춤추며 경계선을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앤과 자끄가 만든 스케치는 실제 아름다운 풍경을 직접 접하게 될 때 생생하게 느껴지는 풍부한 느낌을 완전하게 전해주며 오랜시간을 견뎌온 자연의 이야기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월터는 렌즈너머로 흰표범을 보고 있는 숀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언제 찍을 거에요? 가끔은 찍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순간을. 개인적으로.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이 순간에 머물 뿐이지. 머문다고요? 그래. 바로 이 순간.” 현재를 포착하는 순간 다른 현재가 온다. 그 현재가 바로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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