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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즈 Apr 19. 2022

탄성의 법칙이라면

[중경삼림]

  영화는 1990년대 왕가위 감독의 작품이다. <중경삼림>의 두 번째 일화속에서 경찰 663과 페이는 처음 만났던 가게에 있다. 같은 장소이지만, 상대방을 쳐다보는 시선은 반대위치에 있다. 그들이 처음 그곳에서 만났을 때, 현재 자신들이 있는 장소에서 이렇게 다시 의미있는 시간을 약속하게 될 줄 알았을까?

     

  페이는 스낵바에서 일한다.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계속 들으면서 다양한 소스를 음식위에 뿌리며 자신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경찰인 그를 만나게 된다. 서로에게 친근한 인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사이도 아니다. 노곤한 일상을 달래주는 휴식의 시간을 만끽하며 말하는 사이도 아니다. 그런데, 페이는 느껴진다. 그 경찰에게 마음이 서서히 전달되는 것을. 이 스낵바에 다녀가는 사람들가운데 유독 그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페이가 동경하는 모습을 그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인 그는 페이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마음이 꽁꽁 얼어버렸고, 차디찬 얼음이 언제 녹게 될지 모른다. 그는 전 여자친구가 쓴 편지를 읽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자신이 흔들리지 않을 때 까지, 다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때 까지 그 편지를 읽을 수 없을 것 같다. 자신에 대한 페이의 감정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할지 모른다. 지금은 그저 자신의 외로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견뎌보려 애쓰는 편이 나은지도 모른다.

     

  페이는 경찰의 전 여자친구가 전해달라는 편지와 열쇠를 맡고 있다. 그에게 편지의 정체를 말했지만, 그는 읽으려 하지 않고, 더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페이는 마음을 숨길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아파트를 방문하며 청소를 하고, 그가 사는 삶의 부분을 알아가면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만으로 행복한 것 같다. 그녀의 자취는 그의 아파트에 차츰 그녀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듯 하다. 짝사랑의 외로움을 달래기보다 그에 대한 감정 자체만으로 행복의 가치를 만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와 페이는 다시 만난다. 그는 경찰을 그만두고 새로운 레스토랑의 일을 계획하며 페이가 일하던 스낵바를 그가 잠시 운영하고 있다. 그들은 1년 전, 홍콩에 있는 캘리포니아 레스토랑에서 의미있는 만남을 약속했지만, 페이는 캘리포니아로 떠났고, 1년이 지난 후, 현재 비행기 승무원이 되어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캘리포니아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한 그날, 페이가 전한 종이 비행기표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시간이 흘러 종이 비행기표를 그녀에게 건넨다. 페이는 새로운 표를 그려준다. 마음속에서 한 번 쯤은 그려보았을지도 모르는 말을 들으면서.

     

  인간의 외로움을 잔잔한 물결이 퍼지는 것처럼, 무심하게 표현하지만, 오랜시간 여운이 남는다. 그의 외로움도, 페이의 외로움도 강렬한 고뇌로 표현되지 않기에 다시 마음이 채색되는 작품이다. 자신의 의지로 슬픔과 기쁨의 형태를 이해하려고 하면서 일상을 살아내는 이들의 모습이 이렇게 멋져보이는 것은 그들의 꿈과 사랑이 또 다른 희망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삶을 재정비할 수 있도록 그들이 동경하던 세상은 그렇게 그들의 앞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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