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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즈 May 02. 2022

유통기한의 역설

[중경삼림]

  <중경삼림>의 첫 번째 일화속에서 경찰인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 있다면 유통기한이 없기를 바란다. 만일 유통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 년으로 해야지.” 금발 가발을 쓴 여인은 항상 선글라스를 쓰고 레인코트를 입는다. 마약 밀반출을 시도하기도 하며 난관에 봉착하여 여러 일을 겪기도 하지만, 홍콩을 떠나기 전 자신을 배신한 백인 사장을 응징한다. 이후, 가발을 벗고 다른 곳으로 향한다.

     

  경찰인 그는 연인에게서 이별 메시지를 받는다. 예상하지 못했던 이별로 그는 고통스러워 하며 연인이 좋아하던 파인애플의 통조림을 구입한다. 자신의 생일인 5월 1일이 유통기한으로 표시되어 있는 통조림을 구입하며, 연인을 잊으려는 날짜를 자신의 생일로 정해놓는다.

  

  그와 그녀가 만나게 되는 장소는 바이다. 그녀에게 파인애플을 좋아하느냐는 말을 건네며 그와 그녀는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다. 호텔로 장소가 바뀌면서 하루의 상황을 너무 힘겹게 보낸 그녀는 자신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쉬는 시간을 갖게 되고, 그는 영화를 보며 샐러드를 먹고, 떠난다. 그는 떠나기전에 그녀 같은 미인에게는 깨끗한 구두가 어울린다는 이유로 자신의 넥타이로 그녀의 구두를 닦아준다. 호텔에서 나온 그는 운동장에서 조깅을 하고, 버리려던 삐삐에서 702호 그녀로부터 생일축하 메시지를 받는다.

     

  사랑에 대해 유통기한을 표현하지 않고, 그는 기억에 대한 유통기한을 언급한다. 인간이어서 기억의 가치를 알고 있지만, 이것이 사랑의 영원성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그와 그녀가 서로에게 새로운 기억의 버튼이 된다는 자체에 가치가 있고, 이로 인해 기대와 이면의 상황을 경험하기도 하겠지만, 이로 인해 삶의 뿌리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녀는 새로운 정체성을 구현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구두가 깨끗해진 상황은 새로운 노로 삶을 향해 저어갈 방향과 힘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그도 그녀에게서 들은 생일 축하 메시지를 통해 그가 꿈꾸는 기억의 유통기한을 설정하기 시작한다. 동양과 서양의 정서를 결합해놓은 홍콩을 배경으로 인간이 지닌 감성을 섬세하면서도 객관적으로 표현하기에 삶의 장면들이 보여주는 심연의 깊이를 다시 체감하는 시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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