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즈 Nov 12. 2022

연주

[하오의 연정(Love in the Afternoon)]


로맨스 쟝르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로만 구성되었을 거라는 인상을 받았다면 트릭일 수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영화이다. 게임을 진행하듯이, 전체 구성을 생각하며 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영화의 원작은 클라우드 아넷(Claude Anet)의 소설 <어린 러시아 소녀 아리앤(Ariane, Jeune Fille Russe)>이다. 클라우드 아넷은 저자인 쟝 쇼퍼(Jean Schopfer)의 필명이며, 20세기 초반에 쓰여진 소설이다. 영화의 감독인 빌리 와일더와 아이에이엘 다이아몬드가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영화의 초반, 파리를 배경으로 소개하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파리 사람들은 먹는 것을 좋아하고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사랑을 나눈다며, 바로 이점이 파리가 런던, 뉴욕, 도쿄와 같은 대도시와 차이가 있는 점이라고 언급한다. 이런 사랑을 파헤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일임을 클로드 사바스가 나레이션을 직접 담당한다. 그의 시선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분석되는지 기대되는 장면이다.

     

아리앤(오드리 헵번)은 사립탑정인 아버지 클로드 샤바스와 파리에 살고 있다. 첼로를 연주하며 예술분야에만 모든 에너지를 발휘할 것 같은 그녀는 탐정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의뢰받은 사건들 중 어떤 내용들은 낭만적인 이야기로 생각하며, 이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기도 한다. 아버지의 서재에 몰래 들어가 고객들이 의뢰한 내용을 보곤 했던 그녀는 어느 날, 의뢰하는 내용을 듣게 된다. 의뢰인은 자신의 아내와 프랭크 플레너건(게리 쿠퍼)이라는 미국인 부호 사업가와의 관계를 클로드가 찍은 사진을 통해 확신하며 이들의 관계를 멈추기 위해, 프랭크를 처단하겠다며 총을 들고 나간다.

     

프랭크에 대해 클로드가 의뢰인에게 설명하는 내용 중, 프랭크가 파리에 올 때마다 의뢰가 들어온다는 대목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특성을 가진 사람과 자신의 딸인 아리앤이 ‘매혹의 왈츠’로 연결될 거라는 것을.     

프랭크의 사진만을 본 아리앤은 전형적인 미국인의 얼굴이라며, 자신이 그리는 이상적인 인물을 꿈꾸듯이 프랭크에 대해 언급한다. 아리앤은 음악원에서 첼로를 연습하다가 나와 공중전화로 경찰에 자신이 들은 얘기를 하지만, 경찰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무시한다. 아리앤은 음악원 친구에게 집으로 가는 길에 플레건이 머물고 있는 호텔에 내려, 그가 있는 방으로 스위트룸에 잠입해 미리 알려준다. ‘매혹의 왈츠’가 연주된 후, 연주자들이 방에서 나오자, 의뢰인 남편이 플래너건을 대면한 순간, 옆에 있는 여인은 바로 아리앤이다. 마치 오해가 있었던 것처럼, 멋진 연기를 펼쳤던 이들은 의뢰인과 대화까지 나눈채, 그를 돌려보낸다.

     

아리앤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임무를 마치고 난 후, 프랭크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첼로를 복도에 두고 문을 잠글 정도로. 첼로연주를 연습하는 척 하며 클로드가 의뢰받은 일로 인해 프랭크에 대해 스크랩해둔 기사들을 악보를 들여다 보듯 심취하여 몰래 읽을 정도로.

     

아리앤이 프랭크를 대면하기 전, 그녀는 아버지의 암실에서 프랭크의 사진을 처음 보자마자, 매혹적이라고 언급했었다.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매혹의 왈츠’는 아리앤의 마음을 시시각각으로 보여주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리앤에 대한 프랭크의 감정 역시 점차 변화되는 것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파리 뿐만 아니라 유럽의 풍경은 신문 기사 속에서 전개되어 펼쳐진다. 그래서, 아래인과 프랭크의 감정의 선이 그들의 일상과 연결되며 변화의 모습이 나타나므로 이들의 내면세계에 더욱 몰입하게 되는 것이 주목할 부분이다.

     

프랭크와 아리앤을 연결시키는 것은 자유분방함이다. 자유분방한 게임 속에 자신의 마음을 숨긴채, 그들은  그 게임을 일상에서 즐기는 것처럼 연기한다. 연기를 하는 아리앤에게 진정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프랭크가 아리앤에 대해 알기 위해 클로드에게 의뢰를 하게 되는 것은 그가 감정의 틀 너머에서 비로소 자신의 감정을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한다. 프랭크가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게 되는 기차에서의 장면은 ‘매혹’에서 전달되는 어감과 달리 ‘매혹의 왈츠’에서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정감이 가는 감정을 더욱 빛을 발하게 하며 전해준다.

    

프랭크와 아리앤이 완성해가는 연정의 변천사는 흑백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아련한 색깔이 아니라는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