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즈 Oct 22. 2023

우리들의 이야기

교실 문을 열면, 학생들의 행동은 일제히 하나로 통일되었다. 그 정적을 아주 당당하게 깨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바꾸는 일은 나의 인사 한마디이며, 영어로 인사하는 이유였다. 어색한 공기를 내가 모두 가질 때, 비로소 학생들은 마음의 문을 아주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나 사이에 있는 거대한 벽을 이제 차츰 허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꺼내는 말은, “어색한 분위기 좀 깨어보자(Let’s break the ice).”였다. 바로 들리는 답변은 “얼음이 어디 있어요?”였다. 이렇게 말하는 학생은 왜 내가 그런 말을 표현했는지 알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었다. 멋진 유머로 분위기를 좀 더 부드럽게 만들게 하니 고마운 답변이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웃거나, 제스쳐를 취하며, 아주 약간 우리들은 어색한 웃음을 늘려가며,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도 같이 웃음 속에 스며들게 되었다.  

    

수업의 방향등을 이해하고, 자신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은 긴장되지만, 재미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적어도 오리엔테이션 시간 만큼은 학업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고, 함께 생활하는 친구가 누구인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며, 자유롭게 자신에 대해 표현할 수 있으며, 자신이 속해 있는 반이 어떤 반인지 조금은 알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차츰 아이들이 수업활동에 적응하게 되며, 가장 먼저 받는 질문은 학습한 내용이 아니라 “영어를 왜 공부해야 하나요?”였다. 질문을 다른 방향에서 보면, 학교에서 영어를 왜 가르치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가장 어려운 질문이었다.  

    

실제 생활에서 영어가 쓰일 필요가 없는데도 왜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지를 찾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고, 영어는 도움이 되며, 소통을 원활하게 해야 하고, 모든 나라에서 통용되는 공통 언어이므로 등과 같은 교과서적이고, 기능적인 측면에서 나타나는 효과는 이미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길지 않지만, 영향력 있는 답변이 표출되어야 하는 시점에서, 학생들에게 해줄 이야기를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얼마 후, 깨닫게 되며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다. 영어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며, 나중에 어른이 되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교육 분야의 루키였던 시기, 해당 과목을 가르치는 것의 본질을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했고, 이면에는 교육 마인드의 중심에 영향을 끼친 시간이 있었기에 내놓을 수 있는 견해였다. 

    

교육 분야에 들어오기 전, 미국 매릴랜드에 있는 고등학교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영화에서 보면 미국의 고등학생들은 대학생들처럼 해당 과목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강의실로 향했는데, 그런 장면이 펼쳐졌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건물이 주는 이미지와 분위기가 독특한 학교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수업을 교실에서 듣는 풍경에 익숙했기에, 박물관이나 전시회에 온 것처럼, 새로운 모습들을 자세하게 보려 했다. 체육관, 복도들을 보며, 다른 곳으로 향하던 중,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에 다다랐다. 다채로운 색깔들이 보여주는 내용은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적은 메모들이 게시판에 전시된 것이었다. 여러 글들을 따라 가다, 시선을 사로잡은 메시지는 메모지를 가득 채운 내용도, 화려한 채색으로 돋보이게 써놓은 내용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생각을 쓴 메모일 뿐인데, 한 동안 계속 그 자리에 서 있게 되었다. “가르치는 것은 삶을 터치하는 것이다.” 

    

이 메모는 교수 이론, 교육 공학, 교육 심리, 교육 사회학, 교육 철학, 비교 교육학 등 교육과 관련된 폭넓은 이론들을 포함할 수 있으며, 깊이 있는 통찰의 시선 속에서만 표현될 수 있는,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준 표현이었다. 어떻게 청소년기의 학생이 그렇게 강력한 표현을 메모할 수 있었을 지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있다.

      

학생들이 묻는 당연한 질문, 엉뚱한 질문들로 교실은 고요한 바다와 이륙 직전의 비행기의 모습을 띠곤 했다. 질풍노도기에 있어 어른들의 관심과 염려가 더욱 집중되지만, 학생들이 세상을 향해 묻는 질문에서 그들만의 고민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물음표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교육이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게 된, 그 메모를 본 그때 그 시간 덕분이었을까.

이전 01화 문을 열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