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주 Oct 27. 2024

변화의 언어

현대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며칠이면, 세계여행을 할 수 있으며, 공간을 너머 인위적인 공간을 통해, 여러 나라의 도시들을 둘러보며 멋진 인터넷 여행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며 더욱 깊은 고립과 소통의 부재를 경험한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기술과 인공지능이 발달하며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종종 타인과 진정으로 연결되는 것을 놓치며, 때로는 자신과 소통하는 시간을 잊은 채 살고 있다.

    

그런데, 여기 자신과 연결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자신들의 영역안에서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이 낯설게 되는 경험을 한다. 그들은 게르트 비즐러(Gerd Wiesler), 밥 해리스(Bob Harris)와 샬롯(Charlotte)이다. 영화 <타인의 삶 (Das Leben der Anderen, The Lives Of Others)>과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에서 그들은 개인들이 소통이 결여된 시간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들여다 보게 되고, 다시금 타인을 통해 자신을 어떻게 발견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독일이 통일되기 이전 1980년대 동독의 억압적인 체제속에서 감시자로 살아오는 게르트와, 현대시대에 일본 도쿄라는 도시에 머무르는 밥과 샬롯은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에 속해 있지만, 고립 속에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며 타인을 통해 변화하는 인물들이다. 게르트는 동독의 정보기관인 슈타지에서 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오랜 시간 자신의 업무를 담당하며, 자연스러운 감정과도 거리를 둔 채, 사회적인 시스템이 요구하는 체제에 철저하게 자신을 단련시키며 살고 있다. 그런 그에게 극작가인 게오르그 드라이만에 대한 도청 프로젝트의 임무가 주어진다. 또한, 거액의 출연료를 받으며, 도쿄에 광고를 촬영하기 위해 온 밥은 능숙한 몸짓과 절묘한 표정을 지으며, 프로답게 일하지만,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답답한 마음을 가진다. 남편의 일로 도쿄에 잠시 머물고 있는 샬롯은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모습들을 보며 보람있는 시간을 만들려 하지만, 무료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런데, 게르트, 밥과 샬롯에게 변화의 바람이 밀려온다. 외부에서도 인간적인 교류와 단절되며, 자신의 감성과 감정을 돌보는 것이 낯설게 되는 상황에서 게르트는 인간적인 감정에 대해 점차 물들어 가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감시라는 억압체체를 통해, 타인과 연결되면서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도청너머로 게르트는 게오르그가 주도적으로 경험하는 예술적인 시간을 통해, 인간적으로 살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며, 점차 자신의 시간을 깊이 들여다보는 감정에 마음을 열게 된다. 게오르그가 읽던 책을 몰래 가져와 읽으면서, 그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그의 연인이 처한 그릇된 상황을 변화시키며,그와 일행들이 정부 체제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이 이루어지며 매체에 보도되지만, 게르트의 보고서에는 특별한 내용이 적히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안에서 꼬마와 이야기를 나누며, 꼬마가 가지고 있는 공의 이름을 묻는 게르트의 표정은 무심한 듯 굳어 있는 듯하지만, 이미 그의 마음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닿아 있다. 게르트의 얼굴에는 단순한 감시자의 행보가 나타나는 대신 인간적인 표정이 그려지며, 그의 세계는 그렇게 차츰 변하고 있다. 타인의 삶에 연민과 공감을 느끼기 시작하며 도덕적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밥은 전화기 너머로 자신이 일이 진행되는 내용과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을 아내와 나누려 하지만, 아내는 분주한 생활로 인해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하다. 서로 소통되지 않는 시간속에서 그는 쓸쓸한 기분을 느끼며, 호텔 안에 있는 바를 방문한다. 샬롯 역시 새로운 도시에서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보려 애를 쓰며 이곳에서 우연히 밥을 만나게 된다. 마음속에서 남편과 거리를 점차 느끼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명확히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다른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도시에서 느껴지는 벽을 허물기 위해, 그 벽과 자신의 외로움에 익숙해질 것 같다. 중년의 밥과 나이 차가 나는 샬롯이지만, 그들은 타국에서 잠시 머무르는 이방인이라는 공통점을 토대로 점차 대화를 하게 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샬롯과 그녀의 친구들의 파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밥과 샬롯은 처음 만났던 상대방을 기억해낼 정도로, 다시는 재미없는 이 나라에 오지 말자며 대화할 정도로, 친밀해지며, 서로에게 위안을 얻게 된다. 화려한 네온사인들과 도시의 인파가 만들어내는 시끌벅적한 소리속에서 전혀 느껴질 것 같은 인간의 외로움과 그 저변에 깔린 공허한 마음이 만든 혼란속에서, 샬롯은 밥의 잠깐의 실수를 알게 되지만, 이를 포용할 수 있는 마음마저 생긴다. 밥 역시 먼저 돌아가게 되지만, 그의 마음을 위로해준 샬롯의 자리는 커다랗게 다가온다. 현대적인 도시의 분위기만큼이나 부각되었던 그들이 겪은 외로움은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변화는 통한다. 그리고 그 힘은 강력하다. 게르트는 체제에 반하는 선택을 하며 자신의 인간성을 찾게 된다. 그는 자신의 경력를 우선시하지 못하게 되며, 좌천되어 우편물 분류업무를 맡게 된다. 그러나, 게르트의 변화는 그의 도덕적인 승리를 뜻하며, 자신의 양심을 지켜내며 인간적인 인물로 거듭난다는 점에서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를 위로하며 밥과 샬롯이 이루어낸 소통과 공감은 그들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드는 변화이며, 혼란한 자아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밥이 샬롯에게 귓속말을 전하며, “알겠지? 알았어요.”라는 것은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그들이 정체성을 찾는 법을 알게 되며, 흔들리지 않으며, 중심을 잡아 균형을 유지하며 여정을 계속할 거라는 것을 함축적으로 전해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