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잔상_#3
동네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연탄재 더미.
연탄을 때던 어느 집에서 살던 누군가가
다 끝나가는 겨울과 곧 시작되는 봄을 사이에 두고
이른 아침, 밤새 피워 온기를 뺀 연탄을
봉지에 싸 거리 구석에 놓아두었다.
저 온기는 밤새 누구를 따뜻하게 했던 걸까.
그 사람은 어떤 겨울을 넘어 어떤 봄을 준비하고 있었을까.
삑.
“사천 오백 원입니다.”
헐거운 주머니를 뒤진다. 낡은 검은색 패딩에, 그것보다 더 꼬질한 오른쪽 주머니. 한 번은 주머니에 구멍이 나 동전이 후두둑 쏟아진 적도 있다. 오늘 주머니에는 누런 오천 원 짜리 한 장과 백 원짜리 두 개가 있다. 지금 담배를 사면 700원이 남겠네. 요즘에는 삼각김밥도 가격이 올라서 800원씩이나 한다. 그럼 내일 아침은 못 사겠네. 근데 담배는 사야겠는데...
아, 몰라. 엿 같지만 원래 이 따위로 산다.
부려먹기는 종처럼 부려먹고 돈은 쥐똥만큼 주는 일터에서 돌아오면, 엉덩이 하나 겨우 붙일 방에 기어 들어간다. 딱 내 놈 같은 방이라 꼴 보기 싫다. 집에 오는 일이 잦지 않으니, 들어왔을 때 연탄 온기가 살아있는 적은 거의 없다. 갈기 귀찮은데.
소주를 사들고 내 방에 온 친구가 물었었다.
“야, 연탄 쓰면 위험하지 않아?”
어쩌라고. 기름 보일러 달아줄 거냐? 연탄보일러는 반값인데. 기름값도 내 주지 그래.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속으로 삼켰다.
"90년댄 줄 아냐. 기술의 발전 몰라? 요즘 나오는 건 연탄가스 배출 따로 돼서 괜찮대. 나 아직 안 죽고 살아있잖아."
그 날, 군데군데 얼룩있는 누런 장판에 앉은 친구놈 모습이 편해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엉덩이와 허벅지를 착, 감기게 앉은 것 같지 않아 보였던 건 내 피해의식인가. 방을 두리번거릴 때 미묘하게 미간이 좁아졌던 것도, 착각인가. 누군갈 집에 들인 건 처음이었는데... 그 다음부터 그 놈은 우리 집에 온 적 없다. 냄새라도 났냐? 말을 하지. 접때 사 놓은 페브리즈 있는데.
연탄을 우겨넣은 봉투와, 아까 산 담배만 들고 집 밖으로 나선다. 원래도 챙겨나올 만한 거라고는 별로 없다.
여기는 조금만 시간이 늦어지면 비할 데 없이 깜깜하다. 좀, 밝게 좀 살지. 암울한 것들은 밤에도 어둡게 살아야 하는 거야? 옆 방 할머니는, 그런 생각 해본 적이나 있으려나. 앞 집 아저씨는? 이미 익숙해져서 그런 건 떠오르지도 않나.
하긴. 골목골목 모두가 생각하고 있다 해도 달리 방도가 없긴 하다. 삼각김밥 가격 따지느라 바쁜데 저런걸 뭐 하러 생각해.
또 엿 같아서 그냥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 것. 동전 하나에 저녁을 미루는 놈에게는 엄청난 사치다. 한 모금이 아쉬워 짧은 숨으로 태운다. 아끼고 아껴도 몇 분이면 사라지는 놈. 아, 속절없어라.
던져놓은 연탄 옆에 꽁초를 던져버린다. 불 붙이면 이내 바스라지는 것들.
이 놈도 쉬이 없어지고 저 놈도 쉬이 타버리는데 나 같은 놈은 왜 끈질기게 살고 있나. 살고 있는 게 아니지. 왜 살아지고 있나.
착하게 놓여있는 연탄재 봉투를 걷어 차버린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부러워서 찬다. 좋겠다. 쉽게 끝날 수 있어서.
너는 쉬이 사라지고. 나는 어려이 살아진다.
쉬이 사라지는 늬들이, 부러워서 찬다.
하루가, 끝내기 위해 있다. 끝낼 수 있는 거라곤 하루 뿐이다.
http://youtu.be/E94e5phfwBg
사진. 권성대,
사진을 보고. 글. 권사랑,
사진과 글을 보고. 음악. 여송하.
세 명이 찍고 쓰고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