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삶의 잔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성대 May 15. 2016

당신이 매어놓은 줄

삶의 잔상_#5


어떤 이의 흔적에서,



보다.





이곳에서는 매일같이 줄이 풀렸다가 묶인다.


묶인 줄이 한번 풀릴때면

익숙한 몇몇의 삶과 이야기들이

멈춰버린 육지의 시간과 함께

액자 속 사진처럼

바다 위에 잔상처럼 새겨진다.


그럴때면

누군가는 바다 위에서

새로운 삶의 시간을 써 내려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육지에서

기다림과 또 다른 삶의 시간을 써 내려간다.


그러다 새로이 줄이 묶이면

새로운 이야기와 함께

또는 잃어버린 것들의 이야기와 함께

누군가의 멈췄던 시간이 움직이고

기다림이 멈춘 자리에는

누군가의 새로운 삶의 시간

다시 채워진다


이곳에서 매일같이 반복되는

줄이 풀리고 묶이는 모습.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삶이 보고 싶었다.






쓰다.




당신이 매어놓은 줄



이 부둣가에 매인

줄 하나가 풀린 후로

나는 보고 싶었던 이를,

몇 날 밤이 지난 다음에야

한번 볼까말까 했던 이를

매일 밤마다 볼 수 있었다.


까맣게 잊고 있던 것들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가 옭아매어놨던

부둣가의 줄들

쏘다녔던 앞 골목과 뒷골목의 줄들

집 안 곳곳의 줄들

나의 발치에 매인 여러 가닥의 줄들이..


그러고 보니

그이는 줄을 참 잘 매었다.

손이 참 야무졌다.

그가 한번 잡아매어 들여놓은 것들은

다시 나가는 법이 없었다.

딱 한번, 칠칠맞은 실수를

영 뉘우치지도 못할 실수를 했어도

그는 줄을 참 야무지게 매었다.

그 줄들은 하늘이 까마득해지고

땅이 푹 꺼질 때도

신기하리만치 자리를 지켰다.


처음 그 줄들이 내게 보였을 때

나는 주저앉아 눈을 감아버렸다.

매어는 놓았는데 풀 이가 없는 줄을

주렁주렁 발치에 매달고

맹한 눈을 한 채

몇 날 동안을 구르고 흘러 다녔는데

그래도 매인 줄이 있어

밤마다 멀리 쓸려가지 않았다.


그런 그이 덕에 이제야

두 발로 땅을 딛고서

바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그가 매어오던 줄들을

이어 맬 정신이 생겼다.

두렵다.

늘 그가 해오던 것이었으니.

그래도 괜찮다.

이제는 매일 밤,

줄 매는 법을 알려줄 이를

다시 볼 수 있으니까.







듣다.



강 - Lucia(루시아-심규선)

http://youtube.com/watch?v=mDSO6bfk2x8







사진. 권성대,

사진을 보고. 글. 권성대, 감수. 권사랑,

사진과 글을 보고, 음악. 여송하.


세명이 찍고 쓰고 골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는 쉬이 사라지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