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잔상_#2
목련이 봄의 시작을 알리고
벚꽃과 개나리들이 뒤이어 만개하기 시작했다.
주변 어디를 둘러보아도 봄기운이 가득한 요즘,
길을 걷다 어느 집 앞에서 개나리를 발견했다.
화분에 심긴 그 개나리가 조금은 의아했다.
개나리를 화분에 심기도 했었나?
화분에 봄을 담아 두고 싶었던 걸까?
개나리 가지들을 정성껏 묶어 놓은 화분 주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야, 그거 알아? 개나리 가지를 꺾어서 심으면 그게 계속 자란대.”
“진짜?”
“응, 진짜. 그래서 아빠가 길 가다가 개나리 보면 꺾어오랬어.”
학교 한 구석에 막 펴기 시작한 개나리 나무를 보고 네가 말했다. 귀농 비슷한 것을 하신다던 너의 아버지는 최근 이것저것 심기 시작하셨다고 했다. 수확의 기쁨 같은 게 필요하신가. 너를 저렇게 (심지어 크게) 잘 키워놓으시고 또 어떤 기쁨을 누리고 싶으신 걸까. 종종 너도 따라가 흙을 고르고 돌을 고른다고 했다.
그렇구나. 개나리 가지를 꺾어서 심으면 그게 나무로 계속 자라는구나.
“그리고 이게, 꽃이 핀 가지를 심을 때만 계속 자란대. 아직 안 핀 거면 심어도 안 나고.”
짧게 고민하더니 가지 두 줄기를 뚝, 꺾어낸다. 야무지게 꽃 많이 달린 부분만 꺾는 거 봐. 너는 이럴 때도 참 너답다. 밤이라서 다행이야. 쏟아지는 눈총 같은 건 없다.
그렇구나. 꽃이 핀 가지를 심을 때만 계속 자라는구나.
수맥 찾는 사람마냥 양손에 길쭉이 개나리 줄기를 들고는, 쫑쫑거리며 걸어간다. 기분 좋아졌구나. 노란 꽃을 손에 쥔 네가 더 밝아 보이네. 오늘 나는 오렌지 색 니트를 입었고 너는 노란색 티를 입었다. 맞춘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입었다. 멀리서 보고는 웃었었다. 너도 날 보고 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살풋 웃었다-고 예쁘게 말하고 싶지만 크게 웃었다. 너처럼.
나는, 네가 웃는 게 좋아. 나랑 있을 때 많이 웃어서 좋아. 나랑 있을 때 계속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
“이거 하나 너 가져.”
“응? 아니야. 아버지 갖다 드려.”
“아냐, 너 가져.”
“알았어.. 근데 이거 왜 주는 거야?”
횡단보도에서 한 줄기를 내게 내민다. 나는 받는다.
왜 주는 거야? 너는 딱히 대답 않고 다른 얘기를 한다. 하지만 나도 알고 너도 안다.
고마워. 너의 마음.
“아, 아니다. 니가 이거 가져.”
너는 꽃이 더 많은 가지로 바꿔 건넨다.
사양했다가 그냥 받는다. 고마워.
나도 더 좋은 걸 주어야 하는데. 더 예쁜 걸. 고맙고 또 미안해.
같은 버스 정류장에서, 다른 버스를 탄다. 둘 다 왼손에는 개나리를 쥐고.
네 버스가 먼저 온다. 버스에 오르는 뒷모습을, 카드를 찍는 손을 본다. 잘 가.
네 버스를 함께 기다리고, 먼저 보내주는 게 좋아. 네가 타고 떠나는 버스의 꽁무니를 본다.
먼저 너를 보내주는 것이 기쁜 건, 네가 내일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고 또 여기에 올 걸 알아서야. 먼저 보내었는데, 그 다음날 오지 않으면 슬플 거야. 그러니 내일, 아니면 모레, 아니면 일주일 뒤에라도, 이 버스를 반대편에서 또 타주라. 타고 오면 웃으며 널 맞을게. 꼭 그래 주라, 너의 뒷모습도 기쁘게 볼 수 있게.
버스에서 개나리가 다른 사람을 찌를까 걱정하며 조심히 집으로 데려갔다. 베란다에 검은색 커다란 화분이 있었다. 뭐가 심어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흙이 말라있어 다음 날 흙을 새로 퍼 왔다.
“엄마, 개나리 가지를 꺾어서 심으면 그게 나무로 계속 자란대.”
엄마는 건성으로 으응, 대답했다. 건성으로 대답한 줄 알았지만, 일주일이 지났더니 검은 화분 속 개나리 줄기가 몇 개나 늘어있더라. ‘꽃이 핀 가지를 심을 때만 계속 자란다’는 말은 안 해서였나, 아직 노랗지 못하고 푸르게만 올라온 놈들도 몇몇 보였다. 휘어지지 않게 줄기 중간을 묶어준 것도 엄마였다. 벌써 대여섯 줄기가 옹기종기 함께 있다.
물론 네가 준 개나리 줄기가 제일 예뻤어. 제일 노랗게 꽃이 폈다. 제일 봄 같아. 어두운 시멘트 위에 노란 봄이 피었다. 네 덕에.
개나리 가지를 꺾어서 심으면 그게 계속 자라는구나. 꽃이 핀 가지를 심을 때에만, 계속 자라는구나. 정말 그렇구나.
계속 피워나가자, 계속 자랄 수 있게. 너와 나.
사진. 권성대,
사진을 보고. 글. 권사랑,
사진과 글을 보고. 음악. 여송하
세 명이 찍고 쓰고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