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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성대 May 05. 2017

관점. 남의 것을 마냥 부러워하지 말자

나의 부족함을 자책하며 다른 이의 뛰어남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요즘 나의 투덜거림이 더 심해졌다.


"진로고민이 각기 다른 20~30명 학생들을 한 교실에 두고 제한된
1~2시간안에 어떤 이야기를 해야 이 학생들 진로에 도움이 되는거지?"


 요즘 전북 진안의 고3 학생들을 만나러 간다. 10회차 수업의 기회를 얻었고 지금까지 5번 수업을 나갔다.

기본적으로 나는 욕심이 많다. 꿈이 없고 진로에 대해 고민이나 관심이 없는 학생들, 진로가 막연해서 불안하거나 또는 불안하지 않은 학생들, 하고 싶은게 있는데 누군가의 반대나 시선때문에 하지 못하는 학생, 방법을 몰라 주저하는 학생들. 이 모든 학생들에게 나와 만나는 시간이 의미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포스트잇으로 이 학생들 각각의 고민을 모두 받고 함께 나누며 각각의 고민들과 관심사에 다 응답해주려 노력한다. 그리고 수업을 하며 수업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길 바래서 조별 수업, 활동형 수업들을 하려고 많이 노력한다. 그래도 수업에서 소외되거나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는 친구들이 있었고, 부끄러움때문에 자신의 관심사를 내게 표현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보였다. 그래서 수업을 듣는 55명의 학생들 한명한명에게 매 수업마다 편지를 썼다. 그렇게 한명한명에게 다가가고 싶었고 그 친구들이 나와 만나는 1~2시간을 의미없게 버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나의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더 좋은 학습방법, 더 간단하고 명쾌하게 전달할 진로탐색의 핵심 가치가 있을거야'


 그래서 찾았던 것들이 있다. 페이스북에 브런치에 뉴스에 올라오는 교육/학습법 고수들의 글들, 그 사람들의 노하우가 담긴 인사이트들을 찾아 다녔다. 그리고 실제 많은 영감과 도움을 받았다. 오래전부터 그렇게 비슷한 갈증들을 해결해왔기에 이번에도 같은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습관들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나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알면 알수록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처음 진로교육을 시작하면서 내가 경험했던 교육환경을 뒤집어보았다. 어떤 수업 환경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고 그렇다면 어떤 수업환경이 우리에게 필요할까 고민하다 참여형 수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액션러닝, 플립러닝 등등 다양한 이론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름대로 이것들이 타당하다 생각해 학교 현장에 적용해보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 나가서 너무나 다양한 욕구를 가진 학생들이 한 교실에 앉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학생들의 심리 상태와 그 상태에 맞는 소통방법, 학습방법 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이 학생들의 욕구와 상태에 맞출 수 많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의를 맡겨준 선생님들의 기대를 충족해야했다. 내가 원하는 수업을 하기 위한 설득도 해야하지만 원하지 않던 것을 들어주어야 하는 상황도 계속 생긴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걸 어떻게 충족시켜야할지에 대한 것도 알아야 했다. 이러다보니 이후에도 새롭게 고민해야할 점들이 무수히 늘어나고 그것을 풀어가기 위해 알아가야 할 것들이 늘어났다. 

 고민이 넓어지고 깊어질 수록, 하나의 고민을 해결했을때 새롭게 알게되는 두가지 이상의 고민점들을 맞이하는 기분은... 자주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교육/학습법에 훌륭한 인사이트를 가지신 분들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계속 반복되면서부터 마음 한켠이 괴로워졌다. 


 페이스북이나 브런치 등을 검색하고 살펴보다보면 훌륭한 인사이트와 노하우를 자신만의 문체로 담담히 글로 풀어내는 분들을 보게 된다. 이런 사람들의 글을 보다보면 미쳐 몰랐던 학습법이나 진로탐색의 핵심 가치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런 글을 자주 보다보면 무력감에 빠진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가치있는 이야기들, 유용한 이야기들을 보면 즐겁고 좋은데 한편으로는 '왜 나는 저런 생각을 하지 못할까. 저 정도의 인사이트를 가지려면 나는 뭘 해야 하지?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내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지나친 부러움에 스스로가 움츠러들었다. 

 나는 고민이 생기면 그것들을 풀어가기 위해 유용한 인사이트와 정보들을 찾고 보고 감탄하고, 거기서 생긴 또다른 고민들을 풀기 위해 그것을 해결해 줄 정보를 또 찾아 나서게 되는 패턴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다 생긴 문제는 감탄하며 얻는 생각을 내것으로 만들어낼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삶과 관련된 좋은 인사이트/학습법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내가 실제 적용하고 활용할 수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좋은 인사이트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감정적으로 경험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 삶에 적용하거나 남에게 전달하기 쉽지 않다. 자꾸 얻기만 하고 그것을 내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없다면 결국 얻은 것들은 내것이 아닌 남의 것으로만 남게 되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거기서부터 내가 새롭게 얻는 관점들을 내것으로 만들 현실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후 몸을 체득한 무언가의 위에 새로운 고민을 얹고 또다시 해결해 나가는 과정들이 필요했다. 그런데 앞선 욕심때문에 그런 과정을 자꾸 놓치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유용한 인사이트를 얻는다고 해도 그 과정이 나를  

비관적으로 만들고 괴롭게만 만든다면 오히려 그것은 독이라는 것도 알았다.

 

배운다는 것은 내가 이로워지고 그 영향력을 남과 함께 나누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인데, 내 스스로가 괴로워지고 회복하기 어렵게 지치게 된다면 그 배움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자꾸 받아들이다가 그 무게에 압도되기보다 내 생각과 배움의 중심을 만들어가면서 새로운 것들을 더할 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것을 위한 답은 '행동'이었다.



배움이 있었다면 내 생활 속, 작은 부분에 적용부터 해보자. 그리고 글로 다시 정리하자.


 직접 해보지 않으면 좋은 지식들을 체화할 수 없다. 감정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텍스트로만 알고 있는 지식은 유용하게 쓰기 어려웠다. 경험으로 지식들이 어떤 맥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활용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무언가 지식을 얻었다면 관련된 경험을 하면서 이어보던가, 기존에 했었던 많은 경험들을 가지고 이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정리해야한다는 것도 알았다. 머릿속에만 둔 경험들과 깨달음은 쉽게 날라갔다. 적지 않으면 논리적으로 정리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글로 적는 다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됬는데 브런치에 이런 글들을 적어내는 것도 이런 깨달음에서 비롯한 것이다. 실제 이런 과정 속에서 지식은 내가 활용가능한 지혜가 되었다.



 이런 생각들을 한 뒤에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깊은 생각과 

유용한 통찰을 보면 부럽고 괴롭지만, 마냥 괴로워하지는 않기로 했다.


 내가 아는 곳에서부터, 활용가능한 것부터 다뤄나가며 밖에서 얻는 통찰들을 적용하며 내것으로 쌓아나가기로 했다. 안다는 것의 기쁨에만 몰입하지 않고 내것으로 만들어내는데에도 충분한 노력을 더하기로 했다. 그러다보면 고민만 하고 괴로워만 하던 지금의 모습에서 더 나다워지고 더 지혜로워지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러워만 하지 말자. 부러워만 하고 이론으로, 글로 알기만 하는 지식은 내것이 아니다. 

그러기만 해서는 내가 바라는 모습이 되기는 결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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