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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크릭 May 09. 2020

과학에 대한 사소한 오해들.

- 개 구충제 사태를 돌아보며

한국에 계신 친척분에게 연락이 왔다.(엄마 아님) 구충제를 좀 보내주시겠다고, 몸에 좋으니 먹어두라고. 올초 한창 펜벤다졸과 메벤다졸 이야기가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었을 때다. 내가 이런 거 덥석덥석 믿지 말라고 하니 알겠다고 하셨지만, 막상 왜 믿으면 안 되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을 때 정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니 생각보다 엄청난 정보의 양에 놀랐고, 특히 몇몇 유튜브 동영상들은 조회수가 수십만 회여서 그 파급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내가 이 글을 쓰게 만든 동영상에서는, 화려한 경력의 암 전문의라는 분이 개 구충제를 항암제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안정성과 구체적인 복용법까지 설명하고 있었다. 나름 이 바닥(?)에서는 유명하신 분 같았는데, 영상과 그 아래 달린 댓글을 보면서 내가 느낀 문제점은, 대부분의 사람이 이 사람이 말하고 있는 내용의 진위를 바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이런 동영상에 counteract 할 수 있는 과학 권위의 부재였다. (아니 딱 봐도 병원 홍보와 댓글 알바인데 뭔... 사람 목숨 갖고 돈벌이하는 세상) 명확히 틀린 정보도 이 정도의 경력을 가진 사람이 이 정도로 자신감 있게 신뢰 가는 포맷으로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구나 할 수밖에 없다. (ex) 메벤다졸/펜벤다졸의 항암 메커니즘을 대사 관련이라고 설명함. 틀린 정보임. 몇 년 전 환우 커뮤니티 내에서 유행했던 피르비늄은 대사 관련한 메커니즘이 알려져 있지만, 최근의 벤다졸 계열은 tublin inhibitor이다. 세포가 - 암세포든 정상세포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고 보면 된다. 잘못된 정보를 그럴듯한 설명과 곁들이면 정말로 '그럴싸해' 지더라).




물론 누구나 정보를 올리고, like와 subscribe로 정보의 옥석이 가려지는 시대이다. 요즘 취미생활 관련한 동영상을 자주 찾아보는데, 좋아요 개수와 콘텐츠의 질이 대부분 비례하는 것 같다. 새로 시작한 유튜버라도 콘텐츠 괜찮다 싶으면 수개월 내에 자리를 잡는 것을 많이 봤다. 또 like나 댓글을 조작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 사람들이 보는 눈이 다 비슷하다. 아니다 싶으면 댓글이나 dislike로 자정작용이 일어난다. 그리고 또, 좀 틀린 내용이 있으면 어떤가? 자전거에 대해 조금 잘못된 정보가 돌아다녀도 괜찮다. 그러나 의학과 과학은 정보의 비대칭이 심할 수밖에 없는 분야다. 심지어 의사도, 과학자도 자기가 공부하는 분야 외에는 잘 모른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일정량 이상의 댓글이나 좋아요가 달리면 (조작되면) 자정작용 없이 더 많이 노출되고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는 것 같다. 의학/과학은 자전거와 달리 누군가에게는 생명이 달린 선택에 대한 정보가 될 수도 있기에 문제가 심각하다.


나는 개 구충제 복용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특히 의학과 과학이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말기 암의 경우에는 더 그렇다. 이러나저러나 죽는 것이 확실하다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환자를 누가 비판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 숫자나 확률은 의미가 없다. 나한테 효과가 있다면 100%인 것이다. 예전부터 환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다양한 대체의학/자연치료 방법이 공유되어 왔다. 그러나 개 구충제 사태에서 내가 불편한 것은, 과학이 그들의 판단을 호도하는데 교묘하게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과학에 대한 대중적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되었고, SNS와 자본주의의 탐욕에 의해 증폭되었다. 그리고 과학계는 이런 문제에서 철저히 수동적이었다. 


애꿎은 피해자를 줄이고 중간에서 덕보는 놈들을 없애려면 과학에 대한 몇 가지 고정관념, 오해 혹은 환상으로 말할 수 있는 점들이 적극적으로 해소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에 대한 신화

많은 사람들이 과학이 답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과학적 사실이 어떤 진리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오죽하면 창조론과 진화론을 두고 하는 논쟁들이 수십 년간 어그로를 끌겠는가. (과학은 과학일 뿐.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이지 우리의 실존을 설명해 줄 수 없다). 실제로 과학이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은 많은 한계가 있다. 과학의 의의는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논문게재=검증완료?

하나의 논문은 하나의 의견일 뿐,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충분히 검증되어야 하고, 혹은 언제든 뒤집힐 수도 있다.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학자들이 어떤 동의에 이를 때 '과학적 사실'이 형성된다. 이런 과정들이 5년, 10년 단위로 일어나기 때문에 과학자들조차 새로운 분야에 대해서 이런 흐름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부분이 더 강조되고, 특히 과학 교육에서 과학사가 더 강화되어야 한다.


CNS급 논문에 대한 환상

논문에 게재되었다고 하면, 특히 '저명한 해외 저널'에 게재되었다고 하면 엄청난 신뢰도 상승효과가 있다. 실제 논문에서 그림이나 테이블이라도 따오면 더 그렇다. 요즘에는 피인용지수, SCI급 저널이냐 아니냐가 언론에 많이 언급되면서 많이 알려졌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저널 수준에 대한 선입견을 배제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저널의 서열화를 지양해야 한다.  (황우석=사이언스, 오보타카=네이쳐) .


기초과학적 발견=치료제 개발?

'OO 완치 길 열려...'. 이런 기사 좀 그만 봤으면 좋겠다. 하도 많이 봐서 이젠 이런 거 봐도 안 믿는 사람들이 더 많다. 과학이 무슨 양치기 소년도 아니고. 기초과학에서 시작된 연구가 신약개발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지속적인 강조가 필요하다. 특히 국가 연구개발 사업 평가 항목에 [언론보도] 항목이 있어서 이런 류의 기사들이 더 조장되는 경향이 있다. (좀 없애주세요)




<구충제를 항암제로 먹는 것이 안전한가?>에 대한 과학자, 혹은 의사의 대답은 '모른다'여야 할 것이다. 간혹 몇몇 구충제가 고용량 장기 복용에 대한 FDA 테스트를 받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논리를 봤는데, 매우 설득력이 있는 설명이어서 더 위험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그 테스트는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실제로 현재 이뤄지고 있는 개 구충제의 repurposing (어떤 약을 기존에 승인된 질환이랑 다른 질환에 적용하는 것) 연구들이 실효성이 있는 것으로 판명이 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이런 논의는 과학계 내에서만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보듯 이제는 과학자와 대중이 생산자와 소비자로서 더 밀접하게 소통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과학자와 언론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과학에 대한 이해를 돕고 오해를 줄여 나갔으면 좋겠다. 과학 커뮤니케이션, 대중과학의 영역에서 단기적인 흥미를 끌 수 있는 주제보다 실제 과학자가 어떤 일을 하고 과학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전달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걸 재미있게 전달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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