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에세이 297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2001년 개봉된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유지태)는 자신을 떠나려고 하는 애인 은수(이영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장면에서 관객의 반응은 엇갈린다.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상우에게 공감하지만, 나이가 많을수록 ‘저 친구, 아직 사랑을 모르는구만’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높아질 것이다. 오래 같이 살면서(또는 영화처럼 사귀면서) 눈에 씐 콩깍지가 벗겨지면 사랑도 식기 마련일까.
처음 만났을 때 외모에 혹해 결혼까지 했지만 살다 보니 생활력이 전혀 없다는 걸 깨닫고 후회하는 경우가 사랑이 식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얼굴은 길어야 3년’이라는 어른들의 말씀도 있지 않은가.
“어떻게 사랑이 안 변하니?”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랑앵무 암컷은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 위키피디아
문제해결능력 있는 수컷 다시 봐
학술지 ‘사이언스’ 1월 11일자에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상황에 따라 사랑이 변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이 실렸다.
중국과학원 동물학연구소 등 중국과 네덜란드의 공동연구자들은 호주에 사는 작은 앵무새인 사랑앵무를 대상으로 수컷에 대한 암컷의 애정이 수컷의 생활력에 따라 바뀔 수 있는지 알아봤다.
다른 많은 새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앵무 암컷도 외모나 지저귐이 뛰어난 수컷을 선호한다. 사람으로 치면 훤칠하고 잘 노는 남자이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다. 연구자들은 먼저 암컷에게 수컷 두 마리를 데려가 관찰했다. 암컷이 더 오래 가까이 머무르는 쪽을 선호하는 수컷이라고 평가했다.
연구자들은 암컷의 관심을 받지 못해 풀이 죽어있는 수컷을 데려다 특별 교육을 시켰다. 즉 뚜껑을 열어 페트리접시 안에 들어있는 먹이를 먹는 방법과 세 단계를 걸쳐야 투명한 상자 안의 먹이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습득시킨 것이다. 사랑앵무 수컷은 반복 학습을 통해 기술을 완전히 습득했다.
암컷의 선택을 받지 못한 수컷에게만 패트리접시(위 왼쪽)이나 투명상자(위 오른쪽) 안에 들어 있는 먹이를 꺼내 먹을 수 있는 기술을 습득시킨다. 자신이 외면했던 수컷은 먹이를 꺼내 먹는 반면(아래 왼쪽) 선택했던 수컷은 실패하는 걸(아래 오른쪽) 지켜본 암컷은 마음을 바꾼다. ⓒ 사이언스
지금까지 자신의 선택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던 암컷은 곧 놀라운 상황을 지켜보게 된다. 즉 자신의 파트너는 페트리접시나 투명한 상자 안의 먹이를 꺼내지 못해 쩔쩔매는 반면 자신이 버렸던 수컷은 능숙하게 뚜껑을 열어 안에 들어있는 먹이를 먹는 게 아닌가.
관찰이 끝난 뒤 연구자들은 암컷에게 수컷 두 마리를 다시 데려가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 알아봤다. 이 글의 맥락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암컷은 외모나 노래로 판단해 외면했지만 알고 보니 똑똑한 수컷을 허우대는 멀쩡해도 생활력이 없는 수컷보다 더 선호했다.
연구자들은 이런 선호도의 변화가 단순히 먹이를 먹는 행위 자체에 따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검토하는 추가 실험을 진행했다.
문제해결능력(생활력)은 이성의 마음을 바꾸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 Pixabay
즉 암컷이 선호한 수컷은 그냥 있고 외면했던 수컷이 평범한 먹이통에 있는 먹이를 먹는 장면을 보여준 뒤 선호도를 조사했다. 이번에는 선호도에 변화가 없었다. 즉 단순히 먹이를 먹는 모습이 아니라 문제해결능력(생활력)이 마음을 바꾸게 한 요인이라는 말이다.
“사랑 때문에 사나? 정 때문에 살지…”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부부들에게 금슬이 좋은 비결을 알려달라고 하면 이런 식으로 대답하곤 한다. 이 말이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진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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