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토신, 뇌 부위의 다양한 영역에 관여
‘난동 부리는 취객을 한 방에 진압하는 멋진 일반인’. 지난해 11월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의 제목이다. 네티즌들은 제목처럼 일격에 난동꾼을 제압하는 멋진 장면을 상상하며 동영상을 클릭했다.
그런데 45초가량의 짧은 영상에는 뜻밖의 장면이 담겨 있었다. 서울 당산역의 플랫폼에서 경찰관 두 명이 만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50대로 보이는 남성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다. 바로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한 청년이 취객에게 다가가 안아주며 등을 토닥인다.
‘포옹 호르몬’으로 알려진 옥시토신은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 Public Domain
그러자 좀 전만 해도 큰소리를 질러대던 취객은 이내 고개를 떨구며 진정된 모습을 보였다. 이 영상은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뒤늦게 주목받으며 많은 네티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사람의 몸을 전투 상태로 만드는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기대하고 본 영상이 반대로 사랑과 포옹의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을 분비시켜 준 셈이다.
원래 옥시토신은 산모들이 아기를 낳을 때 분만이 쉽게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는 자궁수축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출산 시뿐 만 아니라 스킨십이나 포옹할 때 혹은 낭만적인 대화를 나눌 때도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따라서 옥시토신은 포옹 호르몬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50대 남성은 신체적 접촉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신체적 접촉이 없는 계층이나 사회는 폭력성이 더 높아진다.
2002년에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아이들에게 육체적 애정 표시를 금지하는 문화권에서는 그렇지 않은 문화권보다 성인들 간의 폭력 사건이 더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세계 400개 문화권을 조사한 결과, 포옹을 많이 하는 사회일수록 폭력이 적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이들에게 육체적 애정 표시를 금지하는 문화권에서는 그렇지 않은 문화권보다 성인들 간의 폭력 사건이 더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 Pixabay
옥시토신을 이용한 자폐증 치료제 개발 중
옥시토신은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동영상 속의 청년처럼 다른 사람에게서 분비된 옥시토신이 결국 영상 속의 50대 남자에게서처럼 자신에게도 옥시토신을 분비하게끔 만든다는 의미다.
이처럼 사람들 간에 옥시토신 분비가 동기화된다는 증거는 부모와 아기에 대한 연구에서 입증됐다. 과학자들은 부모가 아기와 함께 웃거나 장난치는 교감 행동을 하기 전후의 상황에서 각각 옥시토신 양을 측정했다.
그 결과 상호 긍정적인 교감을 보여준 부모와 아기의 침에서는 옥시토신 분비가 같은 경향을 나타냈다. 하지만 눈을 잘 맞추지 않거나 긍정적인 교감을 하지 않는 가족들에게서는 이 같은 옥시토신 일치가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 간의 마음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하는 감각은 주로 시각이다. 따라서 눈에 대한 민감성은 매우 일찍 발달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생후 7개월이 된 아기들도 상대방이 정면을 바라보는지 시선을 피하는지를 구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아기들은 타인의 눈에서 감정을 읽어내기도 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뇌의 부위는 어른이 된 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사용하는 바로 그 부위다. 이처럼 눈을 통한 반응을 조절하는 호르몬 역시 옥시토신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마음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하는 감각은 주로 시각이다. ⓒ Pixabay
한 연구에서 옥시토신을 주입한 사람들은 상대방의 눈에 더 주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옥시토신은 상대방의 눈에 나타나는 감정을 더 잘 이해하게 만든다.
그런데 자폐증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의 경우 상대의 눈에 둔감하다. 이에 착안해 일본 연구진은 옥시토신으로 자폐증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자폐증은 대인관계가 어려운 정신장애인데, 자폐증 환자에게 옥시토신을 투여한 결과 유의미한 증상 완화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옥시토신이 간식 섭취량을 줄여준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영국 연구진이 젊은 남성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옥시토신 농축액을 코에 뿌린 그룹의 경우 위약을 뿌린 대조군 그룹에 비해 간식 섭취량이 1/3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 이는 옥시토신으로 인해 마음이 안정됨으로써 달콤한 간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해주는 조절 호르몬
이외에도 옥시토신이 자신감 및 직무수행 능력 향상, 수줍음 극복 등 전반적인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급기야 옥시토신 스프레이 제품까지 등장했다. 페로몬 향수 제조업체에서 개발한 이 제품은 ‘쑥스러움 방지제’ 등의 이름으로 대인관계 능력 향상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주목을 끌고 있다고 한다.
옥시토신이 자신감 및 직무수행 능력 향상, 수줍음 극복 등 전반적인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 Pixabay
그런데 최근 영국 과학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오슬로대학의 다니엘 퀸타나가 주 저자로 참여한 이 연구는 옥시토신 수용체와 뇌 활동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최초의 전체 뇌 지도를 공개했다.
그에 의하면 옥시토신은 단지 ‘포옹 호르몬’으로만 여기기엔 너무 많은 영역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옥시토신은 사회적 관계뿐만 아니라 식욕, 보상, 기대 등과 관련된 뇌 부위에 다양하게 관여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옥시토신의 경우 신체가 항상성을 유지하게끔 해주는 조절 호르몬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옥시토신은 사랑과 포옹 호르몬 또는 도덕적 분자라고 불리지만, 몇몇 연구는 이 호르몬이 질투심이나 걱정, 대인공포심 등과 같은 부정적인 기능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부정적 연구 결과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긍정적 연구결과에 비해 언론 등에서 그만큼 관심을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몸과 마음만큼 복잡 미묘한 것도 없다. 그 모두를 더욱 좋게 만드는 기적 같은 단 하나의 물질이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옥시토신 스프레이 같은 제품이 아니라 당산역의 그 청년처럼 우리에게 좋은 옥시토신을 저절로 분비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성규 객원기자
기사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