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도살 없는 달걀' 판매 개시
1960~1970년대 우리나라는 외화 획득을 위해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했다. 그때 이들 외에도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싣던 전문 직업인이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의 병아리 감별사들이다.
현재 사용되는 병아리 감별 기술을 처음 개발한 것은 1920년대 일본이다. 수의학자인 마즈이 기요시 박사가 부화한 지 24시간이 지난 병아리의 항문을 손으로 열어 그 안에 있는 생식 돌기의 형태와 각도, 색상 등을 보고 암수를 구분하는 방법을 정립했다.
생식 돌기의 색이 선명하고 모양과 각이 분명하면 수평아리, 그 반대면 암평아리다. 하지만 생식 돌기의 크기가 좁쌀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 세심한 관찰력과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달걀 단계에서 암수를 감별할 수 있는 기술이 독일에서 상용화됐다. ⓒ Public Domain
고등 감별사가 되기 위해선 병아리 100수를 7분 이내에 98% 이상의 정확도로 감별해내는 것을 연속 5회 이상 성공해야 한다. 숙련된 감별사의 경우 시간당 1300~1600수를 처리해 하루에 약 2만 수를 감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이 기술을 1960년대에 수입한 이후 종주국인 일본과 세계 감별업계를 양분할 정도로 발전시켰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병아리 감별사의 60%가 한국인일 것으로 추산되는데, 유럽에만 300명이 거주하고 독일에도 1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국에서 우리나라 감별사들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그만큼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같은 수작업이라도 서양인보다 손놀림이 섬세할 뿐더러 집중력과 끈기도 앞선다는 평을 듣는다.
수평아리들은 부화한 후 바로 도살돼
일설에 의하면 멜라닌 색소가 많은 동양인의 검은 눈동자가 병아리 감별에 유리하다고도 한다. 생식 돌기의 미세한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200W에 이르는 밝은 불빛에서 장시간 시력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번식을 위한 씨닭인 종계의 경우 암수 구별이 매우 어려운데, 유럽이나 미국인 감별사들은 이를 감별해내는 수준이 한국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때문에 처음 독일에 파견된 우리나라 감별사들은 당시 독일 종합병원 과장의 2배에 이르는 월급을 받을 만큼 높은 대우를 받았다.
달걀에서 나오자마자 병아리들을 암수로 구분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인간이 닭을 기르는 이유는 닭고기를 얻거나 달걀을 얻기 위해서인데, 우선 수탉은 달걀을 낳지 못한다.
수탉이 암탉에 비해 천대(?)받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달걀을 낳지 못한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 Pixabay
또한 고기로 먹을 만큼 키우려면 암탉에 비해 성장하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려서 사료값 등의 사육비가 더 들게 된다. 따라서 산란계가 아닌 육계의 경우에도 사료 공급과 출하시기를 일관화하기 위해서는 보통 암컷과 수컷을 따로 분류해 기른다.
한편, 병아리 부화 공장에서 태어난 산란계 암평아리들은 수평아리들과 분류된 후 곧장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상한 기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자동으로 예방 접종을 하고 부리 끝도 제거된다. 좁은 닭장 안에서 서로 쪼아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다. 그리고 평생 달걀만 낳다가 죽어야 한다.
하지만 수평아리들의 운명은 더욱 가혹하다. 감별사들에 의해 수컷으로 판정되면 바로 대형 파이프 구멍 속으로 던져진다. 그 파이프는 병아리들의 형체를 순식간에 갈아버리는 분쇄기와 연결돼 있다.
동물 복지가 좀 더 잘 돼 있는 곳에서는 이산화탄소 가스로 순간 안락사를 시킨 다음 역시 분쇄기 안으로 던져 넣는다. 분쇄기로 갈아진 그들의 주검은 파충류 등의 사료로 재탄생한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40~60억 마리의 수평아리들이 이처럼 부화하자마자 도살된다.
이는 불법이 아니지만 가금류 축산업계에서는 가장 문제가 되는 골칫거리였다. 동물보호단체들의 고발과 압력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과학의 힘을 빌려 그 같은 기존 관행을 대체할 대안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나선 국가는 독일이다.
2016년 독일 라이프치히대학의 알무트 아인스파니어 교수팀은 병아리가 부화하기 전인 달걀 단계에서 암수를 감별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그 방법은 사람이 임신 테스트를 하는 원리와 비슷하다.
닭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리스펙트’ 상표 부착
달걀 껍데기 안쪽의 요낭에서 극미량의 체액을 채취한 다음,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호르몬 검사 시약에 적셔서 그 색이 파란색으로 변하면 수컷, 하얀색으로 변하면 암컷으로 판정한다. 암컷에게만 있는 성호르몬인 에스트론을 확인하는 것인데, 정확도가 98.5%에 이를 만큼 매우 높다.
다음 문제는 이 연구결과를 실용화시킬 수 있는 기계의 제작이었다. 달걀은 부화기 밖에 두 시간 이상 나와 있으면 안 되므로 빨리 검사를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달걀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검사에 사용할 체액을 채취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했다.
독일의 슈퍼마켓 체인인 레베 그룹은 이를 위해 네덜란드의 해치테크라는 기업과 공동으로 ‘셀레그트’라는 벤처를 설립했다. 그들이 찾아낸 방법은 달걀 껍데기에 레이저를 쏘아 0.3㎜ 정도의 구멍을 내는 것이었다.
그러면 공기의 압력이 가해져 요낭의 체액이 그 구멍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구멍은 나중에 저절로 메워져 안쪽의 배아에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게 된다.
독일의 슈퍼마켓 체인인 레베 그룹은 지난달부터 베를린에 있는 자사의 슈퍼마켓에 ‘도살 없는 달걀(no-kill egg)’을 처음으로 납품했다. 이 달걀에는 닭을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아 ‘리스펙트’라는 상표가 붙여졌다. ⓒ Pixabay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달부터 레베 그룹이 베를린에 있는 자사의 슈퍼마켓에 ‘도살 없는 달걀(no-kill egg)’을 처음으로 납품했다고 보도했다. 이 달걀에는 닭을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아 ‘리스펙트’라는 상표가 붙여졌다.
이 달걀의 정확한 정체는 셀레그트가 개발한 기계의 의해 달걀 단계에서 성별이 감별된 암탉들이 낳은 것이다. 즉, 부화 후 선별이 아닌 달걀 단계에서의 선별을 거쳐서 태어난 암탉의 알인 셈이다. no- kill이라고는 하지만 수평아리를 품은 달걀은 부화를 멈춘 후 다른 동물의 사료가 가공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쨌든 독일은 이번 연구로 지난 100년간 이어져온 병아리 감별에서의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게 됐다. 이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보급될 경우, 앞으로 부화 후 수평아리들을 도살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법안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이성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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