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감지하는 스마트 문신 개발
문신을 정보 저장 매체로서 가장 잘 활용한 사례는 우리나라에 미국 드라마 열풍을 일으킨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 스코필드다.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된 형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감옥에 갇힌다.
수감자가 되는 순간 아무것도 감옥에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정보를 새길 수 있는 자신의 알몸이 있었다. 그는 형을 탈옥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몸에 문신으로 새긴 채 감옥으로 들어갔다.
조선시대 때는 문신이 범죄자의 형벌을 저장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범죄자들의 얼굴에다 각자의 형벌 내용을 문신으로 새겨 놓은 것. 이렇게 새겨진 문신은 평생 지울 수 없어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조상의 제사는 물론 동네 애경사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
최근 들어 첨단적인 기능을 지닌 스마트 문신들이 잇달아 개발돼 주목을 끌고 있다. ⓒ Public Domain
인류가 처음 문신을 새기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000여 년경이다. 그 당시 문신은 주술적인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았다. 즉, 평생 잃어버리지 않는 부적 같은 것이었다.
알프스의 빙하에서 발견된 약 5300년 전의 남성 미라인 ‘외치’의 몸에도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때문에 일부 고고학자들은 외치의 생전 직업이 주술치료사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밖에도 문신은 결의 및 충성의 표시, 종교적 상징, 애정 맹세 등의 수단으로 많이 행해졌다.
근대 들어서는 문신이 조직폭력배들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러시아 형무소에서는 사형수일 경우 철조망, 도둑은 고양이, 마약범은 거미줄 등의 문신을 새긴다고 한다. 요즘 들어 문신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개성 표현이나 패션 아이템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아직도 부정적인 시선이 남아 있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암 발생 경고해주는 문신
이런 사람들을 위해 등장한 것이 즉석 문신이다. 피부의 진피층에 염료를 주입하는 대신 지워지는 잉크로 간단히 피부에 붙이는 스티커 형태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엔 스마트폰으로 도안을 고른 뒤 휴대용 프린터를 이용해 피부에 직접 인쇄하는 일회용 문신 기기까지 개발됐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첨단적인 기능을 지닌 스마트 문신들이 잇달아 등장해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해 초 미국 LA에 있는 한 스타트업에서 개발한 ‘소리 내는 문신’이 바로 그중 하나다.
이 문신을 새겨 놓으면 돌아간 부모의 음성을 자신이 듣고 싶을 때마다 언제든지 들을 수 있다.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스마트폰의 앱으로 사람의 음성 파일을 입력하면 음파 모양이 나오는데, 문신 시술소에서 그 모양대로 문신을 새기면 된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문신에 갖다 대면 앱이 음파 모양을 음성 파일로 되살려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이 문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세상을 떠난 가족의 생전 음성을 새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운 사람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해주는 문신도 등장했다. ⓒ Pixabay
한편, 폐암이나 대장암 등의 암을 조기에 발견해주는 바이오메디컬 문신도 등장했다. 스위스 취리히공대 연구진이 개발한 이 문신은 시술 직후에는 보이지 않다가 암에 걸리게 되면 검은 점으로 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색깔이 변하는 까닭은 문신에 들어 있는 칼슘 센서가 아미노산을 검은 피부 색소인 멜라닌으로 바꾸는 특정 효소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즉, 종양이 생기면 혈액 내의 칼슘 수치가 높아지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암의 약 40%가량은 이처럼 칼슘 수치 변화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데, 연구진은 이 문신으로 폐암, 대장암, 유방암, 전립선암 등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암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바이오메디칼 문신이 암의 화학적 신호를 조기에 감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질병 진단할 수 있는 다용도 문신
최근 미국 콜로라도대학 ATLAS연구소의 연구진은 주변의 상황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문신을 새로 개발했다. 이 문신의 프로토타입은 햇빛을 비추면 나타나는 잉크와 체온이 올라가면 사라지는 잉크로 만들어졌다.
햇빛에 사라지는 잉크의 경우 선크림 같은 자외선 차단제의 도포 시기를 알고자 할 때 유용하다. 이 문신 위에 선크림을 바르면 햇빛에서도 보이지 않다가 선크림이 다 닳아서 없어지면 다시 문신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체온이 올라가면 사라지는 잉크는 자신의 몸에서 언제 열이 나는지를 경고해주는 체온계로 이용할 수 있다.
이 문신이 주목을 끄는 것은 잉크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잉크는 사람의 머리카락 너비보다 작은 플라스틱 마이크로캡슐 안에 들어가 있으므로 기존에 사용하는 문신 바늘로 피부에 새길 수 있다.
또한 체온이 올라가면 사라지는 잉크는 자신의 몸에서 언제 열이 나는지를 경고해주는 체온계로 이용할 수 있다. ⓒ Pixabay
마이크로캡슐은 잉크가 몸에 의해 분해되는 것을 막아주는 한편 주변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어떤 기능을 지닌 잉크를 넣느냐에 따라서 활용도가 무궁무진해진다는 장점을 지닌다.
예를 들면 혈중 알코올 농도를 체크하거나 혈당이 급상승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잉크를 넣을 수도 있다. 마치 걸어다니는 센서 역할을 하는 이 스마트 문신이 실용화된다면 만성질환에 걸린 사람들은 비싼 혈액검사를 받지 않고도 자신의 질병 상태를 실시간으로 진단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문신의 기원은 이 같은 의료 목적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미라 ‘외치’의 몸에 있는 문신도 의학적 목적에서 새겨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X-선 촬영 및 CT 검사 결과 외치는 퇴행성관절염 등을 앓고 있었는데, 그의 몸 곳곳에 새겨진 문신의 위치가 검사에서 밝혀진 질병 발생 부위와 거의 같았기 때문이다.
이성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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