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출간 급증, 새로운 문학 장르로 떠올라
SF작가 킴 스탠리 로빈슨(Kim Stanley Robinson)의 소설 ‘뉴욕 2140, 맨해튼(New York 2140, Manhattan)’을 보면 2140년 미국 뉴욕은 거대한 해상 도시로 변해 있다.
격자무늬의 수로 위에는 형체가 너무 훼손돼 알아보기 힘든 증기선들이 짐을 실어 나르고, 지금의 맨해튼 6번가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곳에서는 아이들이 스킴보드를 타며 물놀이를 즐기는 장면이 등장한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15.25m까지 상승했기 때문이다.
킴 스탠리 로빈슨은 최근 해수면 상승과 관련된 과학자들의 연구 자료를 토대로 지금처럼 해수면이 올라갈 경우 2140년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경고하는 내용의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의 이런 장면들이 미래 현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기후변화가 더 심각해지면서 최근 기후소설인 ‘Cli-Fi’ 출간이 늘고 있다. 기후 문제의 심각성을 대중에게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인공위성이 촬영한 허리케인. ⓒNASA
대중은 논문보다 기후소설 더 좋아해
2018년 UN 보고서에서 기후과학자들은 인류가 지금 대재난을 향해 가고 있지만 대재난이 다가오고 있다고 실감하는 경우가 매우 드문 지금의 현실을 개탄했다.
16일 ‘BBC’에 따르면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킴 스탠리 로빈슨과 같은 소설가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과학적인 데이터에 의거해 미래 인류가 직면할 상황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
또한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기후변화를 함께 실감하고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19세기 문화와 미국소설 분야에서 저명한 인물인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아고 캠퍼스의 셸리 스티비(Shelley Streeby) 교수는 “과학자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소설가들이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설을 통해 현실을 인식하게 하고, 다가오는 미래를 예감하게 한다.”는 것.
최근 ‘Cli-Fi(Climate Fiction)’로 불리는 기후소설의 출간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 Pixabay
실제로 최근 ‘Cli-Fi(Climate Fiction)’로 불리는 기후소설의 출간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6년 미국 문학비평가 리뷰에 따르면 인간으로 인해 발생한 기후변화를 다루고 있는 ‘클리-피(Cli-Fi)’의 수가 50편에 달했다.
이중 20편은 지난 5년 동안 발생한 재난을 다룬 내용이다. 존 란체스터(John Lanchester)의 작품 ‘더 월(The Wall)’이 대표적인 경우다. 매우 불안한 상황이지만 동시에 매우 재미있는 스토리를 전개해나가고 있다.
현실에 좇기는 현대인의 삶에 있어 미래 예측은 매우 힘든 일이다. 스티비 교수는 그러나 “많은 독자들이 기후소설을 통해 미래를 미리 체험하고 있으며, 소설가들이 대중을 통해 미래를 이끌고 있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스토리 너무 음울, 희망적인 소설 등장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지금의 소설처럼 미래에 항상 재난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도 일어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이다.
미국 뉴멕시코 출신의 소설가 사레나 올리바리(Sarena Ulibarri)가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암울한 분위기의 ‘반이상향적인(dystopian)’ 소설과는 다른 매우 희망적인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공급이 늘어나면서 우려했던 기후변화가 완화되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신세계가 펼쳐진다는 내용이다.
사레나 올리바리가 준비하고 있는 기후소설은 신재생에너지 공급이 늘어나면서 우려했던 기후변화가 완화되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신세계가 펼쳐진다는 내용이다. ⓒ Pixabay
이런 내용의 소설이 출현한 것은 2012년 한 브라질 출판사에서 희망적인 내용의 한 단편소설을 출간하면서부터다. 이후 유사한 내용의 소설이 계속 등장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텀블러(Tumblr)’를 비롯 다양한 블로그를 통해 쏟아져나오고 있다.
소설가 사례나 올리바리는 “기후소설은 픽션이 아니라 현실을 다뤄야 한다.”며, “기존의 우울한 분위기의 기후소설을 밝은 분위기로 바꾸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소설 속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을 통해 정치 논쟁에 참여하고 있는 점 역시 최근 기후소설에서 나타나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다.
킴 스탠리 로빈슨의 소설 ‘뉴욕 2140, 맨해튼’을 보면 한 인물이 경제 시스템을 맹비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탐욕적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 때문에 세계가 쓰레기통이 되고 있다는 것. 이 멍청한 인간들을 극복해 정의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대사를 보면서 독자들은 2018년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2140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것이다.
로빈슨은 이런 표현을 통해 ‘분개한 낙관론(angry optimism)’에 접근해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래 더 나아지는 현실을 기대하고 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며, “기후소설을 비롯한 SF를 통해 이를 실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설가 로빈슨은 “미래 더 나아지는 현실을 기대하고 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며, “기후소설을 비롯한 SF를 통해 이를 실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 Pixabay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와 병행해 긍적적이든 부정적이든 기후소설이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그러나 기후소설에서 전개되고 있는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백인이 이 소설 장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유색인종들이 기후소설을 기피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기후소설의 백인우월주의 문제는 기후소설을 포함한 SF(공상과학소설) 전체의 문제다. SF 출현서부터 지금의 작품 출간에 이르기까지 SF 장르를 주도하고 있는 소설가들은 대부분 백인들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캘리포니아대학 스티비 교수는 “SF에서 백인 외에 유색 인종을 다양하게 출현시킬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과학과 관련,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래가 다양한 인종을 통해 전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이 만들어가는 미래를 인류 전체가 공유하면서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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