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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과학쌤 Dec 03. 2023

마운트 쿡 등산이 그렇게 좋다면서요

뉴질랜드 로드트립 - 마운트쿡

 1년 내내 빙하가 산 꼭대기를 덮고 있는 마운트 쿡은 남섬 여행의 필수 코스 중 하나야. 대중교통편이 없어서 뚜벅이 여행자였을 땐 가보지 못했던 곳이라, 이번 로드트립에서 특히 기대했던 곳이었어.


 마운트 쿡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는데, 가장 유명한 건 후커 밸리 트레킹 코스야. 다섯 살 배기 꼬맹이도 갈 수 있을 만큼 완만해서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거든. 체력 쪼랩인데다 등산을 싫어하는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후커 밸리 코스를 선택했어. 계곡을 따라서 종착점까지 한 시간 반쯤 걸으면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후커 호수가 있. 그러니까 왕복 세 시간 코스인 거지. 후커 호수까지 가면, 얼음 조각이 둥둥 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하더라고.


 결론부터 냉큼 말하자면 난이도 '하'라는 길을 오가는 데에 꼬박 다섯 시간이 걸렸고, 호수에 떠 있는 얼음 조각은 코빼기도 못 봤어. 우르릉쿠궁 하면서 빙하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는 끊임없이 들렸는데, 햇살이 쨍해서 그랬는지 눈앞에 보이는 얼음은 없더라고. 빙하로 감싸인 산길을 걷는 기분도 특별할 게 없었어. 명성 비해 평범한 모습에 김이 샜달까. 더 솔직하게는 산 아래에서 늘 보던 풍경과 비슷한데 굳이 몇 시간씩 등산을 하면서 봐야 하는 걸까 하는 마음이었어. 몇 달 동안 뉴질랜드에서 입이 떡 벌어지는 풍경들을 충분히 봤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인간이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어.


쨍하게 맑은 날의 후커 호수


 우리는 테카포를 거점으로 삼았기 때문에 테카포 호수와 푸카키 호수에서 사진을 찍어가며 마운트 쿡까지 이동했어. 둘 다 마운트 쿡의 빙하가 흐르면서 만들어진 거대 호수인데, 색깔부터 반짝임까지 정말로 특별해. 온갖 엽서에 배경 사진으로 등장하는 테카포의 아름다움은 더 말해 뭐하겠으며, 푸카키 호수는 테카포 호수보다도 더 아름답고 장엄하거든. 맑은 날 푸카키 호수를 본다면 그 어떤 돌부처의 심장이라도 쿵쾅거릴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


 솔직히 말하자면, 마운트 쿡의 후커 호수는 그보다 더 멋질 거라고 짐작했어. 산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호수가 이 정도인데 산 위에 있는 호수는 얼마나 더 장관일까. 그래서 푸카키 호수에서 드론을 날리겠다는 남편을 말려가며 마운트 쿡을 향해 달렸. 마운트 쿡을 코 앞에 두고는 도로 한가운데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두어 장 대충 따라 찍고 서둘러 이동하기 바빴지. 차가 안 오는 타이밍을 잡기도 힘들거니와, 산에 오르면 그보다 더 멋진 뷰가 보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인생은 타이밍이고, 지나간 순간은 돌아오지 않는 법이란 것을 절실하게 실감했어. 하산하고 내려오니 해가 다 져서 반짝이는 풍경들이 모두 사라졌거든. 후커 밸리 트레킹 코스에 가파른 경사로는 없지만, 크고 작은 자갈로 가득 찬 돌길이었어. 출발할 때만 해도 빠르게 걸으면 왕복 두 시간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돌길을 걷다 보니 발목에 무리가 가더라고. 인대를 다쳤던 발목이 자꾸만 삐그덕거렸어. 발목을 잡아주는 등산화 같은 건 아예 챙겨가지도 않았거든. 중간중간 앉아서 을 주물러가며 느릿느릿 걷다 보니 꼬박 다섯 시간이 걸렸어. 산도 호수도 모두 칙칙하게 어둑해져 버린 거지. 다음날엔 구름이 잔뜩 껴서 또 종일 칙칙했고.


 푸카키 호수가 반짝일 때 드론 영상을 찍지 못한 것, 그리고 마운트 쿡을 배경으로 찻길 위에서 사진을 제대로 남기지 못한 것은 지금까지도 아쉬움이 남는 일 중 하나야. 그리하여 뻔한 인생의 진리를 되새겼어.

 1.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이 나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다.

 2. 지나간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나에게 좋은 것은 그때그때 붙잡아라.

 그리고 3. 아무리 쉬운 산길이라도 등산할 땐 등산화를 신자.


내 기준 최고의 호수 푸카키호


오늘의 과학
 산을 타고 올라가던 구름이 산 위에서 눈을 뿌리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마운트 쿡 꼭대기에 어마어마한 눈이 쌓였습니다. 이 눈이 오랜 시간 다져져 빙하를 형성했지요. 얼음의 압력과 지구의 중력에 의해 빙하는 천천히 흘러내립니다. 흐르던 빙하가 호수나 바다에 닿거나 기온이 높아지면 깨지고 녹게 되지요. 빙하가 흘러내릴 때 얼음 덩어리 속에 갇혀 있던 암석들이 함께 이동하게 되는데, 빙하호 주변에 유독 큰 돌이 많은 것이 그 때문입니다. 테카포 호수와 푸카키 호수는 모두 빙하호입니다. 빙하가 길게 끌리며 만들어졌기 때문에 세로로 긴 형태이며, 호숫가를 따라 걷기 힘들 정도로 큰 돌들이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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