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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과학쌤 Nov 26. 2023

혼성 도미토리의 커플

뉴질랜드 로드트립 -테카포

 혼자 해외여행을 즐기던 솔로 시절엔 호스텔의 도미토리를 애용했어. 적당한 가격으로 4인실이나 6인실의 침대 한 칸을 차지하면,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었거든. 그러다 가끔, 커플인데 도미토리에 와서 각 침대를 쓰는 여행객을 보면 의문이 들었어.

 '커플인데 2층 침대에서 따로 잔다고? 왜 도미토리 온 거지? 단 둘이 있고 싶지 않나?'


 그래, 그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거야. 그 의문의 커플이 내가 될 줄은 나도 몰랐다니까.


 우리는 굉장히 허술하게 로드트립을 시작했어. 뉴질랜드 몇 달 살이를 하는 동안 통장 잔고가 바닥난 외국인 신세가 되었거든. 에어 매트리스, 온열 기구, 캠핑장용 전선 같은 장비를 갖추는 건 우리에게 사치였지. 제 값을 주고 산 건 K마트에서 파는 침낭 두 개가 전부였어. 그나마도 영하 2도용 침낭 하나, 영상 8도용 침낭 하나를 샀어. 영하용 침낭은 그만큼 비쌌거든. 그리고는 중고 거래로 20달러짜리 엉성한 텐트를 하나 장만하고, 가지고 있던 승용차를 타고 출발했어.



 차를 타고 몇 시간씩 달리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잘 곳을 찾는 게 늘 어려웠어. 위치, 청결, 가격을 모두 만족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호스텔이든 에어비앤비든 깨끗해 보이는 2인실은 너무 비싸서, 남은 잔고로 며칠 버티지 못할 것 같았어. 결국 우리에게 최선의 선택은 캠핑장의 텐트 사이트였어. 두 명이 50달러로 깔끔한 공용 샤워실과 주방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가끔은 텐트에서 자고 가끔은 차 안에서 잤어. 텐트에서 자면 다리는 쭉 펼 수 있었지만 등이 배겼고, 차에서 자면 등은 덜 배겼지만 구부러진 다리가 불편했어. 그래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니 어디서든 대여섯 시간은 잠들 되더라고. 새벽녘 찬 기운에 깨지만 않았다면 아마 여덟 시간씩 잘 수 있었을 거야. 영상 8도용 침낭을 살 땐 겨울이 다 끝난 줄 알았지 뭐. 여섯 겹씩 옷을 입고, 두꺼운 겨울 양말을 두세 개 겹쳐 신은 다음 침낭에 들어가면 추위를 잊을 만했어. 자동차 창문이랑 텐트 위에 밤새 맺힌 서리를 닦아내는 게 하루의 시작이긴 했지만.


 그래서 테카포에서만큼은 실내 취침을 하기로 했어. 호수랑 별을 보는 게 테카포 여행의 전부인데 서리 낀 유리 틈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았거든.  새벽에 별을 보며 추위에 떨다가도 들어갈 방이 있었으면 했어. 그렇게 혼성 도미토리 4인실에서의 2박을 결정했어. 아늑한 2인실의 넓은 침대가 탐나진 않았냐구? 각자의 침낭에 파묻혀 있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로써는 4인실의 싱글 침대가 나쁠 게 없었어. 침대 한 칸 당 75달러라 총 300달러. 2인실보다는 저렴하고 텐트 사이트보다는 비싼 값을 치르고, 우리는 돈으로 매길 수 없는 밤하늘을 봤어.



  멋대로 결론지어 보건대 테카포의 밤하늘이 특별한 건 방해물이 없기 때문이야. 뉴질랜드의 어디서든 별이 잘 보이는 편이지만, 가로등이 별빛을 가리거나 커다란 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기 마련이거든. 테카포의 호숫가에는 나무 없이 탁 트인 공간도 많았고, 가로등 대신 희미한 야광 밴드가 바닥에 붙어 있었어. 호스텔 바로 앞인데도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야 안전하게 걸을 수 있을 정도였거든. 길게 뻗은 호수 너머로는 당연히 하늘뿐이고. 운 좋게도 구름이 단 한 점도 없는 밤을 만나서, 난생처음 깨끗하고 선명한 은하수 전체를 봤어.


 밤하늘이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글쎄,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북극부터 사막까지 온갖 곳의 밤하늘을 봤는데, 테카포의 은하수는 또 다르더라니까.


오늘의 과학
 태양계가 속해 있는 우리은하를 옆에서 보면,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처럼 가운데가 볼록하게 부풀어 있는 형태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우주선 모양으로 모여 있다는 뜻이지요. 태양계는 우리은하의 중심부에서 조금 벗어난 나선팔, 우주선의 날개 부분에 존재합니다. 우주선의 날개에 올라타서 우주선을 바라보면, 그러니까, 지구에서 우리은하를 바라보면 빼곡한 별들이 보이겠지요. 우리은하의 수많은 천체가 밀집해서 뿌옇게 보이는 것이 은하수입니다. 우리은하의 나선팔 쪽보다는 우리은하의 중심부 쪽을 바라보는 계절과 지역에서 은하수가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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