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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과학쌤 May 01. 2024

미니멀리즘이라도 폴웨어는 사야 해

 뉴질랜드에서 8개월을 보내기 위해 가져간 짐은 기내용 가방 1개, 24인치 화물용 캐리어 1개가 전부였다. 뉴질랜드의 겨울, 봄, 여름 나기 위해서 필요한 옷 많았지만, 모든 짐을 합쳐 2개의 가방을 넘기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 정도가 혼자 들고 다닐 수 있는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한국에서 이사를 다닐 때도 이삿짐센터를 부르지 않고 승용차로 짐을 날랐을 정도니, 해외에서 몇 개월 보내는 짐을 줄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후리스 1개, 스웨터 2개, 긴 남방 2개, 반팔 4개로 8개월을 났다. 살다 보니 살아지긴 했는데, 삶의 재미 중 하나가 사진다는 게 단점이었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일하는 날에도 놀러 가는 날에도 주야장천 검은 후리스만 입다 보니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한동안 습관적으로 같은 옷만 집어 들다가, 요즘 런저런  하나씩 꺼내 입어보는 중이다. 옷이 많을 필요는 없지만, 기분이 좋아질 정도의 옷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찢어진 멜빵 청바지를 입은 날에는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고, 하늘하늘한 치마를 입은 날에는 발레리나마냥 발걸음이 가볍다. 이렇게 저렇게 조합을 해 입다 보면, 오로지 옷 때문에 종일 마음이 들뜨고 설레기도 한다.




 그리하여 운동복도 네 벌이나 장만했다. 예전에는 평상복도 별로 없는 사람이 운동복을 사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옷의 중요성을 안다. 입은 옷에 따라 에너지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폴댄스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수영복을 착용했다. 폴댄스만을 위한 옷을 사는 게 어쩐지 아까웠 때문에, 보기에 비슷한 옷을 대충 입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수영복 라인을 따라서 피부에 피멍이 다. 방수 목적으로 두텁게 조이는 수영복 입고 근력 운동을 하니 여린 살이 남아나질 않 것이다.


 그렇게 첫 폴웨어를 장만다. 얇고 가벼운 폴웨어를 입으니  가뿐하게 떠오르는 것 같았다. 의상에 어울리는 우아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에 동작 하나하나 정성 들어갔다. 기분 탓인지 기능성 운동복 덕분인지 아무튼 실력 일취월장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폴웨어라 생각하고 샀는데, 욕심이 생겼다. 리본이 달린 폴웨어, 레이스가 덧대어진 폴웨어,  형태의 폴웨어까지 종류별로 옷장에 담았다. 대신 운동복이 채워진 만큼 평상복을 비워냈다.


 이건 충동구매가 아니라, 운동할 에너지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합리적인 소비다. 아무튼 그게 맞다. 어떤 순간의 나는, 하늘을 누비는 바람 한 자락이 되거나 꿀 한 모금을 찾는 나비가 되어 폴 위에서 나부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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