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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과학쌤 May 12. 2024

나라도 말을 들어 다행이야

  운동 영상을 본 사람들은 묻는다. 안 아프냐고, 안 무섭냐고. 당연히 아프고 당연히 무섭다.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뿐이다. 폴댄스를 배우는 동안 극복해야 할 두 가지는 '고통'과 '공포'다.


 어릴 때도 구름사다리나 정글짐에 날렵하게 올라가지 못했던 나는 지금도 땅에서 발을 떼는 것이 무섭다. 위로 올라가는 동안 중력이 내 몸뚱이를 끌어당기기 때문에, 언제라도 곤두박질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처음에는 두 손과 두 다리로 매달려 있지만, 익숙해질 만하면 다리를 떼야 하고, 또 익숙해질 만하면 손도 놓아야 하니 그때마다 땀이 삐질 난다. 어떻게든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다 보면 온몸에 멍이 들고 살이 까진다.


 사실 나는 폴댄스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그만둔 전적이 있다. 땅으로 뚝 떨어지면서 발목을 접질렸던 사건이 첫 번째 이유고, 온몸에 끊임없이 생겨나는 멍이 두 번째 이유였다.




 폴댄스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동작은 클라임이다. 양 무릎 사이에 폴을 끼운 후 몸을 끌어올려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같은 동작을 두 번, 세 번 반복하여 더 높은 곳에 자리 잡는 것을 투 클라임, 쓰리 클라임이라고 한다. 그날의 본격적인 동작을 하려면 일단 위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매일매일 클라임을 해야 한다.


 실력이 늘면 다른 동작을 덧붙여서 춤추듯 우아하게 올라갈 수 있지만, 처음에는 중력을 거르는 것으로도 힘이 들기 때문에 예쁜 춤선을 살리기 어렵다. 사실 지금도 댄스라기보다는 나무를 타는 팬더 같을 때가 있다.


 폴댄스를 시작하고  달 정도는 도무지 엉덩이가 끌어올려지지 않아서 땅과 가까운 곳에서 엉성하게 동작을 했다. 투 클라임을 시도한 것은 두 달 정도 지나 간의 근력이 생겼을 때였다. 어찌어찌 높게 올라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내려오는 법 배운 적이 없었다. 늘 바닥 근처에서 동작을 했기 때문에 손을 놓고 가볍게 발을 디디면 되었던 것이다. 나는 꽤 높은 위치에서 풀쩍 뛰어내렸고, 몸무게를 버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발목을 접질려 버렸다.


 기본 중의 기본 자세에내가 뚝 떨어지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폴을 잡은 손에 서서히 힘을 빼면서 바닥까지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다. 잘 모르겠으면 도와달라고 질문이라할 것을. 어릴 때부터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경험을 그렇게 많이 해놓고도, 나는 또 나를 믿어버렸다.


 몇 주 동안 깁스 신세를 지다가 학원에 복귀하니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쉬는 동안 말랑해진 피부에 자극이 가해지자 처음보다 더 심하게 아팠고 더 극적으로 멍이 들다. 그때, 나는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멍 투성이로 웨딩드레스를 입고 가정폭력 의심된다는 수군거림을 들을 판이었다. 아니면 또 추락해서 깁스를 한 채 버진로드를 걷게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폴댄스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긴 휴식에 들어갔고, 여곡절 끝에 다시 폴을 잡은 지 또 3개월이 지났다. 여전히 내 몸에는 새로운 멍이 생겨나고 있고, 새로운 자세를 배울 때면 여전히 무섭다. 그래도 이제는 투 클라임쯤은 가뿐하고, 고통도 공포도 전보다 친숙하다. 공중에서 양손을 다 기도 하고 거꾸로 눕기도 한다. 내 맘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세상에서 나라도 내 말을 들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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