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29주 차
나는 스무 살부터 성심당 덕후였다. 당시에는 성심당이 지금처럼 전국적인 인기를 끌지 않았다.
줄을 서서 들어가지도 않았거니와, 시식 쟁반에 조그맣게 잘린 빵들이 있어서 천천히 먹어 보고 고를 수도 있었다. 지금만큼은 아니더라도 대전 내에서는 유명 빵집이라 늘 손님이 차 있었기 때문에, 금방 금방 비워지는 시식 쟁반에 빵을 잘라 올려주는 직원도 따로 있었다. 그때의 나는 시간 많고 돈 없는 대학생 신분이라, 눈치 안 보고 시식 빵을 먹을 수 있는 성심당이 좋았다.
처음 성심당에 간 날, 생각 없이 시식 빵을 종류별로 집어 먹었는데, 이름만 봐서는 상당히 거부감이 들던 '부추빵'이 너무 맛있어서 여러 조각 집어 먹다가 하나 사 왔던 기억이 난다. 한 개 샀던 부추빵을 빵집 문을 나오는 길에 꿀떡꿀떡 다 먹어버려서, 다시 들어가서 하나 더 샀던 것도 같다. 이후로도 갈 때마다 다양한 빵을 시식했는데, 최애 부추빵만 샀더랬다.
시간이 흘러 흘러 더 이상 대전에 가지 않게 되면서 자연스레 성심당은 머리에서 잊혀졌는데, 어느 순간 서울에서도 성심당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과일시루 케잌이 유명세의 원인이었던가? 아무튼 내 기억 속의 성심당은 시내의 큰 빵집일 뿐인데, 이젠 오픈런으로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한다니 괜히 가봐야겠다는 심리가 부추겨졌다.
그렇게 근 10년 만에 다시 찾은 성심당 부추빵은 여전했다. 부추빵의 소는 얼핏 만두소 같으면서도, 몽글몽글하고 부드러워서 입 안에서 크림 녹듯 사라지는 질감이라, 만두가 아닌 빵에 어울린다. 매끈한 빵과 소가 순식간에 목구멍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추억 속에서 미화된 맛 이상이었다. 가격도 고작 몇 백 원 올라서 여전히 2000원 밖에 안 하니 대전까지 찾아갈 이유가 충분했다.
추억의 맛을 다시 찾은 후로 꽤 자주 대전에 갔다. 오로지 성심당만 갔다 오기도 했고, 다른 지역에 갔다가 (사실상 전혀 인근 지역이 아닌데도 어거지로) 들르기도 했다. 성심당의 인기는 꺾이지 않아서 갈 때마다 대기줄이 길어졌는데, 그만큼 건물과 직원도 늘어나고 회전이 빨라서 줄이 생각보다 금방 줄어드는 편이었다. 줄을 서다 보면 입구에서 임산부 확인을 받고 즉시 입장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느 여름 줄 서던 임산부가 쓰러진 후로 도입된 제도라기에, 언젠가 임신을 하면 다른 건 몰라도 성심당에는 여러 번 오리라 다짐했더랬다.
그런데 막상 지난한 입덧으로 무엇도 못 먹고 무엇도 할 수 없는 시간들을 보내며 임신 후기를 맞이해 버렸다. 이제 입덧은 줄었지만 몸이 무겁고, 위장이 눌려서 소화가 안 되고 식욕이 없다. 조금만 먹어도 식도까지 막히는 불편감이 들고 배가 찢어질 것 같다.
그래도 성심당에 갔다. 한 번은 가야 할 것 같았다. 식욕이 줄어든 탓에 예전처럼 눈이 돌아서 빵을 마구 쓸어 담진 못 했다. 부추빵, 초코튀소, 말차튀소, 애플브리샌드위치. 딱 이렇게만 단출하게 구입했다. 그리고 케잌부티크에서 과일크레페와 롤케잌을 샀다. 엄마 생신 축하를 빙자한 내 욕심 채우기였다. 임산부 프리패스 덕분에 대전역에 내려서 모든 것을 사고 다시 대전역으로 돌아오기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번 성심당도 역시나 성공이다. 추억의 부추빵도, 스테디셀러인 초코튀소와 샌드위치도, 신메뉴 말차튀소도, 커스터드크림이 킥인 안녕크레페도, 오래 두고 얼려 먹을 수 있는 롤케잌도, 모두 만삭 임산부를 춤추게 할 맛이었다.
마지막 월경 시작일로부터 42주를 14주씩 3등분하여 임신 초기(14주까지), 중기(15주부터 28주), 후기(29주 이후)로 구분한다. 월경 시작일부터 2주 가량 후에 정자와 난자의 수정이 일어나고, 그로부터 열 달, 40주 동안 아이를 품는다고 가정하여 42주를 잡는 것이다. 임신 후기로 들어서면 태아와 자궁의 성장 속도가 매우 빨라지기 때문에, 임산부의 폐와 위가 밀려나 숨이 가빠지고 식사하기가 힘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