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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과학쌤 Jul 31. 2021

누구도 못 믿을 세상 속 엄마의 매실청

feat. 알코올 발효

 높아진 태양에 방이 뜨거워질 때쯤 눈을 떴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침대 위에서 보낼 수는 없었다. 게으르게 시작한 만큼 쉬지 않고 달려 춘천의 작은 서재에 도착했다. 아직은 해가 뜨거운 시각이었다. 서재 한 켠의 작은 창을 통해 오후의 햇살이 네모게 바닥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침의 색을 담은 얇은 커튼 자락 옆으로푸른 셀로판 달이 빛났고, 반질반질하게 깎인 나무 책상에 무지개가 어렸다. 하루의 모든 시간들이 한 순간 안에 오밀조밀 들어차 있는 신비한 공간이었다.


 이 따뜻한 공간을 대여해주는 조금 독특한 서재. 정성스레 만든 음료는 덤이다. 직접 청을 담근 것이 틀림없는 오디 에이드에서는 미묘한 과실주의 향이 맴돌았다. 몸에 좋다며 이런저런 요리에 넣어주던 엄마의 매실청이 떠오르는 익숙한 향이었다. 작은 창으로 들어온 빛이 오디 에이드의 얼음을 녹이동안 책이 가득 꽂힌 벽은 여전히 어두웠다. 이대로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책이 쉬이 빛바래지는 않겠다고 조금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늑한 이불장 안에 웅크려 앉아 책을 읽던 어린 날처럼 어두운 책장 앞에 앉아 책을 살폈다. 자연의 시간을 그린 하드 커버의 책 세트에 눈길이 갔다. 필사 노트가 딸린 <가재가 노래하는 곳>. 추리 소설 같은 시작과 끝 속에 습지 생태계에 대한 탐구 보고서, 편견과 차별로 가득 찬 사회에 대한 비판, 그리고 마음을 다독이는 시가 낯설지 않게 버무려져 있었다. 주인공 카야의 시선에서 습지와 바다를 쏘다니고 상처를 어루만지며 성장하는 동안 내내 훌쩍일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습지는 빛의 공간이다. 물속에서 풀이 자라고 물이 하늘로 흐른다. 예측 가능한 올챙이들의 순환고리와 반딧불이의 춤 속으로 돌아온 카야. 누구도 못 믿을 세상에서 자연만큼은 한결같았다.




 누구도 못 믿을 세상 한 구석에서 어린 시절 마음의 공간과 엄마의 매실청 게 하는 조금 이상한 서재. 설탕에 절인 과일청 엄마의 따뜻함 만큼의 정성과 기술이 들어가야 한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술이 되기도 하고, 가스가 차 병이 폭발해버릴 수도 있다. 효모에 의한 발효 현상 때문이다. 평상시의 효모는 산소를 이용하여 포도당을 완전히 분해하지만, 산소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알코올 발효라는 방법으로 포도당을 분해해 이산화 탄소와 에탄올을 생성한다.


 과일청에서 효모의 발효가 일어나는 것을 막고 싶다면 이 작은 미생물이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설탕을 넣으면 된다. 그러나 알코올 발효에 의한 적당한 풍미를 담고 싶다면, 설탕, 효모, 산소 양의 적절한 조화가 이루어져야 하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의 매실청을 닮은 오디 에이드를 만들기까지 숱하게 애썼을 서재지기의 마음이 전해졌다. 뭉근한 환대였다.



한국일보 생명과학 칼럼 리라이팅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072719370003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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