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언변으로 대중을 사로잡던 '칼 세이건'
천문학자 칼 세이건(1934~1996년)이 그의 명저 《코스모스》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핵심이 아닐까요. 1934년 11월 9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시카고대학교에서 천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스스로는 우주생물학자라고 지칭했지만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일에 깊이 관여하게 됩니다. 그래서 행성 탐사계획을 주로 맡았고, 행성과 우주생물에 관련된 천문분야의 전문가가 된 것입니다.
“코스모스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정관(靜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중략) 그러므로 그 울림, 그 느낌, 그 감정이야말로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하게 되는 당연한 반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칼 세이건의 저서 《코스모스》 중에서
세이건이 천문학자로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파이어니어 10호 우주선을 발사했던 때였습니다. 파이어니어 프로젝트는 1958년부터 1979년까지 추진됐던 우주탐사계획입니다. 1972년 발사된 파이어니어 10호는 목성에 13만km까지 접근해 사진을 찍어 지구로 전송하고, 목성의 중력을 이용해 태양계를 탈출한 최초의 우주선이 되었습니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파이어니어 10호가 기억되는 것은 여기에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지구인이 ET(외계생명체)에 보내는 편지’였습니다. 세이건은 우주 어느 곳에 인간과 같은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다면 파이어니어 10호를 발견해 수거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외계생명체가 지구인을 알아볼 수 있도록 선의(善意)의 메시지를 새긴 금으로 된 명판과 지구의 남성•여성의 모습, 태양계 내 지구의 위치를 그려넣은 알루미늄 판을 파이어니어 10호에 실었습니다. 이 그림엽서는 화가이자 그의 첫 부인이었던 린다가 그렸습니다. 하지만 남녀의 모습이 옷을 벗은 모습이었기 때문에 저속하다는 비판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사람이 그려진 그림엽서는 1973년 발사된 파이어니어 11호에도 실었습니다.
파이어니어호가 외계생명체를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많은 사람들은 극히 희박할 것으로 추측하겠지만 세이건은 과감하게 외계인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과학, 꿈, 낭만의 3박자를 갖춘 그의 활동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1977년 보이저 1호와 2호가 발사됐을 때, 그는 매우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앞서 지구의 남성•여성의 모습을 그렸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지구의 소리’를 30cm 크기의 레코드판에 녹음해 우주선에 실었던 것입니다. 보이저 호에 내장된 골든 레코드에는 한국말 “안녕하세요”를 포함해 세계 59개 언어로 된 인사말, 지구의 자연과 문화를 알려 줄 115장의 사진, 그리고 지구인의 소리를 들려 줄 27곡의 음악이 들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의 1악장이 맨 앞에 수록되어 있고,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2권 중 ‘전주곡과 푸가’,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3번 E장조 중 ‘가보트와 론도’,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의 2막 아리아,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중 1악장, 현악사중주곡 13번 Bb장조 중 ‘카바티나’,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중 ‘제물의 춤’ 등 7곡이 포함됐습니다.
지구의 소리로는 화산, 지진, 천둥, 비, 바람, 파도는 물론 귀뚜라미, 개구리, 침팬지, 말, 개, 버스, 기차, 비행기 소리도 들어 있습니다. 또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호주의 원시 음악처럼 여러 나라의 민속 음악이 실려 있습니다.
보이저호는 지구에서 190억 Km쯤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거리는 빛이 18시간 날아간 거리정도 됩니다. 외계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별 가운데 제일 가까운 별이 4만 광년 저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우주의 ‘이웃’이라 하기엔 너무나 먼 곳에 있습니다. 외계인이 보이저 호를 수거해 레코드판에 실린 음악을 듣게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그래도 언젠가 외계인이 보이저 호를 찾아내서 바흐의 이 협주곡을 듣고, 지구라는 푸른 별에 꽤 멋진 이웃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근사할까요.
세이건은 코넬대학교에 근무하던 프랭크 드레이크 교수가 만든 드레이크방정식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드레이크 교수는 1960년대 미국 국립전파천문대의 30m 전파망원경으로 우주와 교신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빛의 속도로 15년쯤 가야 하는 거리에 태양과 똑같은 모습을 한 에타에리다니(εEridani)라는 별 주위에 외계생명체가 사는 행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즈마계획’입니다.
세이건도 처음에는 외계생명체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글을 많이 썼지만 드레이크 교수의 영향을 받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외계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확률적으로 따져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태양계가 속해 있는 우리 은하에는 1,000억 개의 별이 있는데, 이 가운데 10억 개는 태양과 크기, 질량, 온도가 같습니다.
여기서 세이건은 지구와 같이 생명체가 사는 곳은 10억 개의 별들 중 10개 정도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우리 은하 전체에서 외계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확률은 100억분의 1이라는 것입니다. 지구는 앞으로 영원히 살 수 있는 행성이 아닙니다. 태양이 50억년 후면 팽창을 거듭해 지구는 그 속으로 타들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이건은 우리 은하 중 10개의 별에서는 항상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드레이크방정식의 답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론적인 가정을 전제로 한 답일 뿐, 세이건도 확인할 수는 없는 결론입니다.
“만약 과학자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을 일반인과 나누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의 생각이 기괴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과학은 아직도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사랑이다. 당신이 사랑에 빠져있다면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겠는가?”
뛰어난 언변으로 대중을 사로잡던 세이건은 여행을 즐기고 사교를 즐겼던 멋쟁이 과학자였습니다. 그는 늘 푸른색 셔츠가 아니면 터틀 넥의 스웨터에다 황갈색 골덴 상의를 걸치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코넬대학교의 학생들은 그를 ‘엘로우 칼’(노란 옷을 입은 칼 세이건)이라고 불렸습니다. 평소 척수형성부전을 앓던 엘로우 칼은 1996년 폐렴이 겹치면서 숨을 거뒀습니다.
참고문헌
《과학동아》, 1997년 2월호, 과학계의 팔방미인 '옐로우칼', 115~119p.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872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530024004&wlog_tag3=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