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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Nov 15. 2018

말 속에 담겨 있는 식물

우리가 쓰는 말 속에도 식물과 관련되어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칡덩굴과 등덩굴 : 갈등



칡은 한자로 ‘갈(葛)이라고 한다.(by.위키백과), GFDL  (Wikimedia Commons)

어느 숲에 칡과 등이 살고 있었습니다. 칡은 옆에 있는 싸리나무를 감아 올라가고, 등은 아까시나무를 감아 올라가며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해가 길어질수록 칡과 등은 왕성하게 자랐고 자라면 자랄수록 칡은 싸리나무를 등은 아까시나무를 더욱 강하게 조이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살기 힘들어진 싸리나무와 아까시나무는 서로 담합하여 칡과 등을 몰아내기로 했습니다. 싸리나무는 줄기를 매끄럽게 해서 칡이 감지 못하게 하고, 아까시나무는 줄기에 가시를 만들어 등이 찔리게 했습니다.


감고 올라갈 곳을 잃은 칡과 등은 서로 의지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칡과 등이 서로 감고 올라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서로 감고 올라가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허사였습니다. 감고 올라가는 방향이 서로 반대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서로 감아 올라가려면 부딪치고 맙니다.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갈등’이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칡을 뜻하는 한자 갈(葛)과 등나무를 뜻하는 한자 등(藤)이 합쳐진 것입니다.

등나무는 한자로 ‘등(藤)’이라고 한다.(by.clipartkorea / pc003235558)

갈등은 칡과 등처럼 서로의 목표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적대시하거나 화합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소설이나 희곡에서 갈등은 등장인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립과 충돌 또는 등장인물과 환경 사이의 모순과 대립을 가리키는 말로 씁니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정서 생활을 혼란하게 하고 내적 조화를 파괴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갈등상태는 두 개 이상의 상반되는 경향이 거의 동시에 존재하여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즉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갈등이 꼭 나쁘기 만한 걸까요? 화합과 균형만 존재하는 사회가 있을까요? 국가와 국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상사와 부하 사이, 형제자매 또는 동료 사이에 늘 갈등이 존재합니다. 우리 사회는 이런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갈등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 중의 하나기 때문에 피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좀 더 이해하고 나를 한 번 더 생각해보면서 대화를 한다면 갈등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위의 칡과 등 이야기는 물론 지어낸 것입니다. 실제로 칡과 등이 서로 감아 올라가려고 다투는 모습은 본 적이 없습니다. 칡이나 등은 각자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물체를 감아 올라가거나 자기들끼리 얽히고설키며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갈등이 칡과 등에서 유래된 것은 사실입니다.




  

콩과 보리 : 숙맥

콩은 한자로 숙(菽)으로 쓰기도 한다.(by.clipartkorea / yaytg313145)

춘추시대인 기원전 573년, 진나라에서 왕족인 주자(周子)가 임금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주자에게는 형이 있었는데, 주자는 형을 임금이 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그 형이 바보처럼 어리석었습니다. 그래서 주자는 형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느 날, 주자는 형을 앉혀놓고 콩과 보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먼저 콩 하나를 들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자, 형님. 이렇게 동글동글한 걸 콩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형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이건 보리 같은데…”
주자는 그런 형이 답답했지만 콩과 보리를 차이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콩은 동글동글하고 보리는 길쭉하니 구별할 수 있겠지요?”
몇 번이고 설명하자 형이 이제는 알겠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이제는 콩과 보리를 확실히 알겠어. 콩은 동글동글, 보리는 길쭉.”
다음 날 주자는 형에게 창고에 가서 콩을 가져오라고 말했습니다.
바보 같기는 하지만 착한 형은 창고에 가서 자루를 하나 가져왔습니다.
“자, 네가 말한 콩 가져왔어.”형이 자루에서 꺼낸 것은 콩이 아니라 보리였습니다.

보리는 한자로 ‘맥(麥)’이라 한다.(by.clipartkorea / cb045001945)


형을 임금에 앉히려고 했지만 주자도 더 이상 어찌해 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한자로는 ‘숙맥불변(菽麥不辨)’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불변이 생략되어 ‘숙맥’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콩을 뜻하는 한자 숙(菽)과 보리는 뜻하는 한자 맥(麥)이 합쳐진 것입니다. 숙맥은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할 정도 어리숙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 된 것이지요.



  

남새와 푸새


조선 초 학자 성삼문은 단종 복위를 시도하다가 처형당한 사육신 중 한 사람입니다. 성상문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반대하며 지조와 의리를 표현한 여러 편의 시를 지었는데요, 그 중 하나가 ‘수양산 바라보며’입니다.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 하노라.
주려 죽을진들 채미도 하는 것가.
비록애 푸새엣 것인들 긔 뉘 ㅅ다헤 낫다니.

조금 더 쉽게 풀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양산에서 죽은 백이와 숙제를 원망한다.
굶주려 죽을지언정 고사리는 왜 먹었단 말인가.
비록 산나물이지만 주나라 땅에 난 것이 아니겠는가.


새로 바뀐 군주를 섬기지 않겠다고 산속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서 연명한 백이와 숙제였지만, 그 고사리 또한 새로 바뀐 나라의 땅에서 난 나물이라는 것이지요. 이 말을 들은 백이와 숙제 형제는 고사리마저 먹지 않고 굶어죽었다고 합니다.

기르는 채소를 통틀어 남새라고 한다.(by.clipartkorea / mee05876)

성상문의 이 시에 나오는 식물을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채미(采薇)는 ‘고사리(또는 고비)를 캐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푸새’는 산과 들에 저절로 나는 풀인데 나물로 먹을 수 있는 풀을 말합니다. 냉이, 쑥, 달래, 원추리 등을 푸새라고 합니다. 반면 나물로 먹기 위해 밭에 기르는 채소를 통틀어 ‘남새’라고 합니다. 배추, 무, 파, 미나리 등이 남새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쓰는 말 속에도 식물과 관련되어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원이나 유래를 알고 쓴다면 말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적재적소에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자료

위키백과, 칡/ 등나무/ 갈등/ 콩/ 보리/

남새/ 백이와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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