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진짜 전쟁이 아니라 면발전쟁입니다. 라면업계 1위인 농심은 2011년 흰 국물 전쟁에서는 시장을 선점할 타이밍을 놓쳐 고생한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이에 농심은 얼마전 ‘신라면 건면’을 출시하면서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번 전쟁의 관전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WINA)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 평균 라면소비량은 2017년 기준으로 연간 73.7개로 압도적인 세계 1위입니다. 하지만 한국갤럽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 라면을 먹은 적이 있는지에 대한 답변이 2013년 79%에서 2018년 74%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특히 60대 이후에는 49%로 뚝 떨어집니다. 반면 건면시장은 2017년 1178억원 규모에서 2018년 1400억원 규모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건면시장 점유율이 계속 높아질지 지켜볼 일입니다.
국수는 일반적으로 밀을 가공한 음식입니다. 한자로 면(麵)은 밀가루, 국수를 의미합니다. 밀은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이 한정적이어서 동양에서는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 이유로 고려시대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 국수는 양반가와 사찰의 음식으로만 쓰였습니다. 지금도 좋은 날에 국수를 대접하는 풍습이 남아 있습니다. 밀은 탄수화물이 70%, 단백질이 8~12%, 그 외 지방이 소량 들어 있다. 칼로리가 높아 주식으로는 좋지만 필수아미노산 중 리신의 함량이 부족해 쌀 보다 영양가가 떨어집니다.
면은 만드는 방법에 따라 납면, 압면, 절면, 소면, 하분 등으로 나뉩니다. 납면은 국수 반죽을 양쪽으로 당기고 늘려 여러 가닥으로 만드는 국수입니다. 수타면집에 가면 반죽을 치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납면입니다. 반죽에 알칼리성 물질을 넣어 주면 글라이딘의 점성이 증가하여 면이 잘 늘어납니다. 중국의 중화면, 일본의 라면이 대표적입니다. 압면은 구멍이 뚫린 틀에 반죽을 넣어 국수를 밀어내고 끓는 물에 삶아서 만드는 방법의 국수입니다. 끈기가 적은 메밀이나 쌀, 옥수수를 이용한 국수에 사용된다. 삶는 과정에서 호화에 의해 점성이 나타납니다. 우리나라의 냉면, 중국의 당면, 이탈리아의 파스타가 이 방법으로 만듭니다. 절면은 손으로 만든 반죽을 밀대로 밀어 만든 얇은 반죽을 칼로 썰어 만드는 국수입니다. 우리나라의 칼국수, 일본의 우동, 소바가 대표적입니다. 소면은 반죽을 길게 늘려 막대기에 면을 감은 후 가늘게 만든 국수로 우리나라와 일본의 소면, 중국의 선면이 대표적입니다. 쌀국수인 하분은 묽게 반죽한 쌀가루 유액을 얇게 쪄서 부침개같이 만든 후 표면에 기름을 바르고 식혀 칼로 썰어 만듭니다.
국수는 건조 정도에 따라 생면, 건면, 숙면으로 구분합니다. 성형 후 바로 포장하거나 표면만 건조시킨 것을 생면이라고 합니다. 수분이 15% 이하가 되게 건조한 것을 건면이라 하는데 우리나라 소면이나 파스타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익혀 포장한 면을 숙면이라고 합니다.
또 국수는 조리방법에 따라 제물국수와 건진국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물국수는 국수 삶은 물과 함께 먹는 국수를 말합니다. 삶을 때 나온 전분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국물이 걸쭉한 것이 특징입니다. 칼국수가 대표적입니다. 건진국수는 국수를 삶은 후 찬물에 국수를 헹궈낸 국수를 말합니다. 제물국수에 비해 면발이 쫄깃한데, 씻는 과정을 통해서 국수표면의 전분의 점성이 제거되고 풀처럼 끈적거리는 현상(호화과정 : 아래 문단에서 상세 설명)이 억제되기 때문입니다. 냉면, 비빔면, 온면, 콩국수 등이 해당됩니다. 여기에 별도로 만든 국물을 부어 먹거나 양념을 올려 먹습니다.
쌀, 밀에 들어있는 탄수화물인 녹말은 아밀로오스와 아밀로팩틴의 혼합물입니다. 초등학교 때 실험한 아이오딘(요오드)에 반응하는 것이 아밀로오스입니다. 두 성분은 수소결합에 의해 녹말입자를 형성합니다. 여기에 물을 가하고 가열하면 입자구조가 느슨해져 팽윤하고 더 가열하면 이 구조가 파괴되어 콜로이드 용액으로 변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호화과정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풀, 탕수육 국물입니다. 그래서 라면을 오래 두면 불게 되어 식감이 떨어지게 됩니다.
일반 라면은 유탕면입니다. 생면, 숙면, 건면을 유탕처리 한 것입니다. 유탕면은 면을 증기에 찌고 다시 팜유 등으로 튀겨냅니다. 이 과정에서 면에 포함된 수분이 날아가고 그 자리에 지방이 스며들게 됩니다. 따라서 기름에 튀긴 후에는 원래 부피보다 1.5~2배 정도 팽창합니다. 결국 유탕면은 조직이 성기게 되고 면 속에 국물이 스며들게 되어 식감이 부드럽게 됩니다.
반면 건면은 기름 대신 100도 이상의 열풍으로 수분을 날려보냅니다. 따라서 건면은 원래보다 부피가 0.8~0.9배 정도로 줄어듭니다. 또 원료의 혼합과정을 진공상태에서 진행하면 반죽이 더 차지는 효과가 생깁니다. 결국 구조가 단단해져 씹었을 때 쫄깃하고 차지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실제로 새로운 신라면 건면은 손으로 부수기 힘들 정도로 딱딱합니다.
면의 단면을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조직의 치밀도입니다. 유탕면은 조직이 다공질이어서 마치 스폰지 같지만 건면은 구멍이 거의 없고 치밀합니다. 신제품은 유탕처리를 하지 않아 낮아진 칼로리를 마케팅포인트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면이 쫄깃쫄깃한 이유는 반죽에 들어 있는 글루텐 성분 때문입니다. 글루텐은 물에 녹지 않는 불용성 단백질입니다. 알곡 자체에는 들어가 있지 않고 저분자의 글리아딘과 고분자의 글루테닌이 물을 매개로 결합하면서 생기는 단백질입니다.
글리아딘은 당단백의 일종으로 당이 단백질에 붙어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점성이 있습니다. 글루테닌은 분자와 분자가 2황화결합(S-S결합)을 하여 그물망으로 연결한 구조인데 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루테닌의 탄성이 면발의 쫄깃함을 결정짓는 요소입니다. 두 물질이 물로 결합하고 물리적 자극을 주면 글루텐이 형성되는데 이 사이에 탄수화물과 전분이 자리잡게 됩니다.
밀 단백질 중 글루텐의 비중은 80~85% 정도입니다. 그리고 글루텐을 형성하는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의 비중은 반반 정도 됩니다. 글루텐이 그물망 구조를 하기 때문에 밀가루로 국수나 빵과 같은 형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쌀에는 오리제닌이란 단백질이 소량 들어있지만 글루텐은 없습니다. 따라서 글루텐을 첨가하지 않으면 빵이나 국수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메밀도 글루텐을 포함하지 않아 메밀국수는 메밀과 밀가루를 7:3 또는 5:5로 혼합하여 만듭니다.
밀가루는 글루텐이 포함된 단백질의 함량에 따라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으로 나뉩니다. 강력분은 13%, 중력분은 10%, 박력분은 8% 정도입니다. 면은 주로 중력분을 이용하고 강력분은 빵, 박력분은 과자를 만드는데 이용합니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밀은 수입밀입니다. 수입밀은 보통 봄에 심고 가을에 수확하는 봄밀입니다. 따라서 병충해, 더위, 강수량 등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주요 수입국은 미국, 호주입니다. 호주밀은 미국밀에 비해 알파-아밀라아제라는 녹말분해효소가 덜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녹말분자의 길이가 좀 더 길어져 면의 탄력성이 더 있어 탱탱하고 쫄깃쫄깃한 식감을 줍니다. 호주산은 폴리페놀옥시다제라는 변색효소가 적어 미국산보다 색이 밝습니다.
우리밀은 풀과 곤충이 동면에 들어가는 늦가을에 심고 3~4월에 성장하는 가을밀이기 때문에 재배가 쉽습니다. 또한 특별한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자랍니다. 하지만 밀은 껍질이 많아 쉽게 깨지기 때문에 나락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제분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쌀농사가 주인 국내에서는 정미소는 흔해도 제분소는 귀합니다. 반면 서양에서는 풍차나 물레방아 같은 제분시설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글루텐프리 식품이 건강식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밀을 섭취한 후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대략 6%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밀 알레르기, 글루텐 과민증 및 셀리악병 등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골다공증, 관절통, 만성피로, 발육부진, 치매와 정신분열증을 일으킬 수 있는 셀리악병은 완전히 소화되지 못한 글리아딘의 펩타이드가 면역계를 자극하는 것이 원인으로 알려졌습니다. 면역계가 형성되는 생후 1년 전후에 밀가루에 접하면 병에 걸릴 수 있다고 합니다.
2018년에 밀의 게놈지도가 완성됐습니다. 사람의 유전자보다 DNA수가 5배 이상 많아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습니다만 13년만에 해독됐습니다. 밀은 전세계 식량공급의 20%를 차지하는 중요한 곡물입니다. 하지만 성장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연간 강수량 762mm이하의 건조하고 서늘한 지역에서 자랍니다. 2018년에는 주요 밀 재배지에 폭염으로 유래 없는 흉작사태가 벌어졌습니다. 2011년에도 밀 흉작으로 가격이 치솟자 중동지역에 ‘아랍의 봄’ 시위로 이어진 적이 있습니다. 밀의 게놈 지도 완성을 통해 셀리악병 등을 일으키지 않고 폭염에 강한 유전자를 갖는 밀이 탄생할 것을 기대해 봅니다.
밀가루의 전분은 뜨거운 물과 결합하면 점점 부피가 늘어나고 면은 탄성을 잃게 됩니다. 따라서 센불에 열전도가 좋은 냄비를 이용하여 빨리 끓여내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은 전자레인지를 이용한 라면 조리법이 인기입니다. 마이크로파는 오로지 수분에만 반응하므로 용기에 대한 열 손실 없이 면에 스며든 물을 직접 가열합니다. 라면을 먹을 때는 나물이나 김치가 제격인데 밀가루 음식으로 인해 혈당치가 급상승되는 것을 방지해주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더운 밥을 말면 국물이 싱겁게 되고 밥알과 국물이 겉도는 느낌을 줍니다. 오히려 찬밥이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좋기 때문에 밥알에 스며든 국물을 맛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1. 라면으로 요리한 과학, 이령미, 갤리온, 2007.11.
2. 밥상 위에 차려진 역사 한 숟갈, 박현진, 책들의 정원, 2018.9.
3. 사이언스 칵테일, 강석기, 엠아이디, 2015.4.
4. 쫄깃한 면발에 숨은 과학, 과학동아북스, 2013.9.
5. https://news.joins.com/article/1340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