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 동안 움츠려 있던 식물들이 기지개를 켜고 한 해를 시작합니다. 매실나무, 산수유나무, 생강나무,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이 나무들은 잎이 나기 전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화려한 꽃의 모습을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식물은 잎으로 광합성을 해서 양분을 얻어 살아가는데 잎이 나기 전에 어떻게 양분을 얻고 꽃을 피우는 걸까요?
나무나 풀이 꽃을 피우는 이유는 자기 자신의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서입니다. 즉,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열매 속에 씨앗을 만들어 대대손손 자신의 종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꽃을 언제 피우느냐는 식물의 종마다 다양합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 적응해 가장 적절한 시기에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또 식물은 광합성을 해서 영양분을 얻기 때문에 빛이 가장 중요합니다. 따라서 꽃이 피는 시기는 빛의 양이 아주 중요합니다. 3월 21일경은 춘분으로 밤과 낮의 길이가 같습니다. 이때부터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집니다. 9월 23일경은 추분으로 다시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다가 추분이 지나면서 밤의 길이가 점점 길어집니다.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길 때 피우기 때문에 ‘장일식물’이라고 합니다. 가을에 꽃을 피우는 식물은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짧을 때 피우기 때문에 ‘단일식물’이라고 합니다. 밤낮의 길이에 상관없이 꽃을 피우는 식물은 ‘중일식물’이라고 합니다.
식물은 자신이 꽃을 피워야 할 시기를 밤낮의 길이와 기온의 변화를 감지해서 조절합니다. 이것은 잎의 유무와 상관없습니다. 이른 봄부터 꽃을 피우는 대표적인 식물인 매실나무, 산수유나무와 생강나무 등은 잎이 나기도 전에 꽃을 피웁니다. 이 식물들은 지난해 여름부터 꽃눈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잎이 있을 때 왕성하게 광합성 작용을 해서 꽃눈에 영양분을 투입하고 겨울이 오면 성장을 멈춥니다. 그리고 봄이 되어 낮의 길이가 길어지고 기온이 올라가면 일제히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따라서 잎보다 먼저 꽃이 핀다고 하는 것은 꽃을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런 것이고 식물의 입장에서는 꽃눈을 만들고 잎이 지고 꽃이 피고 잎이 나는 순환의 한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누가 먼저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군자 중 하나로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매화는 매실나무의 꽃이며 열매를 매실이라고 부릅니다. 매실나무가 꽃을 피운 뒤 벚나무가 꽃을 피웁니다. 벚나무의 열매는 버찌라고 합니다. 우리가 맛있게 먹는 체리도 이런 버찌를 개량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매실나무의 꽃과 벚나무의 꽃은 너무나 비슷해 언뜻 보아서는 구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둘 다 장미과에 속하기 때문에 꽃잎이 5장이고 색깔도 거의 비슷합니다. 여기서 확실한 구별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먼저 매실나무의 꽃은 색깔이 흰색에 가깝고 꽃자루가 아주 짧습니다. 그래서 꽃이 지고 열매인 매실을 보면 가지와 바싹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벚나무의 꽃은 연한 분홍색이고 꽃자루가 깁니다. 그래서 버찌를 보면 가지에서 긴 꽃자루 끝에 붙어 있습니다. 또한, 꽃잎의 모양을 보면 매실나무는 동그랗지만, 벚나무는 끝이 약간 갈라져 있어 세심하게 보면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벚나무는 가로수나 벚꽃 축제 등에서 자주 보기에 사람들 눈에 익숙하나, 상대적으로 매실나무는 낯설어 매실나무를 벚나무로 잘못 아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제는 벚나무나 매실나무를 보면 꽃잎의 모양과 꽃자루의 길이로 구분해 보세요.
개나리보다 먼저 우리 주변을 노랗게 물들이는 나무 꽃이 있습니다. 바로 산수유나무입니다. 요즘은 아파트 주변이나 건물 주변에 많이 심어 기르기 때문에 산수유 축제에 가지 않아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산수유나무의 열매는 약이나 차로도 많이 쓰기 때문에 일부러 재배하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가까운 산에 올라가보면 산수유나무 꽃과 비슷한 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생강나무가 그 주인공입니다. 생강나무는 줄기와 잎을 긁어 냄새를 맡아보면 생강 냄새가 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산수유나무는 층층나뭇과에 속하고 생강나무는 녹나뭇과에 속해 둘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꽃의 색깔과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에 구별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구별할 수 있습니다. 산수유나무의 꽃은 연한 노란색 꽃들이 한 곳에 모여 피고, 생강나무는 진한 노란색 꽃들이 한 곳에 모여 핍니다
산수유나무 꽃은 꽃자루가 길고 생강나무는 짧아 전체적으로 보면 산수유나무 꽃은 흩어져 보이지만 생강나무의 꽃은 뭉쳐 보입니다. 또한, 산수유나무의 줄기는 불규칙하게 벗겨져서 거칠어 보이지만 생강나무의 줄기는 매끈합니다. 그리고 산수유나무의 열매는 가을에 붉게 익고 생강나무의 열매는 가을에 검은색으로 익기 때문에 사실 구별하기 쉽습니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은 소작인 아들인 나와 마름의 딸인 점순의 순박한 사랑을 해학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은 산기슭의 노란 동백꽃의 향긋한 냄새에 땅이 꺼지는 듯 정신이 아찔해졌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노란 동백꽃이 바로 생강나무의 꽃입니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라고 부르는데 생강나무 꽃의 진한 향기 속에서 둘의 사랑이 맺어지는 장면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봄에 피는 꽃 하면 진달래와 철쭉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진달래는 집 주변의 산이나 등산로 주변 어디에서나 분홍색 꽃을 피우므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철쭉은 진달래보다 한 달 정도 늦게 피고 철쭉이 만발하면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요즘 철쭉은 아파트 주변에도 많이 심어 기르기 때문에 산에 가지 않더라고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진달래는 잎이 나오기 전에 일제히 분홍색 꽃을 피우기 때문에 벚나무와 함께 온산을 붉게 물들입니다. 진달래의 꽃은 바로 먹을 수도 있고 화전을 부쳐 먹거나 술을 담글 때 넣기도 합니다. 하지만 철쭉의 꽃은 독이 있으므로 먹으면 안 됩니다. 철쭉은 보통 잎이 난 후에 꽃이 피고 종류에 따라 꽃잎이나 꽃받침에 끈끈한 점액이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진달래는 먹을 수 있어 ‘참꽃’이라고 부르고 철쭉은 먹을 수 없어 ‘개꽃’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진달래나 철쭉 중에는 흰색 꽃이 피는 종류도 있습니다.
앞서 식물은 밤낮의 길이와 기온 변화를 감지해 꽃 피우는 시기를 조절한다고 했습니다. 봄이 와서 낮의 길이가 길어지고 있음을 감지하고 잎이 나기 전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겨울에도 며칠 동안 날씨가 따뜻해지면 개나리가 꽃을 피우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개나리뿐만 아니라 진달래도 그렇습니다. 아직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길지는 않지만, 그 시간 차이가 점점 줄어들고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착각한 개나리나 진달래가 섣불리 꽃을 피운 것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면 이런 꽃들은 바로 시들거나 죽어버립니다. 꽃이 필 시기를 잠깐 헷갈린 것이지요. 이런 개나리를 흔히 ‘미친 개나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파트 주변이나 공원 울타리로 심어 기르는 명자나무도 꽃 피우는 시기를 잘 착각하는 나무 중 하나입니다. 봄이 왔음을 잘못 감지하고 꽃을 피웠다가 눈을 맞기도 하고 꽃샘추위에 혼이 나기도 합니다.
필자의 집에는 베란다에 영산홍 한 그루가 있는데 햇볕이 잘 들기 때문에 겨우내 피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실내에 있고 햇볕이 잘 들어 기온이 많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꽃 피는 시기를 착각한 것입니다. 착각하게 해서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겨울에도 붉게 만발한 철쭉이 있어 고마운 마음이 먼저 듭니다.
참고 자료
『신비한 식물의 세계』, 이성규, 대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