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하고 달콤한 라일락 향기로 가득한 5월은 의외로 우울증의 달입니다. 우울증의 극단적인 증상은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것입니다. 통계청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2015년~2017년 월별 자살률은 11월~2월 겨울 동안 줄어들다가 3월~5월 봄 동안 전체의 27.6%로 늘어났습니다. 월별로는 5월에 가장 높은 수치를 보입니다. 여러 자살 관련 통계를 보면 우울증 환자의 약 20%가 자살을 시도한다고 합니다.
기온이 오르고 꽃이 피는 계절에 왜 우울증이 증가할까요? 추운 겨울 날씨에 맞춰있던 우리 몸이 따뜻한 봄에 적응하지 못하고 호르몬 균형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지구 온난화로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여름이 찾아오고 겨울로 들어서는 등 몸이 미쳐 적응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도 호르몬 균형이 깨지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기후 변화와 자살률 간의 관계가 2018년 7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기후 변화’에 발표된 바 있습니다. 논문에서 마셜 버크(Marshall Burke)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미국과 멕시코에서 예년과 달리 기온이 높았던 시기에 자살률도 오르는 경향을 보였다고 보고했습니다. 저자는 미국과 멕시코의 수십 년에 걸쳐 수집된 기온과 자살률에 대한 통계를 비교 분석하였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월 평균 기온이 섭씨 1도 올라갈 때마다 자살률이 0.68%, 같은 조건에서 멕시코는 2.1% 높아졌다고 합니다. 지구 온난화가 자살률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울증에는 심리적인 요인도 함께 작용합니다. 봄에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진학, 취업 등의 결과가 알려지는 시기입니다. TV나 SNS에 꽃구경하는 즐거운 사람들의 모습이 자주 나옵니다. 화려하고 가벼운 옷차림은 더욱 밝고 행복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나와 달리 행복해 보이는 타인의 모습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우울증을 증가시키게 됩니다. 계절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우울증을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계절의 변화는 신체 리듬의 불균형을 야기합니다. 여기에 작용하는 호르몬 중에서 중요한 것이 세로토닌과 멜라토닌입니다.
세로토닌은 상쾌하고 평온한 기분을 만드는 호르몬입니다. 집중력과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진통 효과도 있습니다. 그래서 긍정의 호르몬이라고 합니다. 우리 몸이 햇볕을 쬐면 비타민D가 만들어져 뇌 속의 세로토닌 분비가 활성화됩니다. 세로토닌이 많이 분비되면 심리적 안정에 도움을 주고 즐거움을 주는 호르몬인 엔도르핀,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 스트레스 저항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생성이 촉진됩니다.
멜라토닌은 하루 주기의 생체리듬을 담당합니다. 수면의 호르몬이라고 합니다. 새벽 1시~5시 사이에 많이 분비되어 수면 욕구를 발생시킵니다. 점점 길어지는 일조시간은 멜라토닌의 분비량을 서서히 감소시키게 됩니다.
하루 중 낮에는 세로토닌이, 밤에는 멜라토닌이 주로 분비됩니다. 그리고 어둡고 햇볕이 적은 날씨에는 세로토닌의 분비가 적어지고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의 분비가 활성화되어 나른하고 졸리게 되고 우울감이 심하게 됩니다. 겨울철 일조량이 부족한 북유럽에 우울증이 많은 이유입니다.
지구 공전에 따라 계절이 변하면 기온과 일조량이 변하게 됩니다. 봄이 되면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호르몬의 작용으로 우리 몸은 마치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변화됩니다. 자연스러운 환경에서는 호르몬의 변화가 원만하게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도시 생활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둔감해질 수 있습니다. 주로 실내 생활을 하고 추운 겨울 동안 야외 활동을 피하던 삶의 관성이 계절 변화를 못 쫓아가는 것입니다.
흔히 봄을 탄다고 합니다.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진정되지 않으며 어디론가 놀러 가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신체적으로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나른해져 졸음이 몰려오곤 합니다. 또한, 무기력감, 식욕저하와 체중감소가 나타납니다. 감정 기복이 심해질 수 있고 우울감이 증가하기도 합니다. 가벼운 산책 등으로 햇볕을 많이 쬐고 적당량의 운동으로 몸에 자극을 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되도록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혼자 있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지금 침실의 환경을 살펴보세요. 멜라토닌에는 침대와 이불 그리고 어둠이 가장 필요합니다. 스탠드, 형광등, 핸드폰 등은 멜라토닌에게 혼동을 줍니다. 밤인 줄 알았는데 아직 밤이 아닌가 보다 하고 밤이 될 때를 기다립니다. 따라서 인공조명과 소음을 차단하고 습관적으로 잠을 잘 수 있도록 환경을 구성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건강한 사람에게 계절성 우울증은 감기처럼 가볍게 지나갈 수 있습니다. 운동이나 제철 음식, 생활 패턴의 변화만을 통해서도 치료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주 이상 같은 증상이 계속되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자연 호전되지 않거나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반드시 전문가의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우울증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단계는 나의 우울증이 병인지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던 윈스턴 처칠은 ‘우울증은 산책하다 골목길에서 갑자기 마주치는 검은 개와 같다’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는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를 만큼 위험한 질병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배부른 나라의 우울한 사람들, 기타다 다다미 저, 웅진지식하우스, 2016.8.
우울할 땐 뇌과학, 앨릭스 코브 저, 심심, 2018.3.
Marshall Burke. (2018). Higher temperatures increase suicide rates in the United States and Mexico. Nature Climate Changevolume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