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SARS, 중증급성호홉기증후군),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그리고 2019년 12월에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견된 신종코로나바이러스(2019-nCoV)는 모두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종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보다는 동물에게 영향이 큰 병원체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에게는 가벼운 호흡기와 소화기 감염을 일으키는 정도지만, 사스나 메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처럼 간혹 종을 뛰어넘는 변종들이 출현하여 인간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2020년 2월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진자가 급속하게 증가함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가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과학자들도 검사법과 백신 및 치료제를 개발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지요. 그러나 백신과 치료제의 경우 임상시험까지 오랜 시간과 큰 비용이 요구되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는 바이러스의 전파를 줄여 감염을 예방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방에는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요? 답은 의외로 주변에서 자주 접하는 구리(Copper, Cu)에서 찾을 수 있어요. 구리는 바이러스의 전파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금속으로, 병원이나 공공장소에 활용하면 전염성 감염의 예방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라는 이름은 왕관을 뜻하는 라틴어 코로나(corona)에서 유래했습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구리의 ‘항미생물성’을 활용해왔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식수를 살균하고 상처를 소독하는 데 구리를 사용했습니다. 서양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정맥류에 의한 다리궤양에 구리를 쓰라고 권장했지요. 이집트인과 그리스인뿐만 아니라 로마인, 아스텍인, 페르시아인들도 공중보건과 치료를 위해 구리를 이용했습니다.
- 고대 이집트의 의학 서적으로, 부상의 진단, 치료 및 예후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에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식수 살균과 상처 소독에 구리를 사용했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구리는 사람을 포함하여 다양한 생명체에게 필수적인 원소입니다. 다른 여러 효소, 단백질과 결합하여 전자전달 및 산화 환원 등의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그러나 10μM* 이상의 구리는 호기성 세균에 독성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미량의 금속이온이 미생물의 대사 작용을 교란해 죽이는 현상을 미량동작용(oligodynamic action)이라고 불러요. 미량동작용은 구리를 비롯하여 금, 은, 백금, 알루미늄, 수은, 니켈, 납, 코발트, 아연 등에서도 나타납니다. 이 중에서 구리와 은은 특히 살균 효과가 빠르고 인체에 무해하여 실생활에 널리 사용되고 있지요.
참고: 몰농도(M)는 용액 1리터 속에 녹아있는 용질의 양을 몰로 나타낸 것(mol/L)을 말합니다. μM는 마이크로몰라(micromolar)로 10^-6 mol/L을 의미합니다.
메티실린내성황색포도상구균(MRSA)과 같은 슈퍼박테리아들은 스테인리스스틸이나 플라스틱처럼 딱딱한 표면에서 몇 주~몇 개월까지 생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리 표면에서는 전혀 맥을 추지 못해요. 영국 사우스햄튼 대학교 연구팀은 1,000만 개의 MRSA를 각각 스테인리스스틸과 구리 표면에 올려두는 실험을 했습니다. 2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구리 표면의 병원균이 죽기 시작해서 10분 이내 박멸됐지만, 스테인리스스틸에서는 병원균의 개체 수에 거의 변화가 없었지요. 순수한 구리가 가장 살균능력이 좋지만, 55~70%의 구리를 포함하는 합금도 박테리아와 미생물을 제거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2008년에 미국 환경보건국(US EPA)은 약 300개의 구리 합금을 공중 보건에 유용한 항미생물 물질로 등록했습니다.
구리는 여러 작용을 통해 세포의 생리적 활동을 중단시킬 수 있습니다. 구리가 박테리아를 죽이는 과정을 예로 설명해 드릴게요. 1) 박테리아는 구리 표면에 있는 구리 이온을 필수 영양소로 인식해서 세포 안으로 흡수합니다. 2) 흡수된 구리 이온이 세포막에 구멍을 내어, 세포는 중요한 영양분과 수분을 잃게 됩니다. 3) 게다가 구리 이온은 세포막에 난 구멍을 통해 활성 산소를 끌어당기지요. 4) 박테리아는 결국 호흡과 대사 작용에 심각한 방해를 받고, DNA까지도 손상을 입어 완전히 사멸하게 됩니다.
출처: Grass, G., Rensing, C. & Solioz, M. (2011). Metallic Copper as an Antimicrobial Surface.
American Society for Microbiology Journals, https://doi.org/10.1128/AEM.02766-10under a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구리는 박테리아뿐만 아니라 바이러스도 잘 잡습니다. 독감을 유발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나 에이즈의 원인인 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겨울철 식중독을 일으키는 노로바이러스, 인간 코로나바이러스(human coronavirus 229E)에 대한 구리의 항바이러스 효과가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지요. 앞서 언급한 사우스햄튼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인간 코로나바이러스는 플라스틱, 세라믹 타일, 유리, 스테인리스스틸과 같은 표면에서 최소 5일 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리 표면에서는 몇 분 안에 비활성화되기 시작하여 급속하게 사멸합니다. 구리가 바이러스의 몸체 구조와 유전체를 모두 파괴해버리기 때문에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지요. 연구진은 구리와 구리합금이 메르스나 사스 같은 호흡기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는데 유효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전염병이 유행하면 직접 접촉에 의한 감염을 막는 것만큼이나 교차오염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차오염이란 오염된 물질의 미생물이나 바이러스가 접촉에 의해 비오염물질로 옮겨가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입을 손으로 막고 기침을 한다면, 이 오염된 손은 최소 7개의 다른 표면들에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습니다. 교차 오염된 물체의 표면에서 바이러스는 며칠 동안이나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어요. 이런 교차 오염은 의외로 병원에서도 많이 일어나며, 세계적으로 연간 7백만 명이 의료 관련 감염에 의해 사망합니다.
병원의 문손잡이, 조명 스위치, 침대 레일, 수도꼭지 등을 구리로 교체하면 최소한 병원 안에서 일어나는 교차오염에 의한 감염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영국 버밍엄의 셀리 오크 병원에서는 스테인리스스틸로 된 시설물을 구리로 바꾸어 유해 세균을 90% 이상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 효과는 수개월 동안 지속되었지요. 그러나 구리는 비싸고 쉽게 산화되는 단점을 가지고 있어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모든 제품을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여 항균 구리의 사용을 앞당기는 것이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이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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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Gregor Grass, Christopher Rensing, Marc Solioz, Metallic Copper as an Antimicrobial Surface, APPLIED AND ENVIRONMENTAL MICROBIOLOGY, (2011) 1541–1547
[6] Using copper to prevent the spread of respiratory viruses,
https://www.southampton.ac.uk/biosci/news/2015/11/10-using-copper-to-prevent-the-spread-of-respiritory-viruses.page
[이미지 참조]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2019-nCoV-CDC-23312.png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dwin_Smith_Papyrus_v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