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년 2월 12일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뒤바꾼 과학자가 태어났습니다. 바로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1809~1882년)입니다. 그는 진화론을 정면으로 내세운 《종의 기원》이란 책을 펴냈습니다. 이 책은 “모든 생물은 신이 창조했다”고 믿던 당시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습니다. 곧이어 학계와 종교계 사이에 논쟁이 붙었습니다.
1860년 6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열린 ‘진보과학을 위한 학술토론회’에서 진화론이 성경의 내용과 모순된다고 생각한 옥스퍼드 성공회 사무엘 월버포스 주교가 조롱하듯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이 주장하는 할아버지의 선조가 원숭이요? 아니면 할머니의 선조가 원숭이요?”
많은 청중이 월버포스 주교의 발언에 박수를 치며 환호했습니다. 이에 대해 다윈의 지지자였던 토마스 헉슬리가 답변했습니다.
“만일 내 할아버지가 보잘것없는 유인원이냐 아니면 막강한 재력과 영향력으로 여기 계신 교직원들을 고용해 엄숙한 과학적 토론장에서 조롱이나 일삼는 분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유인원이라고 대답하고 싶군요.”
열띤 토론이 오갔지만, 신학자들은 과학적인 논거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헨리 매닝 추기경은 “진화론은 무지막지한 철학이다. 그 논리라면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유인원은 우리의 아담이다”고 말했습니다. 또 “신에 대한 모든 믿음을 앗아가려고 한다”, “신자들이 성경을 불신하도록 유도한다”, “인류의 독보적인 위치를 파괴한다”는 식의 비난이 이어졌습니다.
만일 위의 주장들이 사실이고 종교적인 우려가 합당하다면 당시 신앙심이 깊었던 유럽에서 어떻게 진화론이 나올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듭니다.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종교계의 반발은 거셌지만 그리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진화론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과학이론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초기 미국의 15개 주에서 진화론 수업을 법적으로 금지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1925년 테네시주의 존 스코프스라는 생물교사가 진화론을 가르쳤고, 기독교인들이 그를 고소하면서 ‘진화론 vs 창조론’은 법정 다툼을 시작합니다. 판결이 있기 넉 달 전인 3월 13일 미국 테네시 주의회는 세계기독교 근본주의협회의 주 지부회장 존 버틀러가 발의한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안은 공립학교가 성경에 반하는 진화론을 가르쳐선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법안이 시행된 지 두 달가량 지나 스코프스가 버틀러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것입니다.
검찰은 윌슨 행정부의 국무장관을 지내고 세 차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을 주축으로 진용을 꾸렸고, 스코프스는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의 클래런스 대로가 변호를 맡았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취재진이 몰려들었고, 재판은 라디오 방송으로 중계되며 기독교 근본주의와 과학자 사이의 ‘공개 토론’으로 바뀌었습니다. 한쪽은 신앙을 앞세우고 한쪽은 논리로 조목조목 따졌습니다.
“어떤 이론이나 과학적 견해가 어떤 종교적 사상과 상충한다고 해서 국가가 그것을 금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그런 권리가 있다면 대부분의 천문학과 지질학도 금지조치를 당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지구가 6일 동안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토론의 결과는 스코프스의 승리로 예견됐습니다. 언론은 근본주의 세력을 비웃으며 이 재판을 ‘원숭이 재판’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7월 21일 법원은 스코프스에게 버틀러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벌금 100달러의 유죄판결을 내립니다. 스코프스가 명시된 법을 어긴 것이므로 벌금형을 받은 것입니다. 그로부터 42년이 지난 1967년 5월 18일 버틀러법은 폐지됩니다.
테네시주의 판결 이후에도 진화론과 반진화론 운동은 대결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2005년 미국 캔자스주에서는 ‘지적설계론’ Intelligence Design*을 공립학교 교과과정으로 승인해 파문이 일기도 했습니다. 미국 개신교계의 지지를 받은 일부 학자들은 창조론을 지지하기 위해 초중등 교과서에서 진화론 내용을 삭제하기 위한 운동을 개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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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설계론: 자연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해 다윈의 진화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많아 지적(知的)인 창조자가 개입, 설계한 것이라는 이론.
캔자스뿐 아니라 미시간, 미네소타, 워싱턴, 하와이, 루이지애나, 위스콘신과 텍사스에 이르는 여러 지방 교육위원회에서 논쟁이 있었습니다. 진화론이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지만 않았더라면 캔자스뿐 아니라 많은 주에서 논쟁을 일으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참고로 1982년에 아칸소주 법원에서 윌리엄 오버턴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자연과학에 대한 정의를 다섯 가지로 간추렸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각계 전문가에게 자연과학의 본질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일부 과학자들을 법정에 세워 증언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신중한 과정을 거쳐 판결문을 완성했습니다.
먼저 그는 자연과학은 “자연법칙에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법규나 종교적인 강령이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자연의 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모든 것을 자연법칙에 따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실제 세계에서 검증 가능해야 한다”. 넷째, “연구 결과는 언제나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언제나 더 탁월한 실험법이나 해석이 나오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다섯째,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학설이나 믿음을 반증을 통해 뒤집을 수 있어야 과학이론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과학은 가장 민주적인 인간 활동입니다. 굳이 대학에서 이공계 학문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합리적인 가설설정과 실험을 통해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기존의 질서를 부술 수 있으면 과학자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창조론과 진화론으로 계속 논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기존 이론의 권위에 계속 도전할 수 있는 다양한 이론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참고문헌>
박진희, 2004년 11월호, 원숭이 재판 불붙게 한 다윈의 진화론, 《과학동아》, pp.166-167
먼로 스트릭버거 지음, 김창배 외 옮김, 2004, 《진화학》(월드사이언스), pp.54-69
콜린 벨크, 버지니아 보덴 지음, 김재근 외 옮김, 2007, 《생활 속의 생명과학 - 제2판》(바이오사이언스(주)), pp.225-226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507201280621314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20/2015072003495.html
[이미지 참조]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ortret_van_Charles_Darwin_Charles_Robert_Darwin_(titel_op_object),_RP-F-2001-7-235C-36.jpg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harles_Robert_Darwin,_as_an_ape,_holds_a_mirror_up_to_another._Wellcome_V0001472.jpg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ennessee_v._John_T._Scopes_Trial-_Outdoor_proceedings_on_July_20,_1925,_showing_William_Jennings_Bryan_and_Clarence_Darrow._(2_of_4_photos)_(289824310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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