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SF 영화를 보면 우주선에서 빨간 레이저 광선이 나와 적함을 폭파하는 장면이 꽤 많았습니다. 레이저가 위에서 아래로 훑고 지나가면 커다란 우주선이 반으로 쩍 갈라지면서 폭파되곤 했습니다.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는, 그러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으로 그려냈지요.
하지만 지금 레이저는 우리 일상 곳곳에서 사용하는 친숙한 물건이 되었습니다. 강연이나 각종 발표 시 사용하는 레이저 포인터나, 야간 레이저 공연 등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레이저 사용의 예입니다.
레이저는 단색입니다. 그것도 아주 선명한 단색입니다. 왜 그럴까요? 레이저의 기본 원리가 ‘결맞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결맞음은 파동이 간섭현상을 보이게 하는 성질을 말합니다.
두 파동이 만날 때 서로 반대 방향으로 진동하면 진폭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상쇄간섭이 일어나고 같은 방향으로 진동하면 진동의 폭이 커지는 보강간섭이 일어납니다. 두 파동의 파장이 다르면 이런 간섭현상이 대단히 불규칙하게 나타나지만, 파장이 같은 두 파동이 만나면 간섭현상에 의해 진폭이 아예 사라지거나, 보강간섭에 의해 두 배로 커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루는 악기의 울림통이 바로 이런 결맞음을 이용하여 소리를 키우지요. 빛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같은 파장의 빛끼리 보강간섭을 하면 진폭이 커집니다. 아주 밝아지는 것이지요.
빛에서 파장은 색을 의미합니다. 즉 파장이 같다는 것은 같은 색의 빛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결맞음을 통해 같은 파장의 빛을 모아서 증폭시킨 레이저는 하나의 색만을 띠게 됩니다.
레이저의 구성을 간단히 살펴보면, 우선 그림처럼 긴 원통에 레이저 빛을 만들 매질을 넣어줍니다. 그리고 양쪽 끝에 거울을 설치합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매질에 에너지를 넣어줍니다. 매질을 이루는 물질이 에너지를 받아 들뜬 상태(에너지 수준이 높아 불안정한 상태)가 됩니다.
들뜬 상태의 매질은 곧 다시 에너지를 빛의 형태로 내놓고 안정된 상태로 내려갑니다. 이때 내놓은 빛은 여러 방향으로 뻗어 나갑니다. 이를 ‘자연 방출’이라 합니다. 그중 양쪽 거울을 향한 빛만 반사되어 다시 매질을 향합니다.
매질은 빛을 내놓고 다시 안정된 상태가 되지만 외부에서 계속 에너지가 주입하여 들뜬 상태를 유지합니다. 들뜬 상태의 전자에 거울에 반사된 빛이 부딪치게 되면 매질은 다시 빛의 형태로 에너지를 내놓습니다. 이를 ‘유도 방출’이라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보어의 가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자연 방출 외에 유도 방출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지요.
여기에 중요한 두 가지 현상이 있습니다.
먼저 들뜬 상태의 매질에 특정한 파장의 빛이 충돌하면 매질은 똑같은 파장의 빛을 내놓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 결과, 애초에 외부에서 매질에 충돌했던 빛과 매질이 내놓은 빛이 존재하여, 빛의 개수는 두 개가 됩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빛이 각각 매질의 다른 전자에 부딪히면서 동일한 현상이 일어나 빛은 네 개가 되고, 네 개의 빛은 다시 다른 전자에 부딪히면서 8개의 빛이 되는 식으로 빛의 개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두 번째로 처음에 거울에 반사된 빛은 여러 파장이 섞여 있습니다만, 그중 매질이 흡수해서 같은 파장의 빛을 낼 수 있는 건 동일한 파장의 빛뿐입니다. 그래서 매질을 무엇으로 쓰느냐에 따라 레이저의 색깔이 달리 정해지는 것이지요.
이렇게 늘어난 빛들은 여러 방향으로 전개되는데 그 중 거울에 의해 반사된 빛들만 모여 한쪽 거울의 틈새로 나가게 되면 우리가 보아온 레이저가 되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 한 가지 제약사항이 있습니다. 에너지를 받은 매질이 들뜬 상태가 되었다가 바로 빛을 내놓고 내려가 버리면 반사된 빛이 와서 부딪쳐도 소용이 없겠지요. 그래서 들뜬 상태를 유지하는 특별한 경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들뜬 상태가 바닥 상태보다 비율적으로 많은 것을 ‘점유자수 역전’이라고 합니다.
이를 위해선 들뜬 상태와 바닥 상태 말고 다른 상태가 더 필요합니다. 위의 그림처럼 바닥 상태에 있던 물질이 에너지를 받아 들뜬 상태 B가 된다고 가정합시다. 이 B 상태에서 내려갈 방법은 바로 바닥 상태로 가는 것과 들뜬 상태 A를 거쳤다가 가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들뜬 상태 B에서 ‘자발적으로’ 바닥 상태로 가는 것이 양자역학적으로 거의 0에 가까워서 물질들은 모두 들뜬 상태 A에 머물 확률이 높아집니다.
들뜬 상태 A에 위치할 때, 들뜬 상태 A와 바닥 상태 사이의 에너지 값에 해당하는 파장의 빛이 와서 부딪치면 들뜬 상태 A의 물질은 동일한 파장의 빛을 내면서 다시 바닥 상태로 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물질들은 정해진 파장의 빛만 받아들이고 또 내놓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처음 밝힌 것은 양자역학의 아버지 닐스 보어입니다.
닐스 보어는 전자가 원자 주변을 돌 때 정해진 몇 가지 궤도만 돌지, 아무 궤도나 돌진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지요. 제일 안쪽 궤도를 돌 때가 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인 바닥 상태이고 나머지 궤도들은 들뜬 상태가 됩니다. 제일 안쪽 궤도를 도는 전자는 더 에너지를 내놓을 수 없어서 원래의 궤도대로 계속 돌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전자가 받을 수 있는 에너지나 내놓을 수 있는 에너지는 궤도 간에 전자가 보유 가능한 에너지의 차이만큼이 됩니다. 보어의 이론은 수소 원자를 가지고 행한 실험에서 정확히 관측 결과와 들어맞습니다.
그런데 바닥 상태와 들뜬 상태들이 원자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원자들이 결합한 화합물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르다는 것이 계속된 연구를 통해서 확인됩니다. 그래서 각각의 물질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빛을 내놓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레이저는 장치의 매질을 무엇으로 쓰는가에 따라서 정해진 한 가지 색만이 나오게 됩니다. 아주 선명한 색을 지니는 이유지요.
보어 원자 모델 원리로 만들어진 레이저는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는데, 그중 하나가 자율주행 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라이다 LIDAR 입니다. 라이다는 Light Detection And Ranging (빛 탐지 및 범위 측정)의 준말로 레이저를 이용해 주변을 탐색하는 장치입니다. 라이다에 쓰이는 레이저는 펄스 레이저입니다. 일반적인 레이저가 빛을 지속해서 방출하는 것과는 달리 펄스 레이저는 시간을 두고 단발적으로 쏘아진다는 점이 다릅니다. 최근 테스트용으로 사용되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살펴보면 라이다는 차 지붕 위에 놓여 360도로 빙글빙글 돌면서 주변에 펄스 레이저를 단속적으로 쏩니다. 주변의 물체에 맞고 다시 돌아오는 시간과 강도를 측정해 주변의 지형을 읽어냅니다. 이를 통해서 차량 주변의 3차원 입체 지도를 즉시 확보하는 것이지요. 레이저를 이용하여 아주 정밀하게 측정하기 때문에 물체의 위치뿐만 아니라 어떤 물체인지 식별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사람 대신 인공지능이 운전하는 자율주행차로선 주변의 물체가 차량인지 사람인지 아니면 다른 시설물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인 정보가 되니 자율주행 자동차의 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싼 점이 걸림돌입니다. 일부에서는 특히 중요한 전방만 레이저를 사용하고 옆과 뒤는 카메라나 레이더를 다는 식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연구를 하기도 합니다.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최초로 레이저의 원리를 밝힌 후 SF에서 상상만 하던 레이저는 이제 우리 생활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고 그 쓰임새가 점점 넓어지는 중입니다.
[이미지 참조]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aser_Towards_Milky_Ways_Centre.jpg#/media/파일:Laser_Towards_Milky_Ways_Centre.jpg
https://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Lasers.jpeg#/media/파일:Lasers.jpeg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aser.svg#/media/파일:Laser.svg
https://en.wikipedia.org/wiki/Laser#/media/File:Laser_DSC09088.JPG
https://en.wikipedia.org/wiki/Laser#/media/File:Helium_neon_laser_spectrum.svg
https://en.wikipedia.org/wiki/Lidar#/media/File:Cruise_Automation_Bolt_EV_third_generation_in_San_Francisco.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