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지문이나 손바닥, 발바닥의 무늬가 제각기 다릅니다. 이 때문에 옛날부터 인류는 각기 다른 사람의 지문을 신원 확인 용도로 쓰곤 했습니다. 수백 년 전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들은 자신의 작품에 엄지손가락으로 서명을 했습니다. 또 조선왕조실록 1453년 기록에는 “처음 사간원에 알릴 때는 손수 이름을 적어두도록 했고, 사헌부에 억울함을 알릴 때는 그의 아내에게 손의 지문을 남기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문감식이 도입되기 전까지 경찰은 범죄자들의 행방을 추적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특히 초범이 아닌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무거운 형량을 내리기 위해서 그들의 신원을 알아내야 했습니다. 이에 1820~30년대 경찰은 범죄자의 사진을 찍는 방법을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외모는 시간이 지날수록 변했고, 놀랍도록 닮은 사람도 있어 사진만으론 한계가 있었습니다. 또 수염을 기르거나 안경을 쓰고, 머리를 길러 용의자에서 제외되는 범죄자도 생겼습니다.
1902년 10월 프랑스 파리경찰청 신원감식부 반장이었던 알퐁스 베르티옹(1853~1914년)은 더욱 정교한 방법을 수사에 도입했습니다. 베르티옹은 과학자 집안 출신이었고, 그의 할아버지는 평소 “세상에 똑같은 신체 치수를 지닌 사람은 없다”라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베르티옹이 죄수의 키, 팔꿈치에서 중지까지의 길이, 머리둘레, 귀 길이 등 11가지 신체 부위를 측정하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그는 범인의 신체적 특징으로 범인을 식별하는 소위 ‘베르티옹 시스템’을 고안한데 이어, 의사이자 고고학자였던 프랑시스 갈턴의 지문식별 방법을 포함시켰습니다. 베르티옹은 일명 머그샷으로 불리는 범죄자 사진촬영의 발명자이기도 합니다. 범죄자의 신체적 특징에 대한 기록을 표준화하는데 베르티옹의 기여가 컸지만 아쉽게도 그는 지문보다는 신체 치수를 신뢰했다고 합니다.
1880년 영국의 선교사 헨리 폴즈는 ‘손의 피부주름에 관하여 On the skin-furrows of the Hand’ 라는 제목으로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환자를 돌보던 중 우연히 일본을 찾은 에드워드 모스라는 미국 고고학자의 강연을 듣고, 그와 함께 바닷가에서 조개무덤을 발견해 발굴을 시작했는데요. 조개무덤에서 나온 토기조각을 살펴보다 표면에 미세한 선들이 그어져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한참을 들여다본 폴즈는 그 선들이 바로 토기를 만든 도공들의 지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얼마 뒤 병원에서 도난사고가 일어났는데, 그는 실험용 비커에서 지문을 발견했습니다. 이어 병원 직원들의 지문을 대조해서 그가 가르치던 한 학생을 범인으로 지목해 자백까지 받아냅니다.
폴즈는 지문이 범인을 잡는데 유익할 뿐 아니라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지문이 정말 사람마다 다른지, 한 사람의 지문이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칼이나 사포로 손가락의 지문을 없앤 뒤 새로 돋아나는 지문의 융선 자리를 확인하자 이전과 똑같이 자라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인간에게 지문은 왜 있는 것일까요? 폴즈는 논문에서 “원숭이의 손가락 끝을 보고 사람과 매우 비슷한 것을 바로 알았다”고 썼습니다. 지문은 사람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며, 다른 동물들도 지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인류학자 니나 야블론스키 교수는 2006년 펴낸 《피부 Skin》라는 저서에서 “손가락과 발가락 끝의 지문은 나무를 잘 타기 위해 진화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피부표면의 미세한 굴곡이 나무를 잡을 때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한다는 뜻입니다.
2009년 3월 13일자 《사이언스》에는 지문의 기능을 달리 해석하는 논문이 실렸습니다. 프랑스 고등사범학교 연구팀은 지문이 미끄럼 방지 기능보다 촉각을 예민하게 만들기 위해 구조화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연구팀은 촉각을 느끼는 신경센서를 만든 뒤 하나는 표면이 매끄러운 재질로 감싸고, 다른 하나는 손가락 끝 피부처럼 미세한 요철이 있는 재질로 감쌌습니다. 그 뒤 유리 표면을 훑게 했을 때 전달되는 신호를 관찰했습니다.
이 결과, 요철이 있는 재질일 때 감도가 최대 100배까지 민감해진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여기서 요철은 사람의 지문에서 땀구멍이 솟아오른 선인 ‘융선’과 두 융선 사이의 패인 곳인 ‘골’이 만들어낸 반복되는 골짜기를 뜻합니다. 연구팀은 손끝이 물체의 표면을 지나갈 때 신경 말단의 파시니 소체가 진동 형태로 감지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지문의 요철이 신호증폭기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2007년에는 스위스의 한 여성이 미국으로 입국하려다 제지당했습니다. 그녀의 손가락에 지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성은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무지문증’(adermatoglyphia)이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느낀 스위스 바젤의대 피부학자 피터 이틴 교수는 그녀의 친인척들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무려 9명이 그녀와 같이 태어날 때부터 무지문증이었습니다.
그 뒤 무지문증이 유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틴 교수는 이 증상에 ‘입국지연병’(immigration delay disease)’라는 별칭을 지어줬습니다. 입국지연병 증상자들은 지문날인을 요구하는 나라로 입국할 때마다 이러한 제지를 당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의 엘리 스프레셔 교수팀은 입국지연병 증상자들의 유전자를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8월 미국인간유전학저널을 통해 무지문증은 SMARCAD1이라는 유전자에 변이가 생긴 결과라고 발표했습니다. SMARCAD1 유전자는 피부에서만 발현되는데 그 기능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유전자가 피부 세포가 접히는 배열을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문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유전자가 같은 일란성 쌍둥이도 지문은 서로 다릅니다. 지문 패턴 형성에는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문은 태아 24주쯤이면 거의 완성돼 평생 동안 변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내 손끝의 지문에는 어머니 뱃속 시절의 추억이 새겨져 있는 셈입니다.
<참고문헌>
ㆍ브라이언 이니스 지음, 이경식 옮김, 2005,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 pp144-175.
ㆍ박미숙, 김민지, 박진영, 천진호, 한면수, 표창원, 2010, 법과학을 적용한 형사사법의 선진화방안 (Ⅰ), 한국형사정책연구원, pp142-146.
ㆍ강석기, 2012, 1880년 헨리 폴즈의 지문에 대한 첫 보고, 4월호, pp128-131.
ㆍU.S. Department of Justice, 2014, The Fingerprint, pp12-14.
ㆍhttps://en.wikipedia.org/wiki/Alphonse_Bertill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