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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Dec 02. 2020

인류세 이야기

지구의 역사를 나타내는 지질시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생물체의 흔적이 거의 없던 은생이언과 생물의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 5억 6천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현생이언으로 구분하지요. 그리고 현생이언은 다시 크게 고생대와 중생대 그리고 신생대로 나눕니다. 신생대는 6천 5백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시기인데, 고 제3기, 신 제3기 그리고 제4기로 나눕니다. 그 중, 제4기는 약 258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로, 인류의 등장과 빙하기가 가장 주된 사건입니다. 제4기 역시 특징적인 사건에 따라 나누는 데 그 중, 플라스토세는 호모 에렉투스가 전면적으로 등장한 시기로 1만 년 전까지입니다. 그리고 약 1만 년 전부터를 홀로세라고 합니다. 플라이스토세의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온화한 기후와 함께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시기이지요. 




인류세의 등장


그런데 20세기 후반부터 인류세 (Anthropocene) 라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인간 활동이 지구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시기부터 인류세로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죠. 인류세란 용어가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건 오존층 구멍을 발견해 1995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은 파울 크루첸이 지구 환경 국제회의에서 “우리는 이제 홀로세가 아니라 인류세에 살고 있다”고 한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인류세란 용어의 대중화에 기여한 파울 크루첸by Teemu Rajala, CC BY 3.0 (Wikimedia)

인류세를 주장하는 이들도 그 시점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먼저 6000년 전 농경과 산림 벌채가 시작된 시점, 두 번째로 1600년대 구대륙과 신대륙 사이에 교류가 시작된 시점, 세 번째로는 18세기 산업혁명, 네 번째로는 20세기 인구 폭발 등이 거론됩니다. 이 중 세 번째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가장 많기는 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인류세란 용어를 사용하기에는 인류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시간이 너무 짧으니 더 시간을 두고 신중히 결정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또 이 지질시대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인간에 의한 지구 파괴를 강조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그런데도 이 용어는 21세기 들어 자연과학 분야와 인문사회 분야 그리고 일반인 사이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그 의미에 대해서도 다양한 토론이 꾸준히 진행되어왔습니다.

 


산업혁명이 발생하던 19세기 중반의 모습 @Public Domain (Wikimedia)


현재 인류세에 대한 연구를 주도하는 곳은 국제지질연합 산하의 인류세 실무그룹입니다. 34명의 과학자로 이루어진 인류세 실무그룹은 2010년부터 인류세를 새로운 시대로 인정할 것이냐를 연구해왔습니다. 여기에서 최근 투표했는데 29명이 인류세 지정에 찬성하고 4명이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따라 2021년까지 인류세 지정에 대한 공식 제안서를 국제층서위원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국제층서위원회는 지질시대를 정의하는 기관입니다. 내년이면 인류세가 정식 지질시대가 될지 결정될지도 모르겠네요.





인류에 의해 무너지는 지구 생태계


인공위성에서 바라본 말레이시아의 열대우림지역. 숲을 밀어내고 만든 팜야자 농장@Public Domain (Wikimedia)


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인류세가 지구의 주인이 인류라는 뜻을 가진 용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바로, 인류에 의해 지구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를 담고 있는 용어이지요. 따라서 인류세의 특징 중 하나는 인류에 의한 대량 멸종 사태입니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도시 확대 및 농경지 조성으로 인해 생물들이 살 터전을 잃어 멸종하는 것이 원인입니다. 인간에 의한 남획 혹은 외래 생물 종의 유입으로 생물이 멸종되기도 합니다. 지구 온난화에 의한 이상 기후도 큰 원인 중 하나이지요. 이를 인류세 멸종이라고도 부르는데요. 이러한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현재 진행 중인 멸종 때문에 양서류의 30%, 포유류의 23%, 조류의 12%가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미래에서 바라본 우리의 모습


만약 몇 만 년 후 인류가 생존해 있다면, 지금 우리가 살던 시절의 지층을 파보았을 때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층에서 나오는 조류 화석 중 절반 이상이 닭의 뼈일 것입니다. 아마 먼 미래의 후손은 우리 시대에 가장 번성한 새는 닭이라고 생각하겠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던 지층의 포유류 화석 중 ⅔ 이상은 돼지와 소, 양과 염소가 될 것입니다. 이들이 현재 지구상에 사는 포유류 개체 수 중 65% 이상을 차지하지요.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자라는 식물은 옥수수와 밀, 벼, 콩과 보리입니다. 나머지 식물들을 합친 것보다 이들의 숫자가 더 많습니다. 


미래에 가장 번성한 새로 여겨질 닭 


또한 이전까지 나타나지 않던 새로운 물질들이 지층 속에서 나타나 놀랄 것입니다. 지구 역사 45억 년 동안 보이지 않던 플라스틱과 비닐이 지층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검은 아스팔트도 고체 상태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뿐이 아니지요. 철과 알루미늄, 구리 등이 광석이 아닌 제련된 상태로 지층 곳곳에서 발견될 것입니다. 

또 지층의 화학적 연구를 통해 불과 200년 만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0.03%에서 0.04%로 증가했고, 그에 따라 지구의 평균온도가 단기간에 1℃ 이상 급상승했다는 사실도 파악할 수 있겠지요. 그와 함께 해수면이 상승한 흔적도 지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다를 뒤덮은 플라스틱 쓰레기


과연 미래 우리 후손은 18세기에서 21세기까지 진행된 인류의 역사가 지구 생태계를 어떻게 바꾸었다고 판단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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