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의 관점에서 결정질 고체 재료란 재료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이 규칙성을 가지고 무한히 배열된 상태입니다. 이 규칙성이 깨지는 상태를 결함이라고 부르지요. 모든 재료에는 다양한 종류의 결함이 존재합니다. 원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빠져 있거나, 있으면 안 되는 곳에 끼어 있거나, 원래 원자 자리를 다른 원자가 차지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 배열의 순서나 방향이 바뀔 수도 있고요. 단 한 개의 결함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고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함은 재료의 특성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 영향이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는 일부러 결함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순수한 금속에 불순물 원자가 첨가되면, 더 단단해지고 강해집니다. 이것을 합금이라고 부릅니다. 강철(steel)은 순철(iron)과 탄소의 합금입니다. 크롬을 넣어서 잘 녹슬지 않도록 스테인리스강을 만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는 금속 중 귀금속을 제외한 대부분은 합금입니다. 합금이 왜 순수한 금속보다 강할까요?
스프링을 잡아당겼다가 놓으면 원래 상태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강한 힘으로 계속 잡아당기면 스프링이 완전히 늘어나서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영구적인 변형이 발생하지요. 강한 금속일수록 이 영구적인 변형에 대한 저항성이 큽니다. 금속 원자들의 배열이 불규칙하거나 격자가 뒤틀려있으면 영구적인 변형을 발생시키기 위해 더 큰 힘이 요구됩니다. 합금 원소는 격자를 뒤틀어 결과적으로 금속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불순물은 재료의 강도뿐만 아니라 전기적 성질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보통 반도체 재료라고 하면 순수한 실리콘을 떠올리시지요? 하지만 상용반도체는 모두 불순물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실리콘은 4개의 원자가 전자를 가지고 있고, 주변의 4개의 원자와 전자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결합합니다. 외부에서 전기장을 걸어주면 전자가 원래 자리에서 빠져나와 고체 내부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전자를 자유전자라고 하고, 전자가 빠져 나간 자리를 정공이라고 합니다. 불안정한 정공을 채우기 위해 다른 가전자들이 이동하면 새로운 자리에 정공이 생기게 됩니다. 마치 정공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되지요. 음전하를 운반하는 전자와 양전하를 운반하는 정공에 의해 전류가 흐릅니다
순수한 반도체는 전하 운반자의 농도를 높이기 위해서 많은 열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상용 반도체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일부러 불순물을 첨가하여 과잉 전자나 정공을 만들게 됩니다. 반도체에서는 이와 같은 과정을 도핑(doping)이라고 하지요. 인(P)와 같이 원자가 전자를 5개 가지고 있는 원소를 첨가하여 과잉 자유전자가 생성된 반도체를 n-형 반도체, 붕소(B)처럼 원자가 전자를 3개 가지고 있는 원소를 첨가하여 과잉 정공이 생성된 반도체를 p-형 반도체로 구분합니다.
사파이어와 루비는 다이아몬드와 함께 최고급 보석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사실 사파이어와 루비는 모두 산화알루미늄(Al₂O₃) 결정입니다. 고순도의 단결정 산화알루미늄은 색이 없고 투명한데, 불순물 이온에 의해서 다양한 색을 갖게 됩니다. 특히 루비는 크롬 산화물이 첨가되어 있지요. 특정 영역의 파장을 흡수하고, 흡수되지 않고 투과하는 빛이 재방출되는 빛과 합해져 특유의 색깔을 내게 됩니다. 루비가 진한 붉은색을 띠는 이유는 푸른 보라색과 노란 녹색에 해당하는 파장을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티타늄과 철이 포함된 블루 사파이어를 비롯하여 그린, 바이올렛, 옐로우 등 다채로운 사파이어가 존재합니다. 오렌지와 핑크가 섞여 노을빛을 띠는 파파라차 사파이어는 워낙 귀해서 다이아몬드보다 비싸게 거래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늘 순수한 것, 완벽한 것을 추구합니다. 티끌 같은 결함도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함이 없는 완벽한 상태를 만드는 게 가능할까요? 아니 결함은 늘 없애야 하는 존재일까요? 최소한 재료의 세계에서는 결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어쩌면 사람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