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프랑스 동물학자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1744~1829년)는 사실 식물학자였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1793년 라마르크가 교수로 근무하던 파리왕립식물원이 국립자연사박물관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라마르크는 박물관의 교수로 일하며 자연스레 동물학으로 관심의 범위를 넓히게 됩니다.
라마르크는 평소 무척추동물의 분류 작업을 진행하며 생명체의 기본적인 성격은 무엇일까, 동물의 분류를 배열하는 자연적인 방법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대기와 지표의 변화와 같은 지질학 연구를 병행하면서 지구의 나이가 수천만에서 수억 년 이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생명체의 활동과 생태습성에 환경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생명체의 활동과 생태라고 해서 반드시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는 동물에 국한된 설명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식물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동물 같은 생태습성을 보이지 않지만 큰 환경변화가 일어나면 식물마다 기관별 발달의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합니다.
기상과 날씨, 지질학적 변화와 같은 환경과 생명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관계를 통해 생명체의 습성과 생존방식, 신체와 기관의 형태변화가 동반된 것으로 생명체의 진화를 파악한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진화론은 크게 2가지로 개념화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용불용설(用不用說)입니다. 생명체가 일생 동안 자신의 필요가 많은 기관은 그 기능을 확대, 강화하는 반면, 필요가 적은 기관은 약화, 손상시키며 그 기능을 소실한다는 내용입니다.
둘째는 획득형질(acquired characteristic)의 유전이라 불리는데, 생명체가 환경에 영향을 받아 자연적으로 생겨나거나 소실된 기능은 사용 혹은 불사용에 의해 세대를 거치면서 새로운 후손들에게 보존된다는 것입니다.
라마르크가 설명하는 진화론은 단순히 한 세대가 아니라 오랜 지질학적 시간을 걸쳐 생명체의 조직화를 복잡하게 하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세대 간의 물리적 연속성을 이어줄 유전의 필요성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그는 유전이론을 제시하지 않았고,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진 획득형질의 유전에 대한 신념을 지녔을 뿐입니다. 더불어 그의 논증적이고 격정적인 말투와 강한 주장들은 동료들에게 환경을 받지 못했습니다.
흔히 생물학 교과서에선 기린의 목이 늘어나는 과정의 잘못된 설명으로 흔히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소개됩니다. 기린이 일생 동안 높은 나뭇가지에 있는 잎을 따먹기 위해 목을 늘이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목이 길어졌다는 것입니다. 또 이러한 과정을 오랜 기간 지속한 결과, 기린의 목이 점점 늘어나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라마르크는 진화를 생명체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한 적응의 결과로써 나타난 변화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용불용설과 획득형질의 유전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진화를 뭔가 알려지지 않은 ‘생기’와 같은 기운이 아니라 물질적인 과정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이는 찰스 다윈(1809~1882년)이 생물의 진화과정을 물질적인 과정으로 이해하는 데 분명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존에 어려움을 겪는 단순한 생물은 무생물로부터 계속 생겨나고 단순한 생물로부터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점점 복잡한 생물들이 출현한다는 라마르크의 주장은 다윈의 진화론과 다릅니다. 나아가 라마르크에 따르면, 생물들이 완벽한 고등생물인 인간을 향해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흔히 침팬지도 언젠가는 인간이 될 것이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킵니다. 이는 다윈이 쓴 《종의 기원》에서 진화는 정해진 방향성이 없다는 내용과 상충됩니다. 또 인간을 포함한 침팬지, 오랑우탄, 원숭이 등의 영장류는 ‘공통조상’에서 분리됐다는 다윈의 ‘공통조상’의 원리와 차이가 있습니다.
유전자와 DNA가 발견되면서 라마르크의 이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보였습니다. 생물이 생전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얻은 특정 형질은 후대에 유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물의 진화는 환경보다 유전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멋진 근육을 뽐냈던 배우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자신의 근육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려면 아버지처럼 근력운동을 열심히 해야만 탄탄한 근육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세대에 특정하게 나타난 형질이 대를 거쳐 유전될 수 있다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 등장하면서 모두가 틀렸다고 주장했던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다시금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DNA 염기서열이 변하지 않아도 특정 형질이 나타나거나 발현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3세대 정도 대를 이어 유전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임신 중 굶은 실험 쥐가 낳은 새끼 쥐(1세대)들은 나중에 당뇨병에 걸렸으며, 그 새끼들의 새끼 쥐(2세대)까지 당뇨병의 발병 위험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얼핏 후성유전학이 획득된 형질이 후대에 유전된다는 용불용설과 비슷해 보이지만 둘은 다릅니다. 라마르크는 행위에 의해 얻어진 형질도 후대에 전달된다는 의견이지만 후성유전학은 환경이 유전자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기 떄문입니다.
최근 후성유전학 덕분에 라마르크의 이론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어쩌면 세월이 좀 더 지나면 라마르크의 이론이 생물학 교과서에 다시 쓰여지는 날이 올지 모릅니다.
<참고문헌>
· 윤혜섭, 장수철, 2020, 일반생물학 수업을 위한 『종의 기원』 탄생에 대한 연구 – 다학제적 역량 배양을 위한 생물학 수업 모색, 교양교육연구 14(2), pp47-59.
· 이정희, 2016, 라마르크주의 환경개념의 역사 : 라마르크와 19세기 진화론 논쟁을 중심으로, 역사학연구 63, pp247-274.
· 케네스 VV. 칼동 지음, 허만규, 김명철, 노태호, 신현철, 윤명희, 이대원, 이정일 옮김, 2012, 진화학 2판, pp9-11.
· 원호섭, 이영욱, 2015, 300년 전 묻힌 용불용설 … 세상이 다시 주목하다, 매일경제신문, 3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