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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Mar 03. 2021

광합성을 하는 동물이 있다?



봄이 오면 산과 들에 꽃이 피고, 푸르른 녹음이 시작됩니다. 오늘날 70억 명의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의 근원은 바로 식물의 광합성 덕분입니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다른 생물체의 도움없이 스스로 생존을 위한 에너지를 만듭니다. 그래서 식물이나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을 독립영양체라 부르고, 독립영양체를 먹이로 의존해 살아가는 동물을 종속영양체라고 합니다. 


흔히 인류를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지만 생산자인 식물체 없이는 지구 생태계가 유지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동물이 종속영양체는 아닙니다. 다시 말해 스스로 에너지를 합성하는 식물과 미생물을 먹지 않아도 되는 동물이 있습니다. 그 동물은 식물처럼 광합성 작용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일까요?




바우체리아 엽록체로 광합성 이용
 

엘리지아 클로로티카 by Karen N. Pelletreau et al. CC-BY-4.0(Wikimedia commons)

바닷속에는 광합성을 하는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갯민숭달팽이 종류인 ‘엘리지아 클로로티카’(Elysia cholrotica, 이하 엘리지아)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 동물은 광합성 작용을 하는데, 태어날 때는 일반 달팽이처럼 투명한 몸을 지녔지만 자라면서 나뭇잎처럼 초록색으로 변합니다. 


1975년 미국 메인대학교 분자생물학과 매리 룸포 교수팀에 의해 엘리지아가 광합성을 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습니다. 해조류에 붙어 있는 모습이 얼핏 보면 나뭇잎처럼 보이지만 꼬물꼬물 움직이기 때문에 ‘기어다니는 나뭇잎’이란 별명을 지녔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 엘리지아가 어떻게 광합성을 하는지 밝혀졌는데요. 엘리지아는 광합성을 하는 진핵생물인 바우체리아(Vaucheria litorea)를 먹이로 살아갑니다. 바우체리아는 국수가락 형태의 황록 조류(藻類)입니다. 특이하게도 엘리지아는 바우체리아를 먹이로 삼킨 뒤 세포 속의 엽록체는 소화시키지 않고 소화관 주변의 세포 안으로 들여보냅니다. 이렇게 엘리지아의 체내에 옮겨진 엽록체는 수개월 동안 죽지 않고 광합성 반응을 통해 포도당을 생산합니다. 이 때문에 엘리지아는 먹이 없이도 6~8개월 정도 살 수 있습니다. 


이 결과는 룸포 교수팀이 엘리지아의 게놈 일부를 분석해 밝혀냈습니다. 엘리지아의 세포핵에서 엽록체가 광합성할 때 필요한 에너지원을 만드는 psbO 유전자를 발견한 것입니다. psbO 유전자는 광합성 과정에서 물을 분해해 산소를 배출하도록 도와주는 연료입니다. 


광합성 반응은 태양의 빛이 엽록소에 닿으면 물(H₂O)이 분해되어 수소 이온(H+)과 함께 전자를 이산화탄소(CO₂)에 전달합니다. 이어 이산화탄소가 포도당으로 전환되고 산소가 체외로 배출됩니다. 따라서 엘리지아 체내에 psbO 유전자가 없었다면 엽록체를 소화시키지 않고 체내에 남겨 뒀더라도 광합성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엘리지아, 엽록체 사이는 ‘공생’ 관계


황녹조류인 바우체리아의 모습 by Keisotyo CC-BY-4.0(Wikimedia commons)


그렇다면 동물인 엘리지아는 광합성을 유도하는 psbO 유전자를 어떻게 지니게 된 것일까요? 룸포 교수팀이 엘리지아와 바우체리아의 psbO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두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같았습니다. 이는 바우체리아 게놈 속의 psbO 유전자가 어느 시기에 엘리지아의 몸속으로 건너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엘리지아는 다량의 바우체리아를 섭취하면 다른 조류를 먹지 않아도 스스로 양분을 생산할 수 있어 독립영양체처럼 보이지만 진짜 광합성을 하는 동물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지아의 몸 속에 들어간 엽록체는 자식에게 유전자의 형태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로 태어난 엘리지아 새끼의 몸체는 엽록체가 없기 때문에 일반 달팽이처럼 투명한 색상입니다. 그리고 바우체리아를 먹어야 비로서 엽록체를 띤 녹색으로 몸 색깔이 바뀝니다. 또 엘리지아 세포 속에 들어온 바우체리아의 엽록체는 더 이상의 자가복제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엽록체가 둘 혹은 그 이상으로 쪼개지지 않습니다. 결국 엘리지아는 일반적인 식물이나 조류와 달리 엽록체와 공생 관계를 통해 광합성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해 보입니다. 






퇴화된 흔적, 엽록체

 

시아노박테리아와 공생하는 엽록체의 모습 ⓒ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식물이나 미생물은 어떻게 엽록체를 지닌 독립영양체가 될 수 있었을까요? 과학자들은 아마도 아주 오랜 옛날에 아메바처럼 생긴 단세포 진핵생물이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를 집어삼킨 뒤 완전히 소화시키지 않고 체내에 두고 에너지를 생산해 왔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아노박테리아는 식물과 미생물의 체내에 적합하도록 변화를 거쳐 함께 공생하는 관계를 이룬 것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엽록체는 같은 세포에 들어있는 핵의 게놈과 별도로 자그마한 게놈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게놈은 박테리아처럼 고리모양을 하고 있고, 염기서열 역시 시아노박테리아와 비슷합니다.


광합성 기능을 지닌 박테리아가 진핵생물에 먹힌 뒤 엽록체로 바뀌면서 대부분의 유전자를 잃어버리고, 진핵생물의 유전자와 중복된 유전자는 효율성을 위해 퇴화되면서 상당수의 유전자는 세포의 핵으로 옮겨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같은 과정이 향후 좀 더 명확히 밝혀진다면 언젠가는 동물들도 별도의 식사를 하지 않아도 일광욕을 하는 것으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날이 오게 되지 않을까요?






<참고문헌>
Ÿ- Karen N. Pelletreau ,Andreas P. M. Weber, Katrin L. Weber, Mary E. Rumpho, 2014, Lipid Accumulation during the Establishment of Kleptoplasty in Elysia chlorotica, PLOS ONE, 9(5), pp1-16.
- Mary E. Rumpho, Jared M. Worful et al., 2008, Horizontal gene transfer of the algal nuclear gene psbO to the photosynthetic sea slug Elysia chlorotica, PANS, 105(46), pp17867-17871.
- Trench R. K., 1975, Of ‘leaves that crawl’: Functional chloroplasts in animal cells. Symposia of the Society for Experimental Biology, ed Jennings DH (Cambridge Univ Press, London), pp229–265.
- https://www.newscientist.com/article/dn16124-solar-powered-sea-slug-harnesses-stolen-plant-ge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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