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에 감염된 매직 존슨이 멀쩡한 이유는?
1991년11월7일 전 세계 농구팬들은 절망적인 뉴스를 접하고 충격에 빠집니다. 역대 농구 가드 포지션 선수 중 가장 탁월한 선수로 손꼽히던 매직 존슨이 “저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돼 오늘부로 LA 레이커스를 은퇴합니다”라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존슨은 비교적 짧은 경력을 지녔지만 통상 최고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다섯 번이나 LA레이커스를NBA 우승팀으로 이끌었습니다. 그 해 9월 결혼한 아내와 아이까지 있는 상황에서 에이즈(AIDS)를 일으키는 HIV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진단은 사형선고처럼 여겨졌습니다.
당시에는 HIV 바이러스 보균자는 평균 8~10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HIV에 감염된 존슨은 26년이 지났지만 아직 살아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걸리면 죽는 병이라 여겼던 에이즈에 감염된 존슨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by Steve Lipofsky www.Basketballphoto.com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1.2(Wikimedia commons)체내 항체 만들어도 끊임없는 변신하는 HIV
에이즈는 1981년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수십 명의 젊은 동성연애자들이 건강한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질병을 진단받으면서 발견됐습니다.이들의 질병 유형은 유전적으로 면역체계의 결함을 지닌 환자에게 볼 수 있는 증세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선천적으로 건강했지만 후천적으로 감염돼 질병이 시작됐기 때문에 후천성면역결핍증(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AIDS)라고 부릅니다.
인체는 외부의 병원성 인자에 대항하는 면역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HIV는 이 면역체계의 핵심세포인 ‘T4 세포(T4 cell)’를 파괴합니다. 초기에는 면역체계를 형성하는 수십억의 세포들 가운데 ‘B 세포(B cell)’라 부르는 세포들이 HIV를 자신과 다른 물질인 항원(antigen)으로 인식하고 이들을 제거하기 위한 HIV 항체(antibody) 단백질을 생산합니다.
Ⓒ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바이러스와 첫 접촉이 있은 뒤 3개월 이내에 감염된 사람의 95%가 높은 수준의 HIV 항체를 지닙니다. 이 결과 감염된 사람의 혈액에서 HIV의 수준은 현저하게 낮아집니다. HIV에 감염됐지만 약 10년의 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약물치료를 받지 않는 대다수의 HIV 감염자들은 어느 순간 HIV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합니다. 감염 초기 체내 면역체계에 굴복하던 HIV가 수년 뒤 면역체계를 손상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체내에서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만드는 방법으로 체내 면역반응을 극복하는 HIV의 진화에 해답이 있습니다. 즉, 자신을 죽이려는 인체 면역체계에 적응하면서 불멸의 바이러스로 진화하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HIV에 감염된 사람들이 면역력을 상실하면 에이즈가 발병하게 됩니다.
빠른 돌연변이로 면역체계 파괴하는HIV
HIV는 단백질로 둘러싸인 효소와 RNA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런데HIV가 인체에 침입하면 인체 세포에 붙어 HIV에 들어있던 바이러스 효소와 바이러스 RNA를 분비합니다. 분비된 바이러스 효소는 바이러스 RNA에서 바이러스 DNA로 유전정보를 복제시킵니다. 이어 사람의 DNA에 바이러스의 DNA를 삽입시켜 사람의 DNA가 복제될 때 바이러스의 DNA가 복제되도록 유도합니다.
이처럼 인체 밖에서 이물질이 침입하면 우리 신체는 곧바로 이를 인식해 항체를 만드는 면역체계가 작동합니다. 이 때문에 감염되면 3~6주 내에 발열이나 인후통, 임파선 비대, 두통, 구토 등의 증세가 나타나고 그 뒤로는 아무런 증상이 없는 잠복기가 지속됩니다. 무증상 잠복기는 사람과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8~10년가량 지속됩니다.
HIV모식도 (위) 세포에서 막나온 미성숙 바이러스 입자, (아래)성숙된 바이러스입자 Ⓒ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하지만 돌연변이로 만들어진 HIV 변이체가 무한 증식을 하면서 인체의 면역체계에 저항성을 지닌 새로운 HIV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새로운 바이러스 변이체가 혈액 내에서 더 오래살 수 있는 적응력을 갖춘 불멸의 바이러스에 이릅니다. 이때 에이즈가 발병하는 것입니다.
에이즈 치료제는 HIV가 체내에 처음 들어왔을 때 바이러스RNA에서 바이러스 DNA가 복제되는 과정을 막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에이즈 치료약인 아지도타미딘(Azidothymidine, AZT)은 바이러스 효소가 바이러스 RNA를 바이러스 DNA로 복제할 때 끼어들어가 바이러스 DNA가 만들어지는 것을 중단시키도록 설계됐습니다. 처음에는 AZT가 에이즈 환자의 혈액에서 HIV를 거의 제거할 정도로 경의적인 약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AZT는 HIV를 제압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바이러스 변이체를 만들면서 바이러스 RNA에서 바이러스에서 DNA를 복제하는 바이러스 효소가 재료로 치료제인AZT를 선택적으로 걸러내도록 약물내성을 길러가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치료제에 내성을 갖는 HIV 변이체를 가진 일부 환자에게 복합약물 요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5월18일은‘세계 에이즈 백신의 날’
Ⓒ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복합약물요법이란 여러 가지 변종 HIV에 대한 백신을 개발해 혼합해 복용하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복합약물을 처방받은 에이즈 환자들은 매일 수십알의 약을 복용해야 합니다.일부 약은 식사 전에 먹어야 하고, 또 다른 약은 식사 중에 또는 상당한 양의 물과 함께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에이즈 환자는 10~15가지 약을 매일 여러 차례 복용하기도 합니다.
복합약물요법은 HIV의 진화속도보다 앞서서 백신을 처방받는 효과가 있어 체내 있는 HIV의 병원성을 약하게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600만 명의 환자 중 44만 명만이 치료받고 있습니다.매직 존슨이 HIV에 감염되고도 정상적으로 생존해 있는 것도 부유한 경제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입니다.
1997년5월18일 당시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10년 이내에 효과적이고 예방적인 HIV 백신을 만들어 에이즈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자고 촉구했습니다. 이날을 기념해 해마다 5월18일이‘세계 에이즈 백신의 날’로 지정됐습니다. 에이즈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병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루 빨리 에이즈 예방 및 치료 백신이 개발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참고문헌]
콜린 벨크, 버지니아 보덴 지음, 김재근 외 옮김, 2005, 《생활 속의 생명과학》, 257-279p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