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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May 16. 2018

우연 아닌 우연 - 세렌디피티

발견과 발명의 역사를 보면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된 것들이 많습니다. 우연은 우리가 살면서 늘 일어나는 일인데, 왜 우리는 위대한 발견이나 발명을 하지 못하는 걸까요? 우연인 것 같지만 그 우연을 발견이나 발명으로 이어지게 하는 생각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적 사고’라고 합니다.



벨크로 테이프의 발명


찍찍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정확한 명칭은 벨크로 테이프(velcro tape)입니다. 옷, 장갑, 운동화, 모자 등의 단추나 끈을 대신해 여미는 데 널리 사용합니다. 이 벨크로 테이프는 스위스의 전기기술자 조르주 드 메스트랄(1907~1990)이 발명한 것인데, 그 일화가 발명의 속성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엉 종류의 씨앗에 있는 갈고리 모양을 보고 벨크로 테이프를 발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 by Prosthetic Head CC-BY-SA 4.0 (Wikimedia Commons)


발명가이기도 했던 드 메스트랄은 머릿속에 늘 발명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개와 함께 사냥을 가면서 풀숲을 돌아다녔습니다. 한참 다니다 보니 바지와 개의 털에 씨앗들이 많이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풀씨가 옷에 달라붙는 것을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아주 흔한 일입니다. 하지만 드 메스트랄은 씨앗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드 메스트랄은 순간 머릿속에 발명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풀씨에는 갈고리 모양의 가시로 덮여 있어 옷이나 동물의 털에 잘 달라붙었던 것입니다. 이 씨앗의 모습에서 힌트를 얻어 갈고리와 걸쇠가 있는 벨크로 테이프를 발명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풀씨를 떼어내는 데 귀찮다고만 생각했을 겁니다. 투덜대면서 떼어내겠지요. 드 메스트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작고 사소한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을 만큼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데 열중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되었지만 결코 우연이 아닌 발명이나 발견을 ‘세렌디피티적 사고’라고 합니다.


조르주 드 메스트랄이 발명한 벨크로 테이프 / by Alberto Salguero under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1.2(Wikimedia)



세렌디피티의 원조, 아르키메데스


고대 그리스의 과학자 아르키메데스(BC 287~BC 212)는 세렌디피티적 사고의 대표적인 주인공입니다. 왕의 금관에 은이 섞여 있는지 밝히라는 임무를 띠고 몇 날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아무리 무게를 달아 보아도 왕이 준 금의 무게와 같았습니다. 세공사에게 준 금의 무게와 왕관의 무게가 같다면 왕관에 은이 섞여 있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해결할 수 없었던 아르키메데스는 머리를 식힐 겸 목욕탕에 갔습니다. 목욕탕에 뜨거운 물속에 몸을 담그자 찰랑찰랑 넘치던 탕 속의 물이 넘쳐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탕 속에 들어가면 목욕탕의 물이 넘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르키메데스는 세렌디피티적 사고를 합니다.


세렌디피티적 사고로 무력의 원리를 발견한 아르키메데스 Ⓒ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물이 얼마나 넘치는 걸까? 내가 물에 잠긴 만큼 물이 넘칠 것이다. 따라서 물이 넘치는 양은 물에 잠긴 내 몸 만큼일 것이다. 그렇다면 왕관과 순금을 물속에 넣어 보자.’ 

이런 생각을 한 아르키메데스는 ‘유레카!’를 외치고 목욕탕에서 달려 나왔습니다. 알몸인 것도 모르고 말이지요.

아르키메데스는 왕관과 무게가 같은 순금을 물속에서 재어 순금의 무게가 더 무거운 것을 알아냈습니다. 왕관에 은이 섞여 있어 순금과 무게는 같지만 부피가 더 커서 물을 더 흘러넘치게 되고 부력이 더 컸던 것입니다. 공기 중에서는 차이를 알 수 없었던 것이 물속에는 차이가 확실하게 났던 것입니다.


‘어떤 물체에 가해지는 부력은 그 물체가 대체한 유체의 무게와 같다.’

이것이 아르키메데스가 발견한 부력의 원리입니다. 목욕탕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 같지만 사실 아르키메데스는 이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세렌디피티적 사고가 탄생한 것입니다.



페니실린과 페이스북까지


이렇게 세렌디피티적 사고는 우연히 이루어진 것 같지만 결코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항상 생각하고 고민해왔기 때문에 어떤 사소한 일도 예사롭지 않게 보였던 것입니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 Ⓒ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영국의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1881~1855)이 페니실린을 발견하여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 것도 세렌디피티적 사고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실험 도중 실수로 방치한 푸른곰팡이가 다른 세균을 죽이는 것을 보게 된 것이지요. 


실험의 실패로 또 다른 발명품인 포스트잇을 발명한 3M 직원 아서 프라이 Ⓒ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3M의 연구원도 더 강력한 접착제를 발명하고자 실험하던 중 접착력이 너무 약한 물질이 만들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포스트잇을 발명한 것입니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 by Elaine Chan and Priscilla Chan CC-BY-SA 2.5 (Wikimedia Commons)


차고 한편에서 마크 저커버그와 친구들 또한 세렌디피티적 사고로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대학 기숙사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명단과 졸업 앨범 사진들을 가지고 친구찾기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전 세계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네트워크 서비스인 페이스북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사소한 것을 가지고 어마어마한 발상을 하게 된 것이 바로 세렌디피티적 사고입니다. 차고에서 중고책 한두 권을 팔다가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인 아마존을 창업한 제프 베조스도 세렌디피티적 사고로 이루어낸 것입니다.



영국의 작가 호레이스 월폴(1717~1797)은 <세렌디프의 세 왕자>라는 우화에서 사람들이 미처 몰랐던 것들을 항상 우아하면서도 지혜롭게 발견하는 모습을 ‘세렌디피티’라고 정의했습니다. 발명왕 에디슨도 다른 것을 발명하려고 애쓰던 중에 등사판 아이디어를 떠올렸는데, 이 아이디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바로 깨달은 것이 세렌디피티적 사고였던 것입니다. 세렌디피티적 사고는 생각의 폭이 좁거나 하나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에게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전혀 상관없고 소용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까지도 관심을 넓힐 때 발견이나 발명이 우연처럼 다가와 눈앞에 나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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