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6일. 괌의 티니언 미국공군기지에서 3대의 폭격기가 일본을 향해 이륙했습니다. ‘에놀라 게이’라는 편명이 붙여진 B-29 폭격기에는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폭탄이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되면서 인류는 원자폭탄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원자폭탄은 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모든 물질은 분자로 이루어져 있고, 분자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뜻의 atom에서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하면서 원자도 원자핵과 전자로 쪼개진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핵’이란 말이 들어간 것은 원자의 중심에 덩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원자는 중심에 있는 덩어리(핵) 주변이 전자가 분포되어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1932년 원자 안에서 중성자가 발견되면서 원자핵도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원자번호 1번인 수소는 원자핵으로 양성자 1개가 있고 그 주변에 전자 1개로 구성됩니다. 원자번호 2번인 헬륨은 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가 원자핵을 이루고 그 주변에 전가 2개 분포되어 있습니다. 원자번호 92번인 우라늄은 양성자 92개와 중성자 146 그리고 전자 92개로 되어 있습니다. 원자번호는 양성자의 개수에 따라 붙여집니다.
독일의 한 박물관 앞에 설치된 질량-에너지 등가 공식(위키백과) by Lienhard Schulz CC-BY-2.5 (Wikimedia commons)
과학사에서 ‘기적의 해’라 불리는 1905년,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했습니다. 이 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E=mc2이라는 유명한 공식입니다. E는 에너지, m은 질량, c는 빛의 속도입니다. 이 공식은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라고도 부르는데, 말 그대로 질량이 곧 에너지이고 에너지가 곧 질량이라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질량을 가진 물체가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당시 핵물리학자들은 이 아인슈타인의 공식에서 엄청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공식에 있는 c가 빛의 속도, 즉 약 300,000,000m/s이므로 작은 질량이라도 엄청난 에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도 제곱이니 에너지의 양은 어마어마할 수 있습니다. 질량이 5g 정도인 100원짜리 동전 한 개가 순수하게 에너지로 변환된다고 가정해볼까요? 아인슈타인의 공식에 넣고 계산해보면 450,000,000,000,000kJ이 나옵니다. 보통 한 가구당 1년 전력소비량이 대략 5000kWh=18,000,000kJ이니 100원짜리 동전 한 개로 2500만 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기가 나오는 셈입니다. 물론 질량을 가진 물질이록 모두 순수한 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중성자가 발견된 이후, 과학자들은 이 중성자를 가지고 원자핵을 분열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퀴리 부인 딸 이렌느 퀴리와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 등이 우라늄을 이용한 핵분열 실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들보다 한 발 앞서 독일의 물리학자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1938년 우라늄의 핵분열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라늄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우라늄과 중성자가 결합되어 초우라늄이 만들어질 것이라 예측했지만, 우라늄이 아예 두 쪽이 나 버리듯이 쪼개진 것이었습니다. 이 현상을 여성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와 그의 조카 오토 프리슈가 명쾌하게 설명함으로써 핵분열의 원리가 밝혀지기 되었습니다. 우라늄 원자핵이 더 작은 두 개의 다른 원자핵으로 분열되는 과정에서 질량의 줄어들게 되는데, 이 줄어든 질량이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에 의해 막대한 에너지로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 에너지는 인류가 발견한 ‘제3의 불’이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제1의 불’은 인류가 처음으로 발견한 불이고, ‘제2의 불’은 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이 버섯구름은 인류에게 죽음의 구름으로 다가오게 된다.(위키백과) ⓒ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이렇게 인류가 ‘제3의 불’을 발견하고 있는 동안,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습니다. 이어 독일이 체코까지 침공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독일은 병력 수에서 열세에 부딪치자 무기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했습니다. 당시 독일은 현대물리학의 중심지로 알려진 터라 핵분열 현상을 군사적으로 이용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헝가리 출신 유태인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는 독일이 원자폭탄을 개발할지도 모르니 미국이 먼저 개발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고, 이 편지는 아인슈타인에 의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이로써 미국이 원자폭탄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계획을 ‘맨해튼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당시 20억 달러를 들여 원자폭탄 3개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참여한 과학자들은 이름만 들어도 쟁쟁했으며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닐스 보어, 리처드 파인만, 폰 노이만, 한스 베테, 에드워드 텔러 등등 100여 명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 주 앨라모고도사막에서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실험용 원자폭탄은 TNT 2만 톤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플루토늄-239라는 원자핵을 이용한 것입니다.
실험에 성공한 미국은 실전용으로 2개의 원자폭탄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크기가 다른 하나에 비해 작아 ‘리틀 보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우라늄-235를 이용해 만들었습니다. 리틀 보이는 길이 3.2m, 직경71cm, 무게 4톤, TNT 1만 5000톤 급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뚱뚱한 모양을 하고 있어 ‘팻 맨’이라는 별명을 가진 것으로, 길이 3,25m, 직경 152cm, 무게 4.86톤, TNT 1만 4000~2만 톤 급이었습니다.
‘리틀 보이’를 싣고 간 B-29 폭격기 ‘에뇰라 게이’에서 촬영한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버섯구름(위키백과) ⓒ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결국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은 일본에 투하하기로 결정되었고, 1945년 8월 6일 리틀 보이를 실은 B-29 폭격기가 기상 관측과 결과 측정을 또 다른 2대의 폭격기와 함께 일본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히로시마 도심 한 복판 상공 580m에서 리틀 보이는 투하 즉시 7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당시 한 기자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저녁 무렵에 불이 사그라지기 시작하더니 금세 꺼져 버렸습니다. 탈 것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히로시마는 이렇게 해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탈 것이 없어 불이 저절로 꺼질 정도였다니...
3일 후인 8월 9일은 나가사키에 팻 맨이 투하되었습니다. 440m 상공에서 폭발한 팻 맨은 동시에 4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히로시마는 1945말까지 추가로 7만여 명이 사망했으며 그 이후 5년간 6만 여명이 더 사망했습니다. 나가사키도 1945년 말까지 총 8만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 2개의 원자폭탄의 후유증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2개의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며칠 후인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 대전은 끝났습니다. 대한민국도 일제 치하에서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자폭탄의 위력을 실감한 강대국들은 원자폭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구소련을 비롯한 영국, 프랑, 중국, 인도 등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원자폭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자 실라르드의 편지를 루스벨트에게 전했던 아인슈타인은 ‘어린아이의 손에 너무 위험한 장난감을 쥐어줬다’며 후회했고,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들도 원자의 에너지를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데 반대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1953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UN총회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선언했고, 이로써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창설되었습니다.
참고 자료
『인류가 원하는 또 하나의 태양-핵융합』, 이억주, 동아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