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기는 다른 아기들보다 수없이 많은 테스트를 거쳤어요. 패트릭 스텝토 박사는 이미 우리 아기가 아들인지 딸인지 알고 있지만 출산 때까지 이야기하지 말라고 부탁했어요. 처음부터 시작된 스릴감을 끝까지 맛보고 싶기 때문이에요.”
세계 최초로 시험관 아기를 출산한 레슬리 브라운(30세)의 이야기입니다. 1978년 7월 25일 영국 올드햄의 한 종합병원에서 몸무게 2.6kg의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데일리 메일지의 다음날 1면 기사제목은 ‘그것은 여자다(It's a Girl)’였습니다. 불임 여성이 아기를 낳을 수 있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레슬리 브라운은 어떻게 불임을 극복하고 아이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결혼한 부부 10쌍 가운데 1쌍은 아이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학계에서는 불임을 정상적인 성관계를 1년 이상 가졌음에도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라고 정의합니다. 부부가 모두 정상이면 임신은 보통 1년 이내에 80~90% 성공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불임 부부의 수는 10쌍 중 1쌍을 웃돌 것입니다.
불임의 원인은 아직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불임의 원인이 어느 쪽에 있느냐고 따진다면 남성과 여성이 거의 같은 비율입니다. 불임의 원인을 알고자 할 때 부부가 함께 검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남성은 원인이 단순하기 때문에 검사결과를 빨리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임클리닉 전문가들은 남성이 먼저 검사받을 것을 권유합니다.
일반적으로 불임이라고 하면 남성의 정자와 여성의 난자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정자와 난자가 정상적으로 만들어져도 생식계통에 문제가 있으면 불임이 될 수 있습니다.
우선 남성의 경우, 정자의 수와 운동성이 준수해야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따르면 총 사정액 1.5mL이상, 1mL 안에 1,500만개 이상의 정자가 있어야 하고, 이 가운데 운동하는 정자비율 40% 이상, 정상적인 모양의 정자 4% 이상 등의 조건이 요구됩니다. 이런 조건이 ‘합격’ 판정을 받았다고 해도 선천적으로 정관에서 요도로 이어지는 정자의 이동통로가 막히면 불임이 될 수 있습니다.
여성의 경우는 불임의 원인이 더 복잡합니다. 정자는 여성의 질과 자궁을 거쳐 나팔관까지 도달해 그곳에 있는 난자와 수정을 이뤄야 합니다. 그런데 난자가 정상적으로 배란이 됐어도 자궁 안에서 아기가 자랄 수 있는 환경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자가 첫 관문인 자궁경부에 들어올 때 이곳에서 끈끈한 점액이 분비돼 정자가 질에서 자궁으로 순조롭게 들어오도록 돕습니다. 하지만 점액이 잘 분비되지 않거나 점성이 지나치면 정자가 이곳을 통과하기 어렵습니다. 이 경우, 인공수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남성의 성숙한 정자를 가느다란 관으로 여성의 자궁 안으로 직접 주입하는 방식입니다.
레슬리 브라운은 남편인 존 브라운(38세)과 9년간 임신을 시도했지만 양쪽 나팔관이 막혀 아이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배란된 난자가 자궁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부는 시험관 시술로 루이스 브라운을 낳았고, 루이스는 2004년에 결혼해 2006년 자연임신으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박사과정생이던 로버트 에드워즈는 난자가 어떻게 성숙하는지, 어떤 호르몬이 영향을 미치는지, 자궁 안에서 정자와 난자가 수정할 수 있는 조건과 시점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68년 정자와 난자를 체외에서 수정시키고 초기 수정란을 배양시키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산부인과 전문의 패트릭 스텝토와 공동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스텝토는 배에 작은 구멍을 뚫어 인간 난자를 채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체외수정으로 불임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12년간의 연구 끝에 레슬리 브라운의 난소에서 꺼낸 성숙한 난자와 존 브라운의 정자를 시험관에서 수정시켰고, 48시간 뒤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켰습니다. 시험관 아기란 용어로 인해 10개월 동안 시험관에서 아기를 키우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사실은 수정 초기 2~3일 동안만 시험관에서 키웁니다. 결국 이들 부부의 아이는 분만 예정일을 3주 앞두고 제왕절개로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시술은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에드워즈-스펩토 연구팀은 12년 동안 100번이 넘는 실패를 거듭한 끝에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켰습니다. 당시에는 한 달에 한 개씩 자연적으로 배출되는 난자를 가지고 시술했기 때문에 임신 성공률이 낮았습니다.
시험관 아기 시술법이 자리 잡기까지는 약 1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1980년대 미국의 하워드 존스, 조니아나 존스 부부가 개발한 과배란 유도방법 덕분입니다. 자연 주기에서는 난자가 한 달에 1개만 배란되며, 배란일에 맞춰 성숙한 난자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반면 과배란 유도주사를 이용하면 난자 여러 개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습니다. 난자를 채취할 때는 먼저 여성을 국소마취시킨 뒤, 질식 초음파로 난자를 둘러싼 액체를 흡입합니다. 이와 함께 남성의 정액에서 건강한 정자만 골라내 난자를 채취한 다음날 수정시킵니다.
정자가 운동성이 좋으면 난자가 든 시험관에 넣어두기만 해도 자연수정이 되지만, 정자의 숫자가 적거나 운동성이 떨어지면 자연수정이 어렵습니다. 이때는 인공적으로 정자를 난자의 세포질에 넣어야 합니다. 수정에 성공하면 수정란을 모체와 동일한 염분, 산소, 이산화탄소의 농도, 온도 등을 맞춘 배양액에서 키우다가 3~5일 뒤 자궁 내에 이식합니다.
에드워즈 박사팀이 최초로 시험관 아기를 시술할 때는 성공률이 5~10%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20~30%까지 높아졌습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시험관 아기 시술법이 환영만 받는 것은 아닙니다. 임신 성공률이 30%에 그쳐 시술 비용이 많이 듭니다. 또 과배란 유도를 여러 번한 여성은 과배란 증후군이 생길 위험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에드워즈와 스텝토 연구팀이 개발한 시험관 아기 시술법은 수많은 불임 부부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이 공로로 2010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로 있던 로버트 에드워즈는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함께 연구한 패트릭 스텝토는 1988년 사망해 수상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앞으로 생명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연구가 계속돼 다시 한번 불임 부부에게 희망의 빛을 가져다주길 기대해 봅니다.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1999082470323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9033749&memberNo=25786904